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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ing Aug 04. 2024

선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숙제를 풀어가듯.



고맙지 않을 일이 없다. 나도 고양이도 건강하고, 가족들은 무탈해 보이고, 직장은 안정적이고 일은 적당하고. 운동도 잘 되고 주말도 바쁠만치 인간관계마저 적절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 귀에 들리는 언어들이 노래 같지 않아.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곱지 않고, 눈알이 핑핑 아이롤링을 너무 많이 해서 안구건조증이 나아질 정도 같다.


뭐가 문제야 를 되뇌며 문제를 찾으려고 부산스럽게 마음을 헤집었다. 너야? 너야? 하며 온갖 것들을 뒤집어엎다 보니 자꾸자꾸 문제만 보이는 것이다.


처음 맞이한 반려동물을 평생 책임지겠다는 마음은 왜 오늘 최선을 다해서 놀아주지 않은 것 같다는 죄책감과 섞였던 걸까. 재택 옵션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안정적이기만 한 직장이 괜히 미워지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직장이 괜히 피로해지니 일이 적당한 게 발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조급증이 들었다. 직장의 조급증을 운동으로 풀려고 했다. 몸이 쉬어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운동으로 피해야 했다. 몸이 피로하니 마음이 허기져 주말 약속은 자꾸 차기만 했다. 결국 나는 인정해야 했다. 문제는 나였다.


숙제는 달가울 수 없다. 의무가 되는 순간 긍정적인 감정은 흐려진다. 강박은 즐거움을 가리니까. To do list는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위한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자꾸 일상의 즐거운 것들도 그 안에 넣어버렸던 것이다. 성취가 적어진 탓일까? 그 체크 표시에서 성취를 느끼는 것에 중독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자꾸 타인을 향해 돌리던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숙제처럼 살 순 없다. To do list에 있는 것들을 점검해야 한다. 인생에 할 일은 내 태도를 고쳐먹는 것뿐이 없다. 생각해 보면 무엇이 그렇게 숙제였을까? 남과의 비교를 통해 조급함을 느끼는 순간 일상의 모든 것들이 방해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목표가 멀어 보이니 소중한 것들조차 무겁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루를 비워가며 보내다 보니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앉아있을 시간이 없던 게 아니라, 앉아있을 마음과 여유가 없었구나. 부족한 게 아니라 벅찼던 것이었구나. 나는 나를 좀 더 가만 두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선물처럼 주어진 삶에 숙제처럼 고난스러워하지 않아야지. 얼마나 소중하던가. 이 모든 순간이. 고맙지 않을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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