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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킴 Jun 17. 2021

#4 실직

서투른 청춘으로 이어지는 낭만적 일상

    나는 결국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돈에 대한 절실함이 없는 노동은 별 거슬리는 이유로도 그만두게 되는 것이었다. 나에게 별 거슬리는 이유는 사장님의 인성이었다. ‘돈이 급한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매주 세 번씩 볼 바에야 그 돈 안 받고 말아’라며 아쉬울 것 없이 콧방귀를 뀌며 일을 그만두었다. 이는 아직 책임의 무게가 가벼운 젊은이의 특권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직해버린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은 져야 했으니, 나는 대책없이 얻은 시간과 잃어버린 돈과 노동의 기회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는 그만두었지만 그와의 만남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양재천에서, 집 근처 공원 벤치에서, 결국 다시 방문하러 간 신사동의 작업실 근처 카페들에서 그를 만나 함께 대화했다. 대화. 대화가 중요하다. 잘 흐르는 대화에는 마음도 같이 흐른다. 여러 생각을 주고받다 보면 마음이 삐져나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여전히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작업에 대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자신과 무관한 것 등에 대해서 마음을 비추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나는 대화의 결이 꼭 맞았다. 그와 평생 이야기만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서 나온 마음이 그의 마음과 맞을 거라 확신했다. 물론, 생각이 맞는다는 것과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다르다. 생각이 서로 잘 맞는다 해도, 마음은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은 훨씬 구체적이고 또 좁은 것이다.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기도 하며, 마음을 바꾸는 것은 어떠한 면에서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의 맞는 생각이 맞는 마음으로 이어질거라 나는 확신했다. 근데 그 마음이 ‘사람으로써의 그’로 이어지느냐 ‘남자로써의 그’로 이어지느냐의 문제였다. 그때 당시 나는 좋은 사람을 연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로 아끼고 오래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연인이 아닌 친구로써 두는 편이 더 득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연인 관계는 아주 사소한 균열로도 아주 와장창 깨져버리는, 실용적인 구석이 없는 보기에나 예쁘장한 사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면 우정은 금이 가더라도 이리저리 메꾸며, 보고 싶지 않으면 안보는대로, 생각나면 보는대로 씩씩하게 이어져 나가는 비교적 끈질긴 구석이 있다. 그러니 오래 보고 싶은 이성이 생기면 친구로 삼는 것이 더 말이 되었다. 근데 그렇다면 그 사람을 매일 보거나, 특별한 날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행위들이 어색해진다. 이런 행위를 함께 하는 이성이 연인이 아닐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성 친구와 연인의 구분선은 어디에 있는가?


    내게는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줄줄이 소세지처럼 주욱 딸려올라오는 전남자친구들이 있다. 나는 첫 연애를 시작했던 16살 이후로 당시 23살까지 남자친구가 없던 시기는 1년을 넘기지 않았고, 새로운 사람과 반드시 새롭지만은 않은 연애를 해왔다. 이러한 과거의 연애경험은 나에게 그리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는데, 사랑해서 연애를 한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고 싶어서 사랑을 흉내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린 나이 탓도 있겠지만 주어진 시간동안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던 탓도 있었겠지. 나는 성애적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에는 이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주변 친구들이나 어른들의 성공한 사랑을 본 적 없었고, 영화나 드라마, 책 등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랑의 이미지를 본 것이 전부였다. 물론 훌륭한 사랑의 표본인 엄마 아빠가 있었지만, 그들이 서로 나눈 사랑은 나의 눈에는 이성간의 사랑으로 보이지 않았고, 가족 구성원으로써 나누는 사랑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과거의 나에게 연애를 한다는 것은 성애적 사랑을 하는 것보다 훨씬 사회적인 의미를 가졌다. 사랑은 내밀한 둘만의 교류이지만, 연애는 사회 집단 속에서 많은 이들에게 보여지게 된다. 연애를 통해 인맥이 넓어지기도 하고, 애인이 충족하는 조건이 나를 꾸며주기도 하며, 연애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외롭지 않은', '연애 가능한' 사람임을 입증시켜주기도 한다. 사랑의 알맹이를 뺀 껍데기 연애는 진정성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다양한 부차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문제는 나의 지난 연애가 너무나 뻔뻔할 정도로 진정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한 것은 여자친구라는 역할놀이에 가까웠다. 애인을 사랑하기보다 여자친구인 나를 사랑했고 이러한 내가 수행하는 다양한 행위와 얻게되는 이미지에 심취하는 것으로 얄팍한 연애의 나날들은 꿰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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