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머핀 Jun 10. 2021

사돈의 팔촌보다 가까운 미국 대통령

며칠 전 온라인에서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책으로 진행되는 소규모 북클럽 모임에 참여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책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수용자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수감 번호를 문신으로 새기는 일을 맡게 된 슬로바키아 출신의 유대인 랄레와 그의 연인 기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끔찍한 역사의 참상 속에서 돌고 돌아 극적으로 재회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등장인물들의 삶이 이어져 있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가 읽고 있는 모든 책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걸 다시 느낀다’라는 말이 나왔고 모두가 공감했다. 그 말을 듣고 '그래, 사람의 삶은 모두 이어져 있으니까'하는 생각과 함께 조금 엉뚱하게도 온라인임에도 정겨운 대화들이 오고 가는 작은 네모창의 글자들 사이에서 문득 고등학교 시절 기억의 편린이 되살아났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무언가 어려운 계산을 거쳐(문과는 이해하기를 포기한다) 도출해 낸 이론으로 쉽게 말하면 여섯 다리만 거치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이라는 내용이다.  고등학교 때 이 이론에 대해 알게 되어 친구들끼리 재미삼아 우리가 누구까지 아는 사람으로 엮을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 보았다. (나름 귀납법을 사용해 이론을 확인하는 바람직한 학생의 자세 아닌가!) 연예인부터 시작해서 웬만큼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고 놀랍게도 정말 거의 4 다리 정도만 거치면 그 대단하다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6다리가 넘어 가는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묘한 승부욕으로 계속 여러 이름들을 줄이어 말하다가 누군가가 외쳤다.

 

“야, 그래도 오바마는 모르겠지!”


그렇다. 최후의 일격으로 당시 재임 중이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그러나 야심 찬 도전은 정확히 3초 후, 미국에서 큰 사업으로 성공한 친척이 있는 친구 A의 말로 좌절당했다.


“야, 아니야. 우리 고모할머니 친구 백악관에서 일해.”


 친구 A와 고모할머니는 가깝게 왕래하는 사이라서 할머니께서 한국에 들어오시면 늘 A집에 머물곤 하셨다.


 그럼 계산해보자. 나->친구 A->A의 고모할머니->고모할머니의 친구(백악관 직원)까지 3 다리이다. 그리고 그 친구분이 오바마를 직접 안다면 4 다리, 설사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안면이 있는 직원을 알 가능성이 높으므로 결국 최대 5 다리만 거치면 이역만리 먼 땅에서 입시 걱정에 시달리면서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자습 시간에 지인의 지인이 누구인가 뇌를 총동원해서 찾고 있는 고양시의 고등학생들과 매일 세계의 안보와 경제 상황을 치열하게 읽으며 사는 미국의 최정상과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돈의 팔촌보다 가깝다!


이 이론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나는 사람의 삶은 모두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하게 살아야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선함이 바보 같음이 되고 정직함은 융통성이 없는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누군가는 천벌 받을 짓하고도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선한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상황은 생각보다 제한적이고 편협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 주변만 봐도 갑자기 아는 동생이 자주 마주칠 일이 있지만 그다지 가깝지는 않은 지인 B에 대해 물어와서 당황했다는 경우가 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글쎄 지인 B가 이 동생에게 첫눈에 반해서 무턱대고 물어물어 번호를 알아내 들이댄 모양이었다. 이 동생은 그저 B의 스치듯 얼굴만 몇 번 봤던 상황이라 당황스러워서 주변에 그 사람을 알 것 같은 사람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 상담 결과 그 일은 그저 슬픈 헤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B는 아마 아직도 모를 것이다.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이야기에 첫눈에 반한 그녀와의 인연이 막을 내렸다는 것을. 물론 한 사람의 판단이 절대적일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많은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고 내가 보는 그 사람은 결코 사람의 모든 것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여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요는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아는 누군가의 말로 정말 간절했던 기회가 날아가 버렸을 수도 있고,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나에 대해 던진 한 마디가 나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선의 선을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저 멀리 나와 연결되어 있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 내린 결론이 나비 효과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을 때, 적어도 그에 대해 떳떳할 수 있도록, 그것이 나의 최선의 선이었으므로 그 결과에 후회는 없다고 말 할 수 있도록.

 

나의 선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될 수 있고, 나의 비겁함과 악함은 결국 나와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의 다리를 돌고 돌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를 겨누는 화살이 될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의 삶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오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선하게 살아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김머핀의 인스턴트 에세이] 30호 가수와 희붐한 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