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고 나서야.
요즘 참 좋다, 라는 생각을 한다. 작년 이맘때 쯤엔 부쩍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더랬다. 그 힘은 겨울까지 빠지지를 않았고, 결국 몸이 다쳐 멈춰야“만” 했을때 비로소 얼마나 지쳐있었는지를 알았다. 다치고 나서도 얼마나 조급했는지 모른다. 불과 몇개월 전인데도 뭐가 그렇게 급했냐 스스로도 모를 정도다. 마음의 시간이 급할땐 그렇게 공연한 채찍질을 하는 것이다. 달릴 말도 없는데 해대는 채찍질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참 좋다. 하노이 하늘이 엄청 맑아진 것도 아니고, 마법처럼 장밋빛 필터를 씌워주는 누군가를 만난 것도 아니다. 공들인 프로젝트가 잘 끝나기는 했지만, 단순히 그 결과로 이런 마음을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뭐가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차차 알아갈 것 같다. 아마 시작은 다친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었을지도.
체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수술 한번 한 건데 라고 나를 몰아붙이지 않기로 했다. 핑계라도 해도 좋아. 수술을 했건 말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퇴근을 하고도 운동을 했다. 라는 사실만 받아들이면 되더라고. 그럼 잘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예전에 했던 건데 지금 못한다고 속상할 필요도 없다. 기분이 날아갈 것 처럼 기쁘지는 않더라도, 어떤 모양이던 운동을 하고 나면 오는 그 순간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공부도 시작하고, 새로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좀 더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려고 했던 것이 운이 좋게 업무로도 이어지고. 이건 뭔가를 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게 참 좋다. 이 작은 connecting the dots 의 순간들이 나에게 우연의 기쁨을 준다. 점은 억지로 엮어보려고 하는 순간 잘리고 휘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들도 충분히 있어야 하지만, 우연히 엮이는 점들이 만든 모양이 예쁜것은 인생의 또다른 빛이다.
나를 위해 한 일이 나를 지킨 셈 같기도 하고, 그 순간이 다음 나를 위한 선택을 할 때 용기가 되기도 한다. 뭐. 인생에 이렇게 선순환만 될때가 있겠느냐만. 이런 순간이 있을때를 충분히 즐겨두면 나중에 혼자를 괴롭히는 순간에도 그 즐거운 내가 나와 나를 혼내는 것이다. 야! 냅두면 잘될수도 있잖아. 뭘그래 하고.
조급하다고 되는 일이 없다. 심지어 스킨케어 하나도 그렇잖아. 얼굴이 푸석하다며 짜증을 냈던 날, 샤워를 하고 헛촤촤 시간 없다며 대충 치덕 치덕 로션만 발라대는 나의 이중성을 봤다. 그 시간 아껴서 뭘할 건데? 거울 앞에 서서 가만히 스킨케어를 하며 생각했다. 삼십초만 더 발라줘도 훨씬 촉촉하네. 다음날 내 피부는 더이상 푸석하지 않았고, 이로써 스킨케어 나 피부과 돈을 아꼈다. 뭔가 안되는 것 같을 땐 (뭘 사는 거 말고) 제일 작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보기로. 근데 그건 힘을 빼야 보인다. 눈을 부릅뜨면 시야가 좁아지더라고. 그래서 결론은.. 난 요즘 좋다. 당신도 좋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