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익숙해지면 꿀 떨어져요!

무질서의 달콤함

by 야생

일주일에 딱 한번 청소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원룸이에요?"

"방 3개짜리 아파트예요."

"혼자 살아요?"

"5명이 북적대요."

"직장 다녀요?"

"전업주부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전업주부가 청소도 안 한다고? 신경 쓰이지 않나? 너무 게을러빠진 것 아냐? 어디 아픈가? 속으로 중얼거릴지 모르겠다.


나는 사지 멀쩡하다. 더러운 것보다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집안 꼬락서니를 보면 신경 쓰인다. 보통의 전업주부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 그런데 지금은 보통의 전업주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다. 의도적 반항이랄까. 과거의 나의 삶을 해체하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함이다.


언제부터 청소에 신경 쓰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는 엄마가 시키면 수동적으로 청소를 했던 것 같다. 시골은 아직 콘크리트가 흔하지 않았다. 집 벽도 봉당도 마당도 길거리도 온통 흙천지였다. 청소란 흙먼지를 쓸어내고 닦아내는 것. 그것도 가끔. 지금처럼 날마다 쓸고 닦지 않았다.


서울에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랑 같이 산 적이 있다. 언니는 머리카락 떨어지는 것에 꽤 민감했다. 그런데 나는 둔감했다. 타고나기를 그렇게 깨끗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방한칸 얻어 사는 처지에 청소랄 것도 없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조차 위생 관념이 없었다. 일본에서 살았으니, 잔소리할 친정 식구나 시댁 식구도 없었다. 그냥 되는대로 살았다. 아기가 다다미에 누워있을 때조차 치우지 않았다. 동그랗게 말린 먼지가 여기저기 굴러 다녀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 호흡기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아이 잠옷은 날마다 빨았다는 거다. 일본 아줌마들이 그랬던가 싶다. 따라서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그녀가 부러웠다


한 번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다. 어느 날 우리 집 애가 좀 멀리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해가 기울 무렵, 아이를 데리러 그 집에 갔다. 일본인들은 친한 사람조차도 자기 집에 잘 들이지 않는다. 엄마들의 수다가 길어져도 문밖에서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 엄마는 달랐다. 나를 그 집으로 들인 것이다. 속으로 당황했다. 거기다 그 집 풍경에 입이 쩍 벌어졌다. 온 집안이 물건으로 가득 찬 게 아닌가. 아이들 셋이나 키우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녀가 무척 존경스러웠다. 그녀의 자유함이 감탄스러웠다. 자기 집이 사람을 불러들이기에 적절하지 않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 듯했다. 그녀가 갑자기 대인배처럼 보였다. 나도 그렇게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올라갈 때, 우리는 한국으로 이사를 왔다. 문화적 충격에 빠졌다. 가는 집마다 어찌나 깨끗하고 고급진지. 갑자기 소심해졌다. 나의 집 꼬락서니가 무척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누가 우리 집에 온다 하면 그날은 더 신경 써서 청소하는 날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부엌 때를 벗겨내고, 화장실 냄새를 제거하고.


이렇게 몇 년 살다 보니, 청소가 안된 꼬락서니를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자유함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세월이 흐른 만큼.



로봇 청소기가 해주겠지


이상한 바람이 불어왔다. 작년 추석 즈음 로봇 청소기를 구입했다. 날마다 청소기를 돌리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나 혼자 떠맡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주말에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면, 내 일을 대신해준 것처럼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싫었다. 나만 이 집에 살아? 왜 나만 청소를 해야 하지? 그렇다고 여태껏 도맡아 해온 일을 누군가에게 억지로 떠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로봇 청소기다.


로봇 청소기를 사면 더 깨끗해질 거라 생각했다. 로봇이 지나가는 자리에 물건을 치우는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싫은 마음이 점점 심해졌다. 물건을 정리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주말에 온 식구가 각자 맡은 구역의 물건을 정리한다. 그때 비로소 로봇 청소기의 스위치를 누른다. 우리 집 로봇은 일주일에 한 번만 일한다. 상팔자다.


삶이 무질서로 흘러가더라


엔트로피 법칙은 나에게도 참 잘 들어맞는다. 안방에는 요와 이불이 일주일 동안 깔려있다. 처음엔 이게 참 불편했다. 이불이라도 정리를 한다. 불편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점점 무질서에 적응이 된다. 몸만 쏙 빠져나온다. 밤이 되면 몸만 쏙 들어간다. 쏙 나오고 쏙 들어가고, 참 편리하다. 이부자리를 개고 정리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는다. 개이득이다. 처음엔 불편해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꿀 떨어진다.


아이들 방은 어떤가. 예전에는 아이들 방이 지저분한 것도 일일이 잔소리 거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잔소리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애들 방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로봇이 들어간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잔소리할 필요가 없는 거다.


잔소리한다고 애들이 더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도 아니더라. 서로 언성만 높아지고 기분만 나빠지더라. 안 보는 게 상책이다. 늘어져 있는 것에 예전만큼 예민하지도 않다. 이렇게 살아도 큰일 나지 않더라. 오히려 아이들과 사이가 더 좋아지더라.


이렇게 삶이 무질서로 흘러간다. 그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돌려준다. 아침에는 홀로 뒷산을 오른다. 점심 먹고는 자판을 두드리며 이렇게 글도 쓴다. 저녁 먹고는 기타를 친다. 잠들기 전에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모두 꿀 떨어지는 시간이다. 무질서에 익숙해지니, 이런 호사가 생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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