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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Apr 04. 2020

[김머핀의 인스턴트 에세이] 코로나 아니고 벼룩

뉴질랜드 생활 속 3분 감성 이야기



벼룩에 물렸다.
21세기에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워낙 태초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뉴질랜드에서는 흔한 일이란다. 잔디에, 풀숲에, 동물들에게 흔하게 있어서 버스에 타서도 패브릭 커버에 살고 있던 벼룩에게 물릴 수도 있고, 택시, 영화관, 도서관 그 어디서도 물리거나 옷에 달고와 온 집안에 퍼질 수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아마 정원에 쓰레기 버리러 갈 때 묻혀온 것 같다고 추정해본다(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본디 아픈 것을 잘 참고, 모기들에게 사랑받는 탓에 가려운 것도 잘 참고 잘 긁지도 않는다. 근데 나도 모르게 긁고 있다. 이것들이 피부가 튼튼하고 내성이 있는 키위(뉴질랜드 현지인)보다는 동양인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같은 동양인이어도 뉴질랜드에 오래 산 사람은 잘 안 문다. 또 같은 침대에서 자도 한 사람만 물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보일락 말락한 깨 한알 보다 작은 생물이 내 하루를, 삶의 질을 얼마나 하락시킬 수 있는지 절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플리 밤이라고 벼룩 죽이는 약도 따로 파는 이 국가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전국이 락다운 기간이라 방역 업체는 필수 사업이 아니라 운영을 하지 않고, 뭐 사러 나가는 것도 맘먹고 나가야 해서 더 우울하다.  누가 MBTI 성격 타입 INFJ 아니랄까 봐 자꾸 최악을 상상하게 되면서, 사람이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나의 인생은 슬프게도 역경이 많았다. 나이에 비해 큰 일을 많이 겪은 편이라 웬만한 시련이나 역경에도 불안하긴 해도 멘탈을 잡고 갈 수 있다. 남들은 살면서 겪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는 큰 일도 견뎠는데 작디작은 미물이 나의 정신을 이토록 피폐하게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은 아주 작고 사소하며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아가는 일상이다.
 지지 말자, 인간은 대자연 앞에 나약하나, 그래도 수천 년을 지지 않고 살아남아 이제는 인간이 지구를 괴롭히고 있지 않나. 벼룩에 물려 죽었다는 사람은 못 봤으니까. 하지만 종종 한국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밀... 한국 가고 싶게 만드는 게 코로나도 인종차별도 일자리도 아닌 벼룩이라니. 약을 쳐도 계속 물리면 락다운 끝나자마자 업체 불러 박멸하리라 절치부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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