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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Mar 27. 2020

[김머핀의 북테라피] 가족

- 톨스토이 <안나카레니나>,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


 "안녕하세요. 책으로 받는 따듯한 위로 한 잔,
김머핀의 북테라피입니다.
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드리자면,
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며,
책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문학 치료’라는 학문을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
아직 누군가의 문제를 책으로 완전히 치료할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과를 마치고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처럼,
누군가가 책을 통해 작지만
따뜻한 위로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드릴 첫 잔으로 어떤 주제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가깝지만 때로는 가장 멀기도 한 존재,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우리가 머무를 수밖에 없는 가족.
그렇다면 가족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서는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일정한 집단 또는 그 관계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져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을 물리적 가족과
정서적 가족으로 나누어보았습니다.  
물리적 가족은 방금 언급한 정의와 부합하는,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가족 관계이고,
심리적 가족은 내가 안정감을 느끼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듬고 사랑하며
그 안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관계
또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가족은 선뜻 타인에게 꺼내기 힘든 주제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한 이야기를 빌려올까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A입니다.
그는 늘 가정 내에서 희생을 강요받는 입장이었습니다.
형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이든
부모님으로부터 완벽한 지원과 지지를 받았지만,
A가 원하는 것은 정말 소소한 것일지라도
늘 허락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A는 묵묵히 희생을 감내했습니다.
그 아픔이 자신을 갉아먹어서 너덜너덜해졌는데도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그런데 그 혜택만을 누리던 형이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안 된다’는 말을 듣자,
A가 그렇게 힘들게 지켜온 가정의 평화가 깨졌습니다.
형은  부모님께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으며 화를 쏟아내고 집을 나갔습니다.
A는 그런 형에게 치가 떨릴 만큼의 분노가 일어서
그를 안 보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형만 생각하면 분노가 이는데,
주변에서는 “그래도 가족인데 네가 용서해라”,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용서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말 자기가 잘못한 것인지,
자신이 못나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A.

 저는 A의 이야기에서 문득 책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네, 바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입니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행복한 가정의 비결은 아마도
사랑과 배려, 만족, 소통과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통의 부재, 폭력, 이기심, 억압, 가난, 외도, 차별 등
불행한 가정의 조건은 너무나도 다양합니다.
그렇다면 안나 카레니나에는 심리적 가족관계가 과연 얼마나 나올까요?
안나의 가족이 심리적 가족일까요?
‘이 가정을 파탄으로 이끈 사람은 누구인가’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그래도 안나의 가정에서 가장 무고하고 불쌍한 피해자는
안나와 알렉세이의 아들, 세뇨자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한 인물이 바로 세뇨자였는데요.
세뇨자가 받은 충격과 공포,
그리고 그가 느꼈을 슬픔과 분노, 불안함, 원망이 상상되면서,
오래도록 그가 제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왜인지 A의 모습에서 그 세뇨자가 떠올랐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의 상처에는 정말 시간이 약일까요?
저는 사람마다 상처가 낫는 속도가 다르듯이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데에도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상처가 아물었다고 해서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깊은 상처는 흉터를 남기고,
사람들은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그 아픔은 흉터가 희미해져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흉터가 지기까지 10년이 걸렸다면,
그 흉터가 없어지는 데에는 그 곱절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동생에게 아직 죽이고 싶을 만큼의 분노가 인다면,
A의 상처는 아직 딱지도 채 앉지 않은 상태일 것입니다.
그런 A에게 시간이 약이 되려면 아마도 엄청난 세월이 필요할 것입니다.
 
 A가 형을 용서해야 할까요?
세뇨자는 과연 부모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 같으신가요?
저는 용서의 전제조건은 진정한 사과이며,
진정한 사과가 없는 용서는 망각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망각을 위해서는 분노-공허감-체념까지의 단계가 필요하곤 합니다.
형이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는 한, A가 할 일은 용서가 아니라 망각입니다.
죽일 듯한 분노가 옅어지고
그 분노를 잊어버릴 수 있도록 부단히 자기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 감정에 지지 않을 만큼의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만들고,
자신을 가꾸기 위해, A는 끊임없이 자신을 보듬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물리적 가족에게서 받지 못했던
안정감과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심리적 가족을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사람들은 앞에 가족이라는 말이 붙으면 무조건 용서를 강요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A의 용서는 온전히 A의 몫이며,
세뇨자의 용서 또한 세뇨자의 몫입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혹시 가족을 용서하지 못하신 분들이 계신가요?
가족을 용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 한구석에 짐처럼 느껴지나요?
아직 그 분노가 자신을 괴롭히나요?
그렇다면 꼭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목표를 용서가 아니라 망각으로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루시 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시냇물이 있었다는  기억해두고 싶어요.
그런 좋은 기억은 제가 앞으로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거든요.
 지금 절망의 구렁텅이 속이 아니에요
 
 분노의 감정을 일상의 작은 행복들로 희석해나가고,
심리적 가족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봅시다.
오늘 밤 <빨간 머리 앤>을 손에 들고 잠자리에 들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분노에 우리를 내어주지 맙시다.
분노가 갉아먹기에 우리 생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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