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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 Apr 22. 2021

전셋집 찾아 삼만리

집주인과 중개인은 대박이고, 세입자만 쪽박인가

3월 초 전세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그때부터 큰 바위 밑에 깔려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어느 때는 끓는 냄비처럼 속이 부글부글 아우성이다. 내가 처한 대한민국의 현실 때문이다. 나의 힘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무력하진 않았겠지.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런 것이다. 납득할 수 없는 전세가 상승분 몇억을 마련해야 한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와 이사 비용 수백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날짜에 맞춰 집을 나가야 한다. 아, 집 없는 설움이란 게 이런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집 없이 사는 것이란


얼마 전에 '16년 전세살이입니다만,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라는 기사에 실린 댓글을 보고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집주인이 보유세를 내고 집을 빌려주었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그럼 세입자는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공짜로 살고 있다는 말인가. 세입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한 집에서 세입자로 오래 살게 되는 경우에는 '좋은 집주인을 만나서'라고 한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배려해서 장기 전세를 놓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집주인이 들어와 살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세입자가 그 집에서 오랫동안 살 수 있는 것인데. 집주인과 세입자는 서로 공생하는 관계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집주인은 시혜자고, 세입자는 수혜자인 것처럼 말하는 걸까.

 


부동산 중개인과 거래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그동안 전세를 살면서도 이사를 많이 다니지 않아서 부동산 중개 수수료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셋값이 많이 오른 상황이라 부동산 중개 수수료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중개인은 매물이 비싸다고 책임과 부담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니다. 매물이 비싸든 싸든 그들의 역할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부동산 물건 소개, 권리관계 분석, 임대차 계약 체결 등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세 가격이 2년 전과 비교하여 두 배로 폭등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개료를 두 배 받는다?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껏 거래해왔던 부동산 중개인과 수수료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다.


내 입장에서는 이사를 가기 위해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두 배로 오른 중개 수수료가 부담이 되어 조금이라도 깎고 싶고, 중개인 입장에서는 부동산 중개 요율에 따라 수수료를 받고 싶어 생긴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서로 적정한 중개 수수료를 정하고 전세 가계약을 했다. 그 과정 중에 중개인으로부터 황당한 말을 듣고 말았다. 


"OO엄마네가 이사하지 않고 그렇게 오래 살도록 내가 얼마나 신경 썼는데..."


세상에나, 부동산 중개인이 전세 기간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던가. 세입자는 집주인도 모자라 이제는 중개인에게까지 고마워해야 하나? 물론 고마워해야 한다, 내가 아니라 서로! 대한민국에서 세입자로 산다는 것이 이토록 입지가 좁은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또다시 뒤통수가 얼얼하다. 


이사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간다. 그런데도 불안이 잠재워지지 않는다. 전세가가 급격하게 오른 만큼, 급격하게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세가가 급격하게 내려간다면, 다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 전세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안하다. 다행히 임차인을 위한 보험이 있었다. 


주택도시 보증 공사의 상품 중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이다. 전세보증금을 제때 못 받아서 이사를 가지 못할 것이 걱정되는 세입자,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 전세 보증금을 못 받을까 걱정되는 세입자, 전세 보증금 회수를 위한 법적 조치를 스스로 하는 것이 걱정되는 세입자를 위한 보험이다. 


보증기간은 보증서 발급일로부터 전세계약 기간의 만료일 후 1개월까지다. 가입은 전세 계약 기간 2분의 1이 경과하기 전에 해야 한다. 



집값 상승으로 전원생활이 성큼 다가온다


집값, 전셋값, 부동산 중개료의 갑작스러운 상승은 회오리바람과 같았다. 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패대기 당한 느낌이다. 게다가 한 달 반 나를 옥죄었던 걱정이 미래에까지 이어진다. 남편은 이런 나를 위해 한 마디 거든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지 말자. 그때 일은 그때 걱정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에도 영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불안아쉬움, 분노를 털어내고 싶었다. 남편은 마냥 편안해 보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왕복 2시간 걸려 친구 농장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그에게 마음속 찌꺼기를 이것저것 꺼내놓았다.


"우리 너무 일찍 계약한 것 아냐? 이마트 근처 전세매물이 십 년 더 젊던데. 교통도 더 좋고. 더 알아보고 할 걸 그랬나? 당신 그 집 마음에 들어?"

"이마트 근처 그 아파트 교통은 좋지만, 별로일 것 같아. 차들이 앞으로 옆으로 지나다니고. 새로 이사하는 집은 베란다도 넓던데 거기다 정원을 만들어야 하나...  주말마다 광교산 줄기를 오르내리락. 난 거기가 더 좋아."

"그래? 당신이 좋다면야 뭐. 우린 둘 다 집에 관해서는 취향이 똑같네. 아무리 그래도 숲세권이 좋지?"

"응!"


벌써 새로 이사하는 곳을 꿈꾸는 그의 태평한 마음에 내 마음을 실어본다. 이렇게 이사 스트레스를 겪으니, 전원생활이 앞당겨진다. 수도권에서 집을 사는 것, 현재 기준으로는 뭐 글러먹었다. 지금 전세 가격이면 수도권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괜찮은 전원주택 두 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집 없이 떠도는 것이 힘들긴 힘들다. 들썩거리는 부동산 가격에 휘둘리는 것도, 주인집 사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도 다. 중개인을 잘못 만나 골치 아픈 것도 싫다. 막내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시생활 탈출이다. 전원생활에서 대박 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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