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삶은 싫어서요
삶은 고통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곱씹다가 그의 책을 읽어보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인생의 고통은 내가 느끼는 버팀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인생이 당신에게 축복으로 남기를 원한다면 당신이 먼저 인생을 사랑해야 한다.
아파하고 싶지않다면 아픔과 친해져야 한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 영혼이 바라는 나의 모습과 친해져야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 주말만 기다리는 일주일의 인생이 즐거울리 없다. 매일 매일 뛸 듯이 즐거운 일이 있는 것도 서른 즈음 넘어가면 피곤해지는 것 아닐까? 주말마다 술마시는 것도 요즘은 별로라, 이왕 인생을 즐기는 것 일주일, 하루 마다 즐거운 일을 하나씩 만들어주기로 했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나 스스로를 잘 이해해야 한다. 매일 새로운 일을 찾아내서 그때 그때 충동적으로 즐거운 일을 만들기에 나는 루틴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다. 루틴이 깨지는 것도 싫고, 너무 새로운 일이라 그걸 하기 위해 또다른 to do list 가 만들어지는 것도 피곤하니까. 내가 이미 좋아하는 일 내에서, 쉽게 할 수 있어서 숙제까지 느껴지지는 않는 그런 일들을 찾아보았다.
월요일 - 장보기
외국에서 혼자 살게 되면서 느낀 건 생각보다 나는 요리를 해먹는 것을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다. 주중에는 요리를 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이번주는 건강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월요일 친구와 같이 장을 보러 갔다. 퇴근 후 운동 하고 나면 8시, 요리를 해먹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월요일 저녁 마트에 가서 이것 저것 간단한 것들을 사는 기분이 꽤나 좋았다. 새로운 마트를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이런 날이니 백화점 수입식품코너에서 쪼그만 치즈 하나를 사보는 것도 좋고, 외국마트에 가서 이런 것도 있네 하고 보는 것도 좋다.
화요일 - 셀프케어데이
화요일은 셀프케어데이로 정했다! 피부관리는 뭔가 하고나면 기분은 굉장히 좋고, 또 해보면 5분 10분 걸리는 일일 뿐인데 왜이리 귀찮은지. 장본 것으로 저속노화식단인 들기름 양배추 샐러드를 해먹고, 선물 받은 꽃을 체육관에 가져다주니 꽃이 이렇게 에쁘게 피었다. 깨끗하게 씻고 숨을 가다듬고 피부 관리를 하고, 꼼꼼히 스트레칭을 하면서 하루를 돌아본다. 화요일은 으레 "왜 아직 화요일"이지 하곤 했는데, 퇴근 이후 뭔가 기다리는 일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주말을 기다리는 느낌이 많이 경감되는 느낌이었다.
수요일 빨래 데이
수요일은 빨래를 하는 날이다. 이건 2년째 지켜오고 있는 약속이기도 하다. 수요일과 일요일. 빨래를 하는데, 기다리는 동안 옥상에 올라가 하노이 풍경을 보곤 한다. 12월부터 시작된 공기오염이나 흐린 하늘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이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래도 외국에 살고 있는 지금을 문득 문득 깨닫게 된다. 나는 얼마나 멀리가게 될까, 를 생각하기 보단 내가 여기 있는 현실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렇게 빨래를 하고, 빨래를 개고. 사뭇 지친 수요일은 그렇게 보송하게 마무리 했다.
목요일 - 과일 먹기
베트남에 산다고 하면 으레 와, 과일 정말 맛있겠다 하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막상 살게 되면 과일먹는 것도 어느정도의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일을 사고, 씻고, 또 과일은 뒷처리할 것도 꽤나 있지 않은가? 롱간, 리치 같은 것들은 까게 되는 순간 온 손이 축축하고 끈적하게 되고 만다. 그래도 베트남 씩이나 살면서 과일을 안먹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그렇게 과일을 안먹은지도 꽤 되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있던 과일 가게에서 몇가지 과일을 사, 정성스레 씻고 한입 한입 맛본다. 굳이 베트남에서 난 과일이 아니어도 이 날 집에가서 과일을 먹는다는 생각을 점심 이후부터 꽤 자주 했다. 단순히 목요일이고, 곧 금요일이고 주말이다, 라는 기다림이 아니라는 것 만으로 뭔가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은 하루.
그러다 금요일에 있을 무비나잇을 생각해보니, 기버터가 있다면 좋겠다 하는데까지 닿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마켓을 들러보았는데 뽀얗게 먼지쌓인 기버터가 불안해 직접 기버터를 만들어보기로 한다.포도를 한입 먹고 버터를 끓이고, 한입 먹고 거품을 걷어내고. 커피필터에 버터를 걸러주는 과정이 모두 끝났는데에도 9시밖에 안되다니. 퇴근 하고 운동하고 들어와 유튜브를 보다, 괜히 주말을 기다리던 시간에는 10시고 11시가 그렇게 금방 되던데!
금요일 - 무비나잇
정시에 퇴근한 금요일. 유쾌한 기분으로 퇴근하진 못했지만, 작은 일에 소중한 하루를 낭비하지 않기로 한다. 영화를 보려면 팝콘이 있어야 하니, 오랜만에 큰 몰에 들러 망고 주스를 한잔하고, 좋아하는 스시와 횟감연어를 사 나를 대접하기로 한다. 친구들 연락에도 오늘은 쉬겠다 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팝콘을 가득 튀겨 영화를 선택하는데..
영화 선택하는데 한참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이 현대인의 병인가보다.
결국 영화는 고르지 못하고 적당한 새로운 미드를 보다 잠든 금요일.
토요일 - 새로운 일 해보기 (테일러샵)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다. 기다리는 시간은 늘 길게 느껴지지만, 기다림에 시간을 빼앗겨 늘 짧게 휘발되는 것 같았는데 그 모든 것을 했음에도 매일 매일, 시간은 늘 9시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 주말엔 조금 더 도전을 해보기로. 봄과 여름에 입기 좋은 디자인을 골라, 옷을 만들러 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일어나 운동을 하고, 부슬 부슬 비가와도 테일러샵에 방문해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옷감을 사러 패브릭마켓에 다녀왔다. 끝나고나니 두시였는데, 이상하게 지치는 느낌은 아니었다. 좋군.
아마 이번주 내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킨건 단순히 과일과 마트는 아닐 것이다. 아마 내 시간을 내가 결정하고 있다는 주체성 같은 것이려나,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해 진행해야 했단 적당한 디지털 디톡스도 좋은 영향이지 않았을까? 주말을 기다리는 건 어쩔 수 없고, 주말이 짧은건 물리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는 건 내 몫일테니까. 이 도전은 다음주에도 비슷한 거리로 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