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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킴 Jun 16. 2021

#2 파우

서투른 청춘으로 이어지는 낭만적 일상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2주일째, 이제 더 이상 사케를 잘못 내가는 실수는 하지 않는다. 따뜻한 사케를 담는 도쿠리는 어디에 있는지, 어묵 나베와 함께 나가야 하는 간장 종지는 어디서 꺼내야 하는지, 다 떨어진 단무지는 어떤 통에서 찾아 채워 넣어야 하는지를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에, 그와도 말을 슬슬 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도 아트 디렉팅 작업해?" 그가 물었다. "아니. 요즘 그런 큰 프로젝트는 잘 안 하고,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조그마한 개인작업 위주로 해. 너 스페큘레이티브 디자인이 뭔지 알아?" 내가 물었다. "아니. 그게 뭔데?"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비평적 디자인이라고도 하는데, 디자이너가 근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사회에 물어 마땅한 물음을 던지는 디자인을 말하는 거야." 내가 설명했다. "음. 어렵네. 멋지다. 그런데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거야?" 그가 물었다. 그는 내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보다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에 더 관심을 갖는 듯했다. "응. 신사역에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쓰는 작업실이 있어."  "신사역에? 나도 한번 가볼 수 있어? 작업실 구경하고 싶어" 그가 호기심과 기대감에 가득 차서 '아니'라는 대답은 없는 질문을 내게 건넸다. 나는 괜찮지만 원래는 외부인이 들어오면 안 되기 때문에 아침 일찍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대꾸했다.


    그다음 날 아침, 나는 늦잠을 잤다. 그에게는 카톡이 한 개 와있었다. 나를 깨우려는 시도는커녕, 일어난 것 맞나 딱히 확인도 안 하는 개수, 한 개.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그는 다음에 가면 되니까 괜찮다고 했다. '우리에게 다음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네시에 출근해서 오픈 준비를 했다. 마감 때 올려놓고 간 의자를 다시 내리고, 테이블을 한번 싹 닦아놓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서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전 좌석의 냅킨을 채워놓고 빈 시치미 통을 채워놓았다. 그렇게 오픈 준비를 마치고 나면 그가 출근할 때까지 약 4시간 동안 겨우 세 테이블 정도의 손님이 왔다. 그냥 가만히 서서 멍 때리고 있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그나마 사장님이 자주 담배를 피우러 나가고 일층 술집 사장님이랑 거리에 앉아서 오랜 시간 담소를 나누다 들어왔기 때문에 매장 복도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매장노래를 따라 흥얼거릴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백예린이 부른 노래에 한창 빠져있었다. 이름 모를 일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들 사이에 그녀의 노래를 은근슬쩍 끼워 넣었다. 이런 나의 은밀함은 갈수록 대담해져서 그녀의 노래를 연달아서 틀을 때도 있었지만 나 빼고는 아무도 매장음악을 듣지 않는 듯했고,  별다른 불만은 제기되지 않았다.


    나는 주방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그저 주방에서 내주는 음식을 손님들에게 갖다 주기만 하면 되었고, 설거지는 주방의 입구에 있는 싱크대에 넣어두면 되었기 때문이다. 높은 주방 카운터 뒤에는 아주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일하고 있었다. 첫날에는 미처 그녀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갔다. 나베 육수와 짬뽕 육수가 끓는 큰 냄비들 뒤에서 꼬치에 파와 염통을 끼우고, 잡다한 채소들을 다듬고 있었던 여자아이의 이름은 파우 Pau였다. 나는 그녀가 카운터 뒤에 가려서 잘 안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외모는 20살 이상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 보였기 때문이었다. 체구도 조그마해서 꼭 중학생 여자아이 같았다. 이자카야의 비좁은 주방은 그녀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파우는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원래 살던 곳은 베트남이라고 했다. 내가 혼자 런던으로 유학을 갔듯, 파우는 혼자 한국으로 왔다. 그녀는 여기서는 용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파우는 한국말이 서툴렀다. 그렇지만 내가 베트남어를 하는 것보다는 파우가 한국말을 하는 것이 훨씬 유창했다. 나는 사실 베트남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그녀는 서툴게, 그렇지만 또박또박 나와 수다를 떨었다. 손님이 없고 사장님도 나가 있을 때면 나는 주방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와 함께 꼬치에 염통을 꿰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우는 내 아이라인 모양이 예쁘다고 했고, 자기도 나처럼 화장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파우의 눈이 아주 예쁘다고 했고, 나도 파우처럼 눈웃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도란도란 베트남에 있는 그녀의 가족 이야기, 나의 런던 이야기 등 다양한 것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했다. 파우와 말을 트고 나서는 그가 오는 9시까지 시간을 덜 자주 확인하게 되었다.


    9시에 그가 오고 나면 간단한 인수인계가 이루어졌다. 양념 단무지가 다 떨어져서 사장님한테 만들어달라고 했으니 이따가 받아서 다시 통에 채워 넣어야 하고, 오늘은 초밥이 다 떨어져서 안된다고 주문받을 때 말씀드리고, 아 전에 쓰던 행주가 너무 낡아서 새 걸로 바꾸었으니 앞으로 이 파란색 행주를 쓰면 된다는 말과 그래 알았어라는 말이 오고 갔다. 그는 어디선가 저녁을 먹고 2차로 술 한잔 하러 오는 사람들을 생쥐처럼 달고 들어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였다. 그래서 9시 이후로는 가게가 부쩍 바빴다. 정신없이 서빙하고 계산하고 또 틈틈이 그와 눈을 마주치고 간단한 수다를 떨기에는 30분이 너무 짧았다. 나는 더 오래 그와 함께 일하고 싶었다. 이 리듬감 있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테이블과 카운터를 왔다갔다하는 일정한 동선, 거기에 곁들여지는 약간의 노동, 띵동띵동 울리는 테이블 벨 소리, 주방에서 외치는 "꼬치 나왔어요", 박자의 여백에 서로 마주치는 그의 눈과 나의 눈, 나지막히 들려오는 백예린의 목소리, 이 모든 것들이 음악 영화 혹은 뮤지컬처럼 착착 맞아 떨어지는 이 즐거운, 리듬감 있는 시간 속에 더 오래 있고 싶었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점점 일찍 출근하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늦게 퇴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의 모양이 반원에서 원을 향해 슬금슬금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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