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청 문화예술원 마루홀에서 5월 11일부터 16일까지 열렸던 서예가 권미숙 씨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그녀와는 동네 책모임에서 만난 사이다. 함께 수다 떨고 밥 먹는 평범한 전업주부로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서예가로 발돋움하다니!
붓글씨를 쓴 지 10년 만에 기획한 서예전
권미숙 씨가 서예에 입문하기 전, 유치원생이었던 자녀들이 먼저 문화센터에서 붓글씨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도 마음의 여유가 생겨 붓글씨의 세계에 문을 두드렸다. 자녀들의 책상 옆에서 그들의 문제집을 채점하며 짬짬이 붓글씨를 썼다. 남편이 귀가할 시간이 되면 바닥에 펼쳐져있는 벼루와 먹과 붓과 화선지를 치우면서 말이다. 전업 주부는 그렇게 살아야 되는 줄 알았으니까.
그녀가 붓글씨를 처음 배웠던 곳도 역시 문화센터였다. 5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서예 교실에 빠지지 않고 꾸준하게 다녔다. 이후 집 근처 고등학교 학부모 서예 교실에서 서예가 일정(본명, 김주익)을 만났다. 거기서 2년 동안 배운 후, 최근 3년은 일정 선생님의 서실에서 문하생으로 사사를 받았다. 그러니까 서예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이다.
서실 문하생 중에 그녀가 가장 나이가 어리다고 한다. 그녀를 제외한 문하생들의 서예 경력은 20~30년이다. 서예를 시작한지 10년뿐이 안된 그녀가 전시회를 한다고 하니, 모두가 의아스러운 눈빛이었단다.
'가능해?'
'용감하네!'
그녀는 애써 못들은 척 했다. 그런 말을 귀담아 들었다면 아마 전시회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시회를 추진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만회하고 싶었다. 그동안 전업주부로 살며 소소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돈 문제에서 가끔씩 남편이 건네는 말이 섭섭하기도 했다. 가장 한가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시댁에 불려 가기 일쑤였다. 시댁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시댁 식구들로부터 서운함을 느꼈다.
시댁 5형제 중 막내며느리로 그녀만 전업주부다. 만날 때마다 동서들로부터 충고의 말을 들었다. 여자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시어머니도 막내아들 혼자 돈 버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업주부로 산다는 것이 이토록 입지가 좁을 줄이야.
지금의 중장년 여성들이 결혼 적령기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까지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고도의 성장기를 거쳐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단계로 진입하는 시기였다. 학교만 졸업하면 걱정없이 취업이 되는 한편, 외벌이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시대였다. 그래서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를 겪고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지며, 외벌이로는 먹고 살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이에 따라 2000년대에 들어서 결혼한 여성들의 맞벌이에 대한 사회적 요구로, 그녀들은 수퍼우먼으로 거듭나야 했다. 육아, 가사, 그리고 직장일까지 삼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이제는 집에서 육아, 가사 노동만 하는 사람은 놀고 먹는 팔자좋은 사람으로 불리는 시대가 되었다.
권미숙씨도 90년대 말에 결혼해 자신의 삶을 갈아넣어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한 세월이 20여년이다. 그런데도 시댁 식구들의 눈에 그녀는 집에서 놀며 남편 벌어오는 돈이나 축내는 존재로 비춰졌던 것이다. 그녀는 전시회를 통해 상처난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었다고 한다. 전업주부로 살며 휑하게 뚫린 가슴을 충만하게 채우고 싶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삶을 칭찬하고 보상해주고 싶었다.
이것이 주변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전시회를 강행했던 이유다. 이번 전시회는 10년 동안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엄마 권미숙 씨의 눈물겨운 결실인 셈이다.
전시회를 계기로 위상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전시회에 대해 그녀의 시댁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전시회를 하기 전, 그녀가 시어머니 생신에 붓글씨 족자를 선물했을 때 시댁의 표현은 이런 것이었다.
'취미도 있고 팔자 좋~네.'
그런데 이번에 시댁 식구들에게 전시회 소식을 전했을 때, 많이들 놀라시더란다.
'집에서 놀며 조용히 애만 본게 아냐? 어, 좀 달리 보이는데!'
성인의 문턱에 있는 그녀의 아이들은 전시회를 개최한 엄마 권미숙 씨를 어떻게 보았을까.
"특히 딸아이의 반응에 놀랐어요. 자기 일에 몰두하다 잠든 엄마의 모습이 너무 멋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딸에게 그런 엄마로 보였다는 것이 정말 뿌듯했어요."
권미숙 씨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시선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일에 몰두하는 멋진 엄마로 살고 싶다고 한다.
중장년층 여성들의 꿈을 응원한다
전업주부들도 할 말이 있다. 20~30년 남편의 돈벌이 노동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하며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을 전담한것, 돈으로 환산한다면 남편 이상의 경제 활동이라고.전업주부가 놀고 먹는다는 것처럼 어이없는 말이 또 있을까. 가사노동과 육아를 생산활동에 포함시키지 않고 남자들이 여자들을 먹여 살리는 것처럼 가장하는 가부장제 사회가 위선적일 뿐이다.
전업주부의 무보수 노동으로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가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겠다.전업주부로 살았던 중장년층 여성들이 그녀들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 문화적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좀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접었던 날개를 활짝 펴서 잃어버린 그녀들의 꿈을 향해 높이 날아오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