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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킴 Jul 28. 2024

옥스퍼드

기차 플랫폼에 진동하는 젊은 남자의 행복한 피아노 소리. 행복하지 않은 모두는 듣지 못한 채 마저 먼지 속으로 걸어간다. 노숙자의 지친 등 뒤로 애잔하게 끌려가는 바이올린 소리도 있다. 바이올린 그것만이 내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듯했다. 때 낀 손톱들 사이에 들려 있는 활은 내 혀가 되어 현들을 핥아가며 대신 신음한다.


시선을 끌어당겨 애써 애먼 벽에 걸쳐 놓는다. 모퉁이를 돌아간 남자의 검은 등을 따라가고 싶지만 애써 마음을 참았다. 나는 그저 기차에 올라타 버리고 만다.


눈물이 내 입술을 향해 달려간다. 흐르기엔 너무 커서 닦여버린 눈물. 짠 그 눈물은 하트 모양.


감당하기에 벅찰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풍경과 시계 추처럼 운동하는 눈동자들.


상업적인 것 같아 짜증 나지만 진솔한 감정들.


싫다고 도리 쳤던 얼굴이 기쁘게 끄덕이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던가. 그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부끄러움을 마주해야 했다.


고속열차가 공기에 흠집을 내며 풍경을 스쳐가는 소리, 오래된 피아노가 갓 만들어졌을 때 났을 소리, 아직 귀에 끼어있는 플랫폼의 바이올린 소리. 그런 건 기차의 창에 문질러 버린다. 그런 건 기차에서 잃어버리고 말아야 한다.


옥스퍼드에서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없는 세상의 소리만 들었다. 기대하지 않는 척하며 내가 빠진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여백은 없었다.


기차에서 했던 다짐들은 어디로 간 건지, 진심이긴 했던 건지, 요철 하나 없이 미끈한 나의 다짐들은 아쉬워하지도 않으며 쉽게 나를 떠나 버렸다. 내가 구멍 뚫린 자신을 제 때 기워놓지 않은 탓이다.


주렁주렁 구멍들을 달고 옥스퍼드를 걷는다. 이따금 뛰어보기도 했지만 내 품에 안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옥스퍼드에서 나는 나의 소리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내가 아닌 모든 것을 듣다 왔고, 또 어떠한 것도 보지 못한 채 내 자신만 보다 왔다.


그러다가 런던에 돌아왔다. 가난하게 떠난 나는 도로 가난하게 돌아왔다. 괜히 방문을 꽝 닫고 헐은 나의 구멍들을 나이와 함께 세어본다. 더 늘었나? 아닌가? 나는 초조해진다.


비겁하지만 내가 따라가지 않은 남자의 검은 등에 내 모든 생각을 탕진해 버리기로 한다. 그 남자에 대해 다음 몇 분간은 열심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를 따라가지 않은 나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멋대로 하루를 끝내기 위해 침대에 몸을 묻었다. 그리곤 내일은 몇 개라도 좋으니 구멍을 좀 기워놓자 한다. 아, 이건 다짐은 아니다. 그저 내일이 아닌 지금을 위해 뱉어보는 책임 없는 말일뿐이다.


옥스퍼드에 대한 꿈은 꾸지 않았다. 다음날 일어나서 옥스퍼드에 대해 글을 쓰지도 않았다. 그냥 이상한 얼룩 같은 시간이었을 뿐이야라며 대충 나를 달래고 말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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