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더 잘해야지!?

코로나와 함께 하는 우리 집 설날 풍경

by 야생

설 명절을 맞는 모든 며느리들이여,

2021년 새해를 축하합니다!*

올 설에는 명절 증후군 없이 지낼 수 있겠지요?



코로나 명절로 며느리들이 땡잡은 건가?


그는 일어나자마자, 교통상황을 체크했다. 농장에 가기 위해서다. 강원도 쪽으로 가는 귀향 차량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했다. 나는 어제 스쳐 들었던 뉴스 이야기를 했다. 5명 이상 모여서 만약 코로나 확진이 된다면, 그 치료비를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대한 것이다. 그러면 귀향하는 사람이 많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둘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코맹맹이 여자 목소리를 낸다.


"어머니,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못 내려가요."

"당신, 지금 여자들 흉내 내는 거야? 아직도 명절 하면 며느리들이 시댁에 가서 전 부치고 상 차리고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냐?"


남편은 할 말을 잃었지만, 그 잃어버린 말이 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설에는 코로나 핑계로 대한민국 며느리들이 땡잡았다는 것이리라. 이야기가 식탁에서 계속 이어졌다.


"이번 코로나가 설 풍속도를 바꿔놓을 것 같은데."

"맞아, 엄마!"


딸이 맞장구를 친다.

"야, 할머니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방바닥에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부엌에 들어갔잖아. 남자들은 방에서 TV 보며 밥상이나 받고"


그때 그가 끼어든다.


"어이구, 몇 번이나 했다고."


일단 맞는 말이기는 하다. 결혼하고 바로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에 시댁하고 상관없이 산 세월이 8년 정도다. 귀국해서 시댁에 명절 때마다 들락거린 것도 그 비슷한 세월이다. 그리고 지금은 시댁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명절에는 귀향 귀경 인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만약 시부모님이 90세 이상 장수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다면? 그리고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5,6시간 도로에서 보낸 뒤 바로 부엌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그는 운전하느라 힘들었다는 치사를 받으며 쉬었을 거고.


며느리들이 무료 의무 봉사를 해야 하나?


어이구, 몇 번이나 했냐고? 오늘도 그의 속마음을 확인한다.

'그때는 당신이 고생했지. 고마웠어.'

이런 말이 나와도 시원찮을 판에.

'남들 다 하는 것 꼴랑 몇 년 세월 한 것 가지고 뭘 그래?'

이 말을 속에 삼킨 말투다.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은 명절마다 때마다 무료 의무 봉사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그는 요 몇 년 많이 변했다. 집안 일도 공치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의 의식도 새로워져 말도 잘 통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깊이 숨어있는 속마음이 드러난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말들,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말들은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시댁에 아들보다 며느리가 잘해야 된다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었다.

"며느리가 더 잘해야지."


시댁에 자기보다 내가 더 잘해야 된다는 것이다. 왜 내가 더 잘해야 되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네 부모님인데 당신이 잘해야지, 왜 내가 잘해야 돼?"


잘해야 된다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전화를 하라는 거였다. 그런데 시댁 부모님이 어떤 걸 기뻐할까. 아들이 전화하는 걸까. 며느리가 전화하는 걸까. 이건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 아닌가. 근데 왜 문안인사를 며느리가 해야 하지? 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이해가 안 된다.


"당신이 전화해."


결국 시부모님 살아생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가 전화를 했다.


왜 그는 자기보다 내가 더 자기 부모님에게 잘해야 한다고 한 걸까. 왜 자기 부모를 공경하라는 유교적 가르침, 자식의 도리를 나에게 떠넘기려고 했던 것일까.


며느리들의 삶은 왜 이리 무거울까?


오늘 새롭게 인식한다. 남자로 사는 가벼움과 여자로 사는 무거움에 대해. 남자는 태어나자마자 적어도 우리 세대까지는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의 기쁨이 되었고, 교육 혜택도 더 많이 받았다. 결혼해서는 남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라는 이유로 권위적인 존재가 된다. 그들에게 권리 말고 의무라는 것이 부여된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부모를 부양할 의무마저 아내에게 떠넘기고.. 그 인생이 얼마나 가벼울지 상상이 안된다.


반면 여자는 남편의 부모님까지 떠맡아야 하는 무거운 인생이다. 그 무거움에 대해 침묵하며 고분고분해도, 고마움은 커녕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조금이라도 부조리에 대해 언급하면 얄짤없이 나쁜 년이 된다. 이런 풍속도에 비춰보면 그의 말이 맞다. 나는 얼마 하지도 않은 나쁜 며느리다.


에라이! 코로나여, 명절 풍경 싹 바꿔버려!




*북한의 새해 인사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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