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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킴 Jun 16. 2021

#1 첫인상

서투른 청춘으로 이어지는 낭만적 일상

프롤로그

    너와 공유했던 시간에 대한 기념을 남기고 싶어서 쓴다. 네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짧게 머물다 갈지 모르지만 연인으로서 열심히 치고받고 성장한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이 기념글을 심심할 때 가끔 꺼내보며 서로를 알게 되어서 좋았고, 좋았던 때가 있었고, 이 사람과 지내면서 참 즐거웠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너와 대판 싸우고 네가 아주아주 미워서 이제는 그만 스쳐 지나가 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도 이 기록들은 보내주려고 노력할게. 좋았던 시간들과 감정들에 대한 존중이랄까. 네가 미워졌다고 널 좋아했던 그때의 마음까지 탁해지는 건 아니니까. 이것은 서로에게 받았던 사랑을 증거로 남기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서투른 청춘의 연애에 대한 위로이다. 우리가 얼마나 순수하고 예쁜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인지 잊지 말고 사랑을 열심히 해나가자!


첫인상

    4월의 목요일 아홉 시에 그를 처음 봤다. 코로나 때문에 런던 유학생활을 잠시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교환학생으로 일 년 동안 한국 대학에서 공부할 계획이었다. 학교 개강 전까지 5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동안 알바나 해볼까라는 가벼운 생각에 집 근처 이자까야에서 알바를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네 시 출근 아홉 시 반 퇴근, 그 애는 아홉 시 출근 새벽 두 시 퇴근이었다. 그렇게 겹치는 30분 동안 오픈과 마감의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는 거였다. 아홉 시가 거의 다 되어 가자 사장님이 곧 오게 될 뒷 타임의 애는 나랑 동갑인가 아닌가 하여튼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애라고 말해주었다.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애라는 말은 나를 괜히 설레게 한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 괜찮겠지?라는 식의 기대가 이어졌지만 나의 기대와 다르게 9시에 등장한 그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따라랑”

 

    문에 매어놓은 방울이 굴러간다.


    “이럇사이마세!”

 

    내가 힘차게 외친다. 손님이 멀리에 있어 못 들을 수도 있으니 꼭 크게 외쳐야 한다는 사장님의 요청이 있었기에 배에 힘을 주고 우렁찬 소리를 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혼자 들어온 남자 손님이 인사한다. 손님이 아니고 아르바이트생인가 보다. 괜스레 민망하다. 그는 그렇게 얼굴을 짧게 내비치고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창고로 들어갔다. 그의 얼굴은 내가 그동안 많이 봐온, 대치동의 그런 닳고 닳은 얼굴이 아니었다. 대체 이런 사람은 어딜 가야 볼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는 분명 한국인임 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낯설고 이국적인, 그래서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그런 그의 외모는 나를 긴장시켰다. 그가 내게 어떤 식으로 말해올지 궁금했다. 앞으로 30분은 내가 그와 어떻게 대화하느냐에 따라서 천국 같을 수도 있고 지옥 같을 수도 있습니다 라는 목소리가 나지막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의 성격은 밝고 사교적인 편이다. 이런 나의 친화력은 특히 처음 보았을 때 마구 발산되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어 즐거운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나며 대화하다 보면 아무리 낯을 가리는 사람이더라도 몇 분지 나지 않아 서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아까 말했듯이 너무 어려웠다. 내가 사교적인 스위치를 켠다고 해도 그가 받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는 금세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왔고 서로 어색한 인사만 남긴 채 우리는 오도카니 서 있었다. 사장님은 그가 패션 전공이고, 나는 런던에서 '아트 뭐시기', '하여튼 미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너 미술 하지? 어 얘도 미술 한대. 둘이 친하게 지내”라고 인사시켜주었다. 대화. 대화가 중요하다. 어떤 관계이던지 대화가 잘 이루어져야 관계도 원만하게 흘러간다. 내가 그에게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할까 고르던 중, 그가 나에게 “사장님이 말했던 아트 뭐시기가 뭐예요?”라며 말을 건넸다. 그 이후 전공과 작업 얘기가 오갔다. 나는 원래 런던에서 아트 디렉팅을 공부하다가 코로나로 한국에 잠시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으며, 그는 원래 광주에서 살았는데 패션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패션도 한 달 전부터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술 전공하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짧은 대화가 끝나고 각자의 할 일이 시작되었다. 나는 조그마한 앞접시, 포크, 술 등을 날랐고 그는 가스버너, 어묵탕, 나가사키 짬뽕 등을 날랐다. 그의 배려였다.


    알바 첫날 내가 잘하고 있나 볼 겸, 내가 일하는 이자까야가 괜찮은 곳인지도 볼 겸 부모님이 방문했다. 엄마 아빠를 어떻게 맞아야 할지 몰라서 모르는 손님처럼 둘을 맞았다. ("이랏샤이 마세!") 메뉴판을 들고 멋쩍게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오늘 알바 첫날이라서 여기는 뭐가 맛있는지 잘 몰라. 그런데 대부분 꼬치 6종을 시키더라"라고 서투른 메뉴 추천을 건넸다. 아빠는 가게를 한번 쓱 보더니 꼬치 6종과 나가사키 짬뽕, 그리고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나는 "10번 테이블에 꼬치 6종, 나가사키, 맥주 두 잔 있어요!"를 주방에 외치고 맥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한테 술집에서 맥주를 서빙하다니, 참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새, 맥주와 맥주 거품이 완벽한 비율을 이루며 먹음직스럽게 잔에 담겼다. 맥주를 먼저 서빙한 후엔 엄마 아빠가 나가사키 짬뽕을 덜어먹을 앞접시와 숟가락, 젓가락을 챙기기 시작했다. 첫날이라 긴장을 한 건지, 엄마 아빠라서 잠깐 긴장을 풀은 건지,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세트만 챙겨 쟁반 위에 올려두었다. 어설픈 쟁반을 발견한 그가 내 뒤로 와서 한 마디 슥 던진다. “한 명만 먹이시게요?" 아차. 나는 멋쩍은 웃음을 내보이며 숟가락 젓가락을 마저 챙겼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건방진 놈. 내 엄마 아빠인데 내가 그것도 제대로 안 챙길까 봐? 너나 잘하셔.'

    물론 내가 제대로 안 챙긴 것은 맞지만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기 전에 갑작스럽게 장난을 슥 밀어 넣고 가는 것이 약이 올랐다. 그 대화 이후로는 내가 스모 500 대신 스모 1000을 잘못 내주어서 손님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던 것 빼고는 별 탈 없이 알바 첫날이 잘 마무리되었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외모를 보고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그는 나의 사교적인 말도 잘 받아주고 오히려 장난도 먼저 치는 다소 가벼운 사람이었기에 일하는 내내 독특한 인상을 받았다. 낯선 인상의 사람이 나에게 익숙한 행동을 하니 친근하면서도 어색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같이 일하는 30분 동안은 그가 흥미로운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가면 생각은 안 나는. 시작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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