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머핀 Mar 30. 2020

[김머핀의 북테라피] 이방인

-김영하 <여행의 이유>



안녕하세요. 책으로 읽는 따뜻한 위로 한 잔 김머핀의 북테라피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이방인>입니다.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 중 한 부분으로 오늘 북테라피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입국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키클롭스의 섬에 도착한 오디세우스 같은 상황이 된다. 니하오마와 곤니치와의 시험을 통과해 겨우 한국인임을 알리는데 성공하더라도 너의 코리아는 노스냐사우스냐를 묻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모국에서 가지고 있던 복잡한 정체성은 남한 출신의 여행자라는 간단한 스테레오타입으로 대체된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제가 독일에서 살았던 시간이  문득 떠올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독일에서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겪는 상황과 꼭 같았거든요. 카페에 그냥 앉아 있어도 저렇게 말 거는 사람이 좀 있었어요.  
심지어 제가 독일에 있었을 때 김정일이 죽었었거든요. 저한테 김정은 안부를 왜 그렇게 물을까요. 제가 안부를 알 수 있는 김정은은 중학교 동창 김정은인데 말이죠. 그리고 비단 처음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 어느 정도 인간관계가 지속되고 나서도, 저 자신보다는 스스로가 가진 선입견이나 잘못된 정보에 따라서 저를 판단하거나 대화를 이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종종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그런데, 김영하 작가님이 내리는 여행자의 정의를 보고 “아! 이게 바로 그때의 나였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어요. 잠깐 읽어드릴게요.
 
“‘아무것도 아닌자’인 것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였지만, 조금 달랐다. 젊은 날의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의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특별하게’ 분류되고, 일단 분류된 이후에는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은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somebody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nobody일 뿐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여행자”는 “노바디” 즉 이방인이지만, 여행자가 아니었던 저는 늘 다른 사람과 어울리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짧게나마 이 사회의 저 구석 어디라도 자리 잡은 “썸바디”가 되고 싶어서 발버둥 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저는 계속 “노바디” 였던 거죠. 거주자였던 제가 여행자와 동일하게 이방인 취급을 받으니까 그 부조화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잘 모르니까 그러겠지’하고 넘기긴 했지만, 같은 일이 너무나 많이 반복되면서 계속 제 안에 스트레스가 축적되고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나의 근본에 대해 설명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문득 문득 “아, 나는 여기서 평생을 살아도 ‘이방인’이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곤 했는데요. 마치 부레옥잠처럼 아무리 뿌리내리려고 해도 제 뿌리는 땅이 아니라 물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던 그 수경 식물 기억하시죠? 남들처럼 땅에 자리 잡지 못하고 물 표면을 둥둥 떠다니는 부레옥잠이요.
 
  아마 이 감정과 상황은 저뿐만 아니라 외국인으로 외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나고 자란 나라에 살고 있어도 문득 내가 이방인 같다고 느껴지는 경험은 모두가 한 번씩은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군중 속에 고독이라고 할까요. 내가 속한 집단에서 소외된다거나 같이 잘 어울리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거나,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집단의 구성원들과 괴리가 있다고 느낄 때 주로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 같아요.


 사실 소속감과 동질감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중요한 요소인데요. 이런 요소가 충족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아의 불안을 겪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불안은 우울에 가장 좋은 먹이라서 이런 이질감을 느낄 때마다 특히 우울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필연적인 우울감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일단 먼저 생각할 것은 여러분의 고독이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거예요. 고독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함께 있음의 충만함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며 가끔 엄습해오는 고독은 여러분이 삶을 성실히 살고 있다는 증거예요. 그 고독과 고독에서 오는 우울함을 너무 미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첫 번째 단계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거리 두기’입니다. 자꾸만 여러분을 불안하게 하는 존재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슬프게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죠.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 수 없다면, 심리적인 거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같은 일상 속에 있다고 해서, 고독의 원인 제공자들이 꼭 여러분의 이야기의 주역일 필요는 없습니다. 고독 유발자들에게 작은 역할을 붙여줘 보세요. 예를 들어 외국에 계신다면, 자꾸 여러분에게 김정은 안부를 묻는 여러분의 직장 상사는 <춘향전>에서 ”변사또 옆에서 아첨하는 이방” 정도로 해볼까요? 또 비혼주의자인 당신에게 “나이 들어서 혼자 고양이나 키우고 살면 얼마나 딱해 보이냐, 안 팔리기 전에 얼른 적당한 사람이랑 결혼이나 하라”고 늘 말하는 친척 어른 1, 2, 3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카드 병정 1, 2, 3으로요. 여러분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의 춘향이고 이몽룡이고 시계 토끼이고 하트 여왕입니다. 고독 유발자들은 하찮은 역할일 뿐입니다. 각자의 사회에서 여러분의 소설을 만들어보세요.


하지만 여기서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만약 여러분의 고독과 우울이, 개인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정도의 것이라면 혼자 끙끙대지 마시고 꼭 전문가와 꼭 상담해보아야 한다는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분의 고독과 우울은 잘못이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잘 다루지 못했을 뿐이죠. 우리가 무거운 짐을 들 때 혼자 들 수 없으면 누군가에게 같이 들어달라고 요청하듯이 개인적으로 감정을 잘 다룰 수 없을 때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꼭 용기 내서 도움을 청하셨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자신이 부레옥잠이라고 느끼신 분이 계신가요? 여러분의 다름이 여러분을 불안하게 했나요? 그런데 여러분, 부레옥잠이 물을 정화해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죠? 사회에서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가진 다양성이 사회를 좀 더 다각적으로 발전하게 해주고 풍요롭게 해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레옥잠의 꽃은 피자마자 하루 만에 저버린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너무 슬프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하루만 피는 꽃을 보기 위해 매일 매일 부레옥잠을 들여다보는 자신에게 그 찰나의 꽃 피움이 너무나 큰 행복이라고요, 얼마나 특별한 존재냐”고요. 네 여러분은 ‘다른’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입니다. 이방인이 아니라 주인공입니다.


오늘의 북테라피는 이렇게 마치도록 할게요. 오늘도 따뜻한 밤 되세요.





작가의 이전글 [김머핀의 북테라피] 가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