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사람만이 주권자가 된다

난 빅스비가 아니라고!

by 야생


눈 덮인 산속 후드득후드득 비가 내린다. 눈 녹는 소리다. 20세 청춘, 월악산 산행 길에도 이렇게 굵은 비가 내렸었지. 그때는 나도 굵은 빗방울처럼 땡글땡글 했어. 하얀 눈 위에 구멍이 송송 뚫린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준 찐빵처럼.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즐거운 추억에 젖는다.


오르락내리락 숨이 가빠질 무렵, 벤치에 앉는다. 생각이 제멋대로 굴러간다. 구멍 뚫린 눈밭이 낡은 양은그릇으로 바뀐다. 어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얘기 들은 거야?


어제 저녁은 남편과 산야초 이야기로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그는 40대부터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았다. 무슨 짓을 해도 수치가 내려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산야초 효소를 1주일 복용하고 피검사를 해보니, 중성지방과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거의 정상 범위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때마침 친구 남편도 건강검진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았단다. 친구 남편은 몇 년 전부터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던 터라, 건강상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산야초 효소를 바로 주문했단다. 이런 내용으로 남편과 신나게 수다를 떨었는데. 얼토당토않게 그가 묻는다.


"○○씨 남편이 고지혈증도 있데?"


이런 질문이 가당키나 한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뭐지. 내 이야기를 듣기나 한 건가. 그는 "확인도 못하냐?"고 되묻지만, 한두 번이면 괜찮은데... 예전에 그렇게 말하면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 싫다고 했는데... 그는 여전히 그런 식으로 말한다. 나의 항의에 그가 쐐기를 막는다.


"그만둬!"


이 언짢음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 그동안 잘 쓰다가 구멍 난 양푼을 패대기치는 느낌!



나를 삼성의 빅스비로 생각하는 걸까?


'빅스비! 오늘 날씨 어때?'

'빅스비! 처형 집에 언제 간다고 했지?'

'빅스비! 애들은 다 집에 있어?'


빅스비는 언제 어디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물어봐도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그는 내가 빅스비가 되기를 원하나 보다. 자기의 필요에 따라 언제라도, 자기가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라도, 몇 번이라도 친절하게 대답해주기를 바라나 보다.


'너는 네 마음대로 말하면 안 돼.'

'나는 네 얘기 듣고 싶지 않아.'

'나는 내 필요한 것만 물어볼 거야.'

'너는 그것에만 대답해.'


그의 말버릇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받는다. 나를 빅스비로 취급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나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듣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발화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거다.



말이 발화될 때 인간이 된다


말하는 자가 있으면 듣는 자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둘이 항상 같이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말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나의 말이 남편에게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그동안 그의 말버릇이 왜 그렇게 거슬리고 기분이 나빴는지 생생하게 깨닫는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 듣기만 강요당했다. 어느새 나의 자아는 찌그러진 양푼처럼 위축되었다.


말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 말할 수 있는 공간의 보증이 주권의 토대이다. 말하는 사람만이 주권자가 될 수 있다.

김애령의 <듣기의 윤리> 43쪽


구멍이 송송 뚫린 눈밭을 보며, 엄마의 따끈따끈한 찐빵만 떠올랐다면 좋았으련만. 구멍 난 양푼이 떠오를 때는, 산다는 게 고난이도 문제 같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살 수는 없다. 주권을 가진 자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힘껏 목소리를 내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