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청춘으로 이어지는 낭만적 일상
사장님은 악의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네 시에 출근하는 나에게 저녁 식사로 매번 카레 볶음 우동, 돈코츠 덮밥 등 직원 식사로는 과할 정도로 맛있는 요리를 해주었다. 사장님은 내가 일 하는 방식에도 별로 불만을 갖지 않았다. 내가 한 번 쓸고 지나간 바닥에 대해서 참견하지 않았고, 나의 실수에 핀잔주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같이 일하기에는 참 편한 사장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장님에게 신경 쓰이는 게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가 차별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때때로 매우 차별적인, 구시대적인 말을 마음껏 했다. 그는 텔레비전에 모 연예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전라도 사람은 별로고, 전라도 사투리는 듣기도 싫다며, 저 여자는 방송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뜨겁고 무거운 탕을 들고 룸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어느 날, '여자 아르바이트생보다 남자 아르바이트 생을 뽑는다면 더 오래 일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던 나의 말에 '손님들은 그래도 여자가 갖다 주는 음식과 따라주는 술을 더 좋아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역 차별적인 발언, 성차별적인 발언을 넘어서 주방에서 일하는 파우를 보며 인종차별적인 생각도 부끄럼 없이 뱉어내는 사장님을 보며 그의 서슴없음에 감탄했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추하던가. 그렇지만 늘 성의 있는 맛있는 밥을 차려주고, '활어 잡는 것 처음 보지?'라며 직접 나를 불러 도미 잡는 것을 보여주고, 퇴근 후 집에 가지 않고 맥주 한 잔을 하고 가는 나에게 서비스를 챙겨주는 사장님을 보며 참 입체적으로 무지하고, 따뜻하고, 악의는 없지만, 피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아르바이트생과 사장님이 얼마나 무지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해졌다. 그러니까 남 험담을 하며 친해진 것이다. 이것만큼 마음의 쿵짝이 잘 맞고 (옳소!) 경쾌한 주제 거리도 없다. 그렇게 사장님은 우리의 도마 위로 올라서 잘게 다져지고 모양 예쁘게 튀겨져서는 근사한 안주거리가 되어 주었다. 사장님은 ‘아낌없이 주는 인간’이 되었다. 우리에게 차별받는 것이 얼마나 기분이 나쁜 일인지 알려주고, 경계해야 하는 것들을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더니, 우리의 친밀감을 쌓기 위한 수단까지 되어주다니. 덕분에 나와 그는 어떠한 어른이 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열띈 토론을 펼칠 수 있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배움을 멀리해서는 안되고, 나의 전공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영역이더라도 “배운다”라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매년 나잇값을 하며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상과 미래의 경계를 지우며 실컷 떠들었다. 나중에 사장님의 나이가 된 우리를 본다면 우리의 젊은 날의 대화를 들려주고 싶을 것이다. 우리도 나이가 들어 아저씨 아줌마가 될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뚜렷이 의식한 채 , 또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우리는 이상과 미래를 구분하지 않고 떠들어 댔다.
며칠 후, 그는 내게 이자카야 근처에 산책할 만한 곳이 없냐고 물어왔고, 이 동네 토박이인 나는 자랑스럽게 양재천이라고 대답했다. 내게 제일 사랑하는 장소를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양재천을 꼽을 것이다. 양재천에는 천을 가로지르는 여러 개의 다리가 있다. 서초구에 있는 영동 1교에서 시작하여, 강남구를 향해 영동 2, 3, 4교가 쭉 이어진다. 어릴 적 나는 영동 2교 근처에 살았고, 초등학교 5학년에 영동 3교 근처로 이사를 와서 현재까지 살고 있다. 여름 장마철이 되면 양재천은 자주 넘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유치원 생이던 나는 장화를 신고 우비를 입은 채 엄마손을 잡고 넘친 양재천을 구경 가곤 했다. 세찬 강의 물살에도 우뚝 서있던 다리의 모습은 얼마나 멋있던가. 그런 다리의 늠름함은 평소보다 더 덩치가 커 보이게 만들었다. 조금 더 자란 나는 양재천에서 네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거쳐서 몇 차례 더 넘어진 후에야 두 발 자전거를 뗐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친구들과 양재천 밴치에서 엽기떡볶이를 시켜먹거나 가마로 닭강정을 사 와서 먹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학원이 모두 끝난 밤, 선선한 공기를 한숨과 맞바꾸며 걷곤 했다. 양재천에는 내 성장의 눈금이 매겨져 있다. 양재천과 함께 자랐으니, 더욱 정이 간다. 성인이 된 나는 이제 자연과 사람을 구경하러 양재천에 간다. 양재천이 계절을 따라 멋지게 풍경을 바꿔내는 것을 대견스럽게 바라본다. 식재된 화려한 꽃들 사이에서 이름 모를 풀꽃들을 찾아내고 그것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좋다. 내천을 따라 열심히 굴러가는 물 구슬들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어린아이들이 딸랑 거리며 자전거를 타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연인들이 퇴근 후 오늘 하루를 되새김질하며 걷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강아지에게 이끌려 강제로 건강한 저녁을 보내게 된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모두 좋다. 나는 나의 소중한 양재천을 좋지 않은 추억으로 더럽히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양재천은 그 자체로 좋은, 양재천의 정의에 ‘좋다’라는 가치 판단이 들어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런 양재천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때만 해도 그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한지 한 달쯤 되던 때였다) 그에게 알려준다는 것은 굉장히 과감한 선택이었다. 이것은 그에게 그다지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선택이기도 했다. 그를 나의 양재천에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양재천은 내 양재천 대로, 네 양재천은 네 양재천대로, 알아서 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는 양재천을 혼자 가기 싫어했다. 꼭 나와 함께 양재천을 걷자고 했다. 그는 처음 와보는 곳이기 때문에 지리를 잘 아는 내가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자로 쭉 뻗은 물길을 따라 양옆에 산책로가 조성된 이 단순한 공간에서 어떻게 길을 잃는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만 아는 스팟이라던가, 양재천에서 오른쪽(서초구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왼쪽(학여울역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는 가이드 노릇을 하러 산책에 함께 하기로 했다. 이 산책은 오로지 양재천에 대한 애정으로 한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그와 함께 양재천을 걸었던 것은 저녁이었다. 저녁 8시, 서늘한 초여름의 밤에 그를 양재천 근처 중학교에서 만나 함께 움직일 계획이었다. 그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하며 내심 기대가 되었기 때문에 이 산책은 양재천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그와 나누었던 대화에 대한 애정도 섞여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종종 나는 사람이나 사람과 나누는 대화 같이 너무 쉽게 변할 수 있는 대상에 애정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방어기제가 발동하곤 했다. 이들은 양재천과 같이 거대하고 평온하고 늠름한 것이 아니어서, 애정을 쏟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 내가 보낸 애정에 답장이 돌아오기는커녕, 돌연 마음을 바꾸거나, 영영 돌아올 수 없도록 변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거대하지도, 평온하지도, 늠름하지도 않은 것들에 애정을 쏟았다가 나의 마음에 못 미치는 방향으로 흘렀던 상황들은 모여서 신중함의 골을 깊게 만들어놓았고, 깊어진 골은 나에게 겁을 주었다. 그러니,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내가 그와 나누었던 대화에 애정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와 양재천으로 가서 또 다른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열의 넘치는 양재천 가이드는 이미 어두워진 밤이라 아름다운 양재천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음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꼭 날이 밝았을 때 다시 와야 한다는 ‘싫어’라는 대답은 없는 권유를 반복해서 건넸다. 나는 양재천이 그저 흔한 동네 공원으로 오해받는 것이 싫었고, 꼭 그에게 양재천에 대한 좋은 평을 듣고 싶었다. 내가 아끼는 공간이 그에게 인정받는다면 나의 개인적인 애정에 객관성이 더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영동 2교와 영동 3교 사이에 있는 밀미리 다리에서 시작하여 서초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맑은지 흐렸는지 알 수 없는 어두운 저녁 하늘과, 더 이상 의미 없는 나무 그늘 속을 그늘진 시간대에 걸었으므로, 양재천에는 딱히 볼 것이 없었다. 낮보다 밤에 더 뚜렷하게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청각일 것이다. 낮보다 한결 조용해진 밤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는 대신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화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