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와중에도 시댁에 다녀온 모양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 형님을 같이 욕하고 지인을 위로해주었을 텐데. 지금은... '시댁의 대소사에 왜 며느리들끼리 싸울까'를 생각한다.
나도 형님이 불편했다
형님과의 관계는 결혼 전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와 큰 형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결혼 예물 대신 돈으로 달라고 했다. 아무 말 없길래 그걸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3월도 막바지 어느 날, 때아닌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날, 서울에 사는 큰 형님이 예물을 해준다고 동대문 시장에 나오라는 거다. 돈으로 받고 싶다고 했는데... 일방적인 통고에 어이가 없었다. 그 자리에 지금의 남편만 나갔다. 큰 형님, 주리를 틀고 싶을 만큼 내가 괘씸했을 거다.
다행이다. 신혼 시절에 형님과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이. 8년 6개월 정도 일본에서 살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애 딸린 아줌마였다. 일본에서 혼자 두 애들을 키운 내공도 있고. 그런데도 큰 형님이 조금 무서웠다.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자리마다 얼마나 쌀쌀맞게 구는지 가시에 찔리는 것 같았다. 무서움보다는 불편함이었다. 드디어 그 불편함을 끊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모든 장례절차가 끝나고, 시댁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형님이 한걸음 앞서 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려니 했는데, 사달이 난 것은 시댁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큰 형님은 부엌에 있고, 그 집 딸은 마당에 서있었다. 겉옷을 벗을 틈도 없이 조카의 입에서 질책이 쏟아졌다. 왜 자기와 자기네 엄마만 일하냐는 것이다. 장례식 내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피해의식도 유분수지. 뚜껑이 열렸다.
"야!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생색내며 남에게 요구하는 것은 좋지 않아."
흥분해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더 기가 막혔던 것은 1회전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그 애의 비아냥으로 2회전이 시작되었다는 거다.
그때 알았다. 그 두 모녀가 얼마나 강적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그 백여시 모녀를 보지 않겠다고. 그 후 지금까지 8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딱 한번 시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빼고. 지금은 그 모녀에 대한 감정이 많이 옅어진 상태다.
형님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월이 지나기도 했지만, 그녀들의 비밀을 알고 나서 미움이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큰 형님 부부는 연애결혼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형님이 불임이었던 거다. 시아주머님이 밖에서 아이를 낳아가지고 들어왔고, 형님은 그 아기를 키웠던 것이다. 그 아이가 어머니 장례식 때 나랑 싸운 그 조카다.
그 사실을 알고는 큰 형님에 대해 연민이 생겼다. 얼마나 힘든 세월을 견뎠을까. 미움이 눈 녹듯 사라지더라. 조카도 중학교 때 그 비밀을 알게 되어 가출까지 했단다.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짠해지더라. 그렇게 쎄 보였지만 큰 형님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였던 거다. 자식 문제만 아니다.
나의 남편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큰 형님 집에서 유학을 했단다. 그 뒤치다꺼리는 누가 했겠는가. 당연히 큰 형님이 했겠지. 잘했든 못했든 보통일이 아니잖는가. 그가 고3 때는 큰 형님이 날마다 삼계탕을 끓여주었단다. 수험생 뒷바라지 못해서 대학 못 갔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남편의 둘째형도 그 집에서 재수 삼수를 했단다. 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네. 그러니까 큰 형님은 남의 자식을 셋이나 돌본 셈이다. 그 집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그 힘든 세월을 누가 보상해 줄까? 그 겹겹이 쌓인 한을 누구에게 풀 수 있을까? 시부모님에게? 남편에게? 남편에게도 조금은 풀겠지만. 가장 만만한 게 같은 입장이지만 서열상 더 약자인 동서이지 않을까 싶다. 동서는 가만히 있겠는가? 그 형님이 밉고 싫겠지.
서로 미워하지 말자
이렇게 굴러가는 가부장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보니, 이젠 여자들끼리 싸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들의 싸움을 팔짱 끼고 구경만 하는 남자들에게 화살을 돌려야 되지 않을까.
너희 집 일이니까 너희가 알아서 해! 나는 빠질래!
이렇게 하면 여자들끼리 갈등할 일도 미워할 일도 없을 것이다. 제일 바람직한 것은 남자들이 자진해서 팔짱을 푸는 것이겠다.
반대의 상황을 가정해보았다. 만약 남자들이 부엌일이며 집안일을 도맡아서 해야 하고, 명절 때마다 사위들이 처가댁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야 할 입장이라면? 당연히 장인과 사위 사이에 갈등이 생길 것이다. 사위들끼리도 마찬가지겠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니 문제가 뻔히 보인다. 한쪽은 별 보상도 없이 궂은일을 떠맡고, 다른 한쪽은 그 혜택을 누리는 구조가 문제인 거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혜택을 받는 쪽이 그 혜택을 포기한다면 말이다.
남자들이 최소한 자기 본가에서만큼은 팔짱을 풀고 팔을 걷어붙이기를 바란다. 그래야 고부 갈등이든, 동서 갈등이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