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하면 뭐 어때. 나는 내가 해내는 것 까지만.
요즘 추구미, 도달가능미 하는 표현이 좋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것 같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나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그건 단순한 비율이나 색이나, 즐거움 보다는 좀 더 "만족감"에 가까운 주관적인 중요함이다. 여러 디자인이 중요한 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있기도 하지만, "안예뻐"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걸 보면 난 그저 예쁜 것이 좋은 것일까?
어쨌든 나는 비교적 그 아름다운 것들을 잘 모은다. 물질적으로도 그렇지만 잡다하게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해 계획도 그럴싸하게 잘 보여내곤 한다. 그렇게 만들어가는 나만의 추구미가 좋다. "나만의" 추구미를 만들기 위해 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엿본다. 가끔은 약간 질투가 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대게 그들의 결과만을 보기 때문이다. 과정은 누구에게나 지난하기 때문에 대부분 내보이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래서 못된 마음이 들면 나는 나의 과정을 자꾸 떠올려본다. 지금 보이는 그럴듯한 이 모든 것들은 나의 과정의 결과이고, 또 미래의 과정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다보면 닭과 달걀 논쟁처럼 앞 뒤가 흐려져 이내 괜찮아진다.
나라는 사람은 참 얄팍해서, "나만의 추구미" 어쩌고 하면서 나도 남의 계획과 과정을 다 갖다 붙였으면서 남이 내 계획을 조금 베끼는 것 같을 때면 괜시리 샐쭉해져버린다. 지나가듯 말했던 나의 목표를, 다른 모임에서 똑같이 말하는 지인을 보다 응?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내 계획이 그럴듯해보였나? 내가 당신의 추구미인가? 하는 마음으로 남기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내가 해내는 만큼만 가져간다. 뭔가.. 내가 윈터 머리를 한다고 윈터가 되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난 그냥 윈터 머리를 한 나일 테니까.
그렇지만, 내가 그 계획을 세우기 위해 헤메였던 그 시간들이, 그러고 만든 계획을 통해 우왕좌왕 실행하며 헤메인 그 과정들이 사실 진짜 내 땅이다. 나는 윈터 머리를 결과만 보고 따라해볼 수도 있지만, 윈터가 그 머리를 하기 위해 겪었던 숱한 시행착오들은 알 수 없다. 아름다움은 거기서 나온다. 나의 도달 가능미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나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진다. 그러니 남을 따라하는 데에도, 남이 나를 따라하는 데에도 관대해지기로. 어차피 나는 내가 해내는 것 까지만 내 몫을 챙길 수 있다. 그렇지만 나만의 추구미를 설정하는 데에는 게을러지지 않기로. 그 모든 헤메임이 다 내 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