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나 Nov 17. 2019

[인간의 흑역사] 꽤 참혹한 실수의 결과들


인정하자. 이 책은 정말 열심히 자료를 조사한 책이다. 인류의 발생부터 최근의 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수많은 인류의 멍청한 실수들을 열심히 책에 담았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첫 번째로- 내가 회사에서 수많은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위로를 받고 싶었고, 두 번째로는 재미있는 역사책을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재미를 얻건 지식을 얻건 두 가지 중 하나는 얻었어야- 가장 좋은 건 둘 다 얻는 것이지만- 이 책을 읽은 소기의 목표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론은 '둘 다 얻지 못했다'는 비극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지금까지의 글도 줄곧 번역체로 쓰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느끼셨는가? 도입의 '인정하자'는 'Let's face it'의 번역체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 책의 표지에 쓰인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그걸 찾지 못해서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작가님? 하고. 


1. 정보를 전달하려면 정보를, 유머를 하려먼 유머를


사실 이건 꽤 많은 외국 서적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다. 내가 읽은 외국 교양 서적 중 많은 작가들은 문장 사이사이에 캐주얼한 표현을 넣음으로서 뭔가 재미를 주려고 한다. 안타깝지만, 그건 내가 얻으려던 재미와는 다르다. 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즐거움을 느끼고자 한 것이지, 작가의 비꼬는 말투와 비관적인 어조로 즐거움을 느끼고자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51쪽에는 이런 문단이 나온다.


"그러한 재앙의 한 예는 1969년의 어느 따뜻한 여름날, 쿠야호가 강에 불이 난 사건이다.

맞다. 강이란 원래 불이 나는 곳이 아니다. 혹시 강이 무엇인지 잠시 헷갈리는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강이란 자연적으로 흐르는 큰 물줄기를 말하며, 물이란 일반적으로 불에 잘 타는 물질이 아니다."


아마도, 읽으며 재미를 느끼길 바랐나보다. 이게 문단의 끝이 아니다! 그는 이 문단에 이어 약 한 페이지의 반을 이렇게 '강'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사용한다. 강에는 일반적으로 불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와- 이렇게 신박한 종이와 잉크의 낭비가 있나. 나는 종종 이렇게 똑똑한 체 하는 사람들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참기가 정말 어렵다. 연필로 밑줄을 긋고 '쓸데없는 수식'이라고 적었다. 누군가는 재미를 느꼈다면, 그는 이 책에 맞는 독자였나보다. 나는 아니었다.



2. 작가님, 당신은 백인 헤테로 시스젠더 남성입니까?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고 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은 그려지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바로는, 그는 조금은 잘난 체를 좋아하고 역사의 뒷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나쁘지 않다. 말이 많을 수 있고, 유머를 섞다 보니 몇몇 사람에게는 안맞는 잘난 체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음 문단은, 나빴다.


"물론 역사적 인물의 실제 성적 지향에 대해선 그저 추측만 가능하다. (그리고 서구 사회에서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의 인식이 명확히 자리 잡은 것도 150년 정도밖에 안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루트비히 2세는 그냥 확실히 동성애자였다고 결론지어도 큰 무리가 아닐 듯하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루트비히 2세가 약속된 결혼을 미뤘다는 얘기 몇 문단과, 그가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 성에 집착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그 성들이 디즈니 만화와 로고 속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 그래서 해당 지역이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데, 루트비히 2세가 확실히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단정지을 필요는 조금도 없다. 전혀 없다. 작가는 그저 무례한 사람이고, 예쁘고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남성은 게이라고 단정짓고 있을 뿐이다.


사실 이 부분부터 작가 자체에 대한 애정이 떨어져서 책을 완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3. 동의할 수 있는 건 환경오염과 생태계에 대한 멍청한 짓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강하게 느낀 것은 있다. 인간은 멍청하고 자꾸만 자연을 바꿔놓으려한다는 것. 이 책에는 자꾸만 자의적으로 생태계를 바꾸려고 하다가 원래 있던 생태계를 교란시켜 골로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오스트레일리아에 20억 마리의 토끼가 있었다는 것은.. 지구인 1/3의 토끼가 있었단 것은.. 무섭고 놀랍다.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에 있어서 이러한 실수들은 정말이지 돈으로도 돌려놓을 수 없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자꾸만 이런 실수들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더라도 많은 사람들과 이를 공유하고 그들에게 이를 설득시키는 데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각자의 바보짓, 특히 지구의 무언가를 바꾸려는 바보짓을 서로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그 다음 실수를 막을 수 있을까? 전세계인들에게 접근 권한이 있는 트래커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환경오염 실태 및 해결방안 연구, 그리고 각성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환경 오염에 대한 심각성을 끊임없이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계속 오만하겠지만 그렇게라도 조금씩 나아지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장까지, 끊임없이 실수를 맛봤다. 단위를 잘못 맞춰서 몇억이 날아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불로초를 찾다가 수은에 중독되어 죽었다는 진시황의 실수도 만났다. 다만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던 부분은, 인간은 굉장히 멍청해서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런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백업 플랜을 세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수의 미학은 다음 번 실수를 방지하는 데에 있다. 실수가 있었다면 원인을 파악하고, 다시는 이런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으면 된다. 물론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바보짓들은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책에 실릴 정도로 큰 실수라면 분명 그는, 혹은 그의 국가는 해당 바보짓을 막기 위해 어떤 방지책을 세웠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격려도 필요했다. 시간 단위를 잘못 맞춰 수억의 돈을 날린 NASA가, 실수 이후에는 어떤 방법으로 이러한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였는지 같은 대책들 말이다. 실수를 통해 성장한 이야기. 다음에는 역시 그런 책을 읽고 싶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합니다.

www.artinsight.co.kr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