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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May 21. 2020

[김머핀의 인스턴트 에세이] 면접의 기본

뉴질랜드 생활 속 3분 감성 이야기




코로나로 인한 이동 제한령이 떨어지기 한 달 전 나는 일 하던 곳에서 그만두었다. 쉬면서 천천히 새 일자리를 찾던 중 코로나 경보가 레벨 2가 되더니 결국 이동 제한령까지 떨어졌다. 그렇게 거의 두 달을 집에서 지냈다.

고용이 되어있던 상태라면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마침 그 타이밍에 백수였던 나는 보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드디어 이동 제한이 풀리고 코로나 여파로 가장 먼저 잘린 워홀러들을 필두로 수많은 구직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슬슬 경제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사람 잘랐던 사업장에서 구인도 많이 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구직자가 더 많다고 느껴진다. (물론 내가 구직자라 그럴 수도 있다) 좀 괜찮아 보이는 곳은 구인 글이 올라 오자마자 바로 마감된다. 시티에 비해 일자리가 많지는 않은 동네에 살고 차도 없는 나는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일자리가 나오면 열심히 이력서를 돌리고 있다.

 

 물론 키위 잡(뉴질랜드인 사장)이면 좋겠지만, 현재 내가 갈 수 있는 동네에서 나오는 키위 잡은 중장비 기사, 트럭 운전, 목수, 간호사 등....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전부라 아쉬운 대로 한인 잡에도 기웃거리고 있다.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러던 중 전 직장 근처에 위치한 생활 용품점에서 올라온 구인 글을 보았다. 메일 주소 없이 핸드폰으로 바로 연락하라는 글을 보고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서 문자에 나의 인적 사항을 기입했다. cv(이력서)를 보낼 수 없으니 cv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이름, 나이, 사는 곳, 경력 사항 그리고 고용주들이 제일 민감해하는 부분이 비자임을 알기에 위킹홀리데이 비자라는 점과 비자 유효기간도 명시했다. 현재 내 비자는 7개월이 좀 안 되게 남았기에 조금만 더 지나면 안정적인 고용을 원하는 고용주들의 필요를 채울 수 없게 되어버려 구직이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비자 유효 기간을 무조건 사전에 명시한다. 더 길게 일하는 사람을 뽑고 싶은 사람들이 괜히 불러서 서로의 귀한 시간을 그리고 나의 교통비를 낭비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원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올 수 있냐고 연락이 와서 다음날 바로 면접이 잡혔다. 그리고 대망의 면접날. 준비하는 도중 문자가 왔다. 급한 일이 생겨 면접이 어렵다, 다시 연락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던 중에 김이 샜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렇게 이틀이 지난 뒤 다시 연락이 왔고 마침내 면접을 보러 갔다.


  오늘 혼자 일해서 어쩔 수가 없다면서 카운터에서 서서 시작된 면접. 준비해 간 CV(이력서)를 주니 하나하나 보면서 질문을 시작한다. 나이는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를 물어서 이미 문자에서 다 알린 내용이라 의아했지만, 그래 뭐 그 내용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성실히 대답했다. 그런데, 비자는 무엇인지, 비자 기간이 언제까지인지 보더니,


"아, 저희는 12월에 제일 바쁜데 비자가 12월 초에 끝나네요?"라는 물음에

나는 "네"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분명 내 비자 유효기간을 미리 문자로 알렸고, 그것이 자기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나는 왜 부른 것일까. 사실 나는 그 순간, 이 면접이 끝났다고 느꼈다. 오후에도 인터뷰가 있는데, 그 사람은 여기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굳이 나에게 그런 정보를 알리는 것은 왜인지도 좀 의문스러웠다. 거기에 더불어 그는 나에게 워홀러들을 많이 썼는데, 다들 비자 끝나기 한 달 전에 그만두고 여행을 간다고 했다. 물론 고용주는 최대한 일을 길게 하는 사람이 좋겠지만, 위킹 홀리데이 비자의 취지가 젊은 이들이 여행을 하면서 문화를 체험하는 것, 그를 위한 생활비 충당이 가능하게 하는 것인데, 왜 그 부분을 비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비자 끝나기 한 달 전이라면 당연히 방 빼고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하기에 더 오래 다닐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굳이 자신이 뽑아서 써놓고 워홀러로 온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왜일까. 그게 싫으면 그냥 안 뽑고 안 쓰면 된다. 차라리 그냥 "워홀러들은 어렵습니다"하고 그 시점에 나를 돌려보냈으면 나았을 것 같지만, 이어지는 질문들은 나를 더 당황스럽게 했다.

내가 졸업한 대학교를 가리키며,


"이 학교는 서울에 있나요?"


" 한국에서는 어디 살았어요?"


 "한국에서 한 일은 이게 전부?"


생활용품 판매점에서 물건 진열하고 손님 응대하는 일이라 나는 관련된 아르바이트 경력만을 이력서에 적었었다. 마치, 네가 한 일이 이게 다냐고 묻는 듯한 질문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한국에서 오기 전에 일했던 직장들을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대뜸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냐고 묻는데, 순간 너무 웃겨서 "네, 못하진 않았어요"라고 대답했다.


 도대체 내 내신 성적, 대학 학점과 물건 진열과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은 채 면접이 끝났다. 정작 내가 준비해온 대답들에 관한 그러니까 정리정돈은 잘하는지, 손님 응대에는 어려움이 없는지, 영어 실력은 어떤지, 근무 가능한 시간은 언제인지에 대한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오늘 오후에 오는 사람 면접을 보고 오늘 중으로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거기까지 했으면 좋으련만 "연락 없으면, 여기 일자리 많으니까 빨리 다른 데 알아보라"는 불필요한 친절까지 베풀어서 마지막까지 나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10분 만에 면접이 끝났고, 돌아서 나오는데 내가 왜 이 아침에 여기까지 왔는지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내가 보낸 문자를 읽기는 한 걸까. 나를 왜 오라고 한 걸까 의문스러웠지만, 그래도 나온 김에 먹은 맥모닝으로 그 찝찝한 면접의 기분을 씻어냈다. 맥모닝만큼의 값어치도 되지 않는 면접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직도 가장 어이없는 질문은, 이 대학은 서울에 있냐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대학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이었는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 사람은 뭐라고 반응했을까. 왜 비행기로 열한 시간을 날아야 도착하는 먼 땅의 생활 용품 가게 사장에게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경쟁했을 한국의 젊은이들의 성취가 평가당해야 하는 것일까. 한국에서도 지긋지긋하게 겪는 학벌주의를 여기서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일머리가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같이 일할 때도 일머리가 있고 없고는 중요한 요소이니까. 하지만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일머리가 있지 않다. 학교 성적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정리 정돈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손님 응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아마 한국 사람이 아닌 키위나 인도 사람들이 구직을 위해 왔을 때는 그 질문을 못 할 거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다. 뭐, 진실은 저 너머에.


 구직자 중에도 물론 개념 없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대부분 면접에서 간절한 사람은 구직자이다. 그래서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성의 없는 면접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만다. 매체에서는 늘 구직자가 갖춰야 할 면접의 기본자세에 대해 다루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면접은 구직자가 고용인을 심사하는 자리도 된다는 것을 잊곤 하는 것 같다. 물론 고용인이 뽑지 않으면 그만이긴 하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그 시간을 심심풀이 정도로 소비하지 않는 것. 구직자가 사전에 제공한 정보를 제대로 읽는 것. 업무에 필요하지 않은 지나치게 사적인 내용들을 묻지 않는 것. 그런 기본을 지키는 것이 바로 면접에 임하는 고용주의 기본자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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