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고상해보이는 일이다. '하루하루, 클래식으로 마무리하기'라니. 거실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고, 3개 정도의 방이 있으며, 좋은 LP플레이어나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집에서나 할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확실히 아직 클래식은 내게 좀 먼 것 같다.
하지만, 이건 5평 반 정도 되는 우리 집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집에는 와이파이가 되고, 유튜브에는 수많은 훌륭한 클래식 실황 영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하루, 한 쪽이 넘지 않는 친절한 클래식 가이드를 읽으며 유튜브에 영상을 검색해서 재생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런 사소한 습관들로, 최근 내 2주는 행복하고 편안했다.
이 책은 내가 읽어본 많지 않은 클래식 교양 서적 중에 입문서로 가장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3분 이상 글을 읽거나 집중하기 힘든 현대인에게 하루 한 쪽만 읽어도 된다는 것 자체가 무척 부담이 적은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편견 없이 브람스와 엔니오 모리코네, 개인 에세이와 교양서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도저히 잘난체하는 책을 참지 못하는, 어딘가에도 정통하지 못한 독자로서는 큰 단점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이 장벽만 넘었더라면 세상의 수많은 좋은 책들을 읽었을텐데. 아쉽게도, 조금이라도 잘난 척하는 책, 가르치려 드는 책에는 반감부터 생기는 터라 수많은 책들의 마지막 페이지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음악의 역사적 배경, 음악가의 생애, 얽힌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유유히 오가면서 절대 가르치려들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작가는 5월 15일, 포레의 '장 라신 찬가, 작품 11번 Cantique de Jean Racine Op.11'을 소개하며 이 곡의 아름다움에 그가 감동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사가 주는 의미를 전혀 몰랐어도, 음악 자체가 주는 '의미'에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어떤 작품이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건넨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여러분이 누구든 상관없이 여러분이 느낀 것은 옳다는 것이다. 어떤 음악이 당신에게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그 음악의 의미다."
작가 클레멘시 버턴힐은 방송인이고, 작가이고, 소설가이며,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여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다재다능한 여성의 다양한 직업 경험은 그녀가 이렇게나 편견 없이, 다정하게 글을 쓸 수 있었던 바탕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책에서 작곡가 보로딘이 '러시아에서 여성도 똑같이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여성 의과대학을 설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욱 그의 팬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최근까지 이어진 여성 작곡가에 대한 편견을 생각해보면 불랑제 자매, 즉 나디아 불랑제와 릴리 불랑제의 업적은 더욱 돋보일 수 밖에 없다'며 지나간 여성 음악가들에 대한 조명도 놓치지 않는다. 합이 잘 맞는 작가를 만난 독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나는 출판사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분명 이 책을 내면서, 애플뮤직에 플레이리스트로 등록하거나 유튜브 QR코드를 연결하는 등, 디지털 매체와 종이 매체를 연결하고자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유혹을 뿌리쳐주었기 때문에 독자에게는 꼭 음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가벼운 마음을 주면서도 원하는 실황 영상을 찾아 들을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고 느꼈다. 덕분에 남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면서 읽기도 하고, 플레이리스트가 끝나면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다른 곡을 들어보기도 한다. (지금은 조성진의 드뷔시-달빛 연주를 듣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qVRcFQagtI
하루하루를 어떻게 쌓아가는가가 무척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나는 요즘 매일 퇴근해서 짧게나마 나이키 트레이닝으로 30-40분의 운동을 하고, 씻고, 클래식을 한 곡 듣고, 일기를 쓰고, 책을 한 챕터 정도 읽다가 잔다. 다 하면 2시간 반 정도의 루틴이 되는 것 같다. 이 두시간 반은, 내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시간인 것 같다. 온전해지는 기분이 들고, 나에게 잘해주는 기분이 든다.
이런 매일매일의 루틴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 작가와 출판사에게 감사하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YEAR OF WONDER'다. 사실 1일 1클래식 1기쁨이라는 제목보다 훨씬 문학적이고 멋진 제목이기는 하나, 한국어 제목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직관적이긴 하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제목을 이어보려고 한다. 하루 5분의 기쁨으로, 나의 한 해는 놀라운 Wonderous 한 해가 될 것 같다. 매일매일을 살다보면 1년이 될 테니까. 내일도 나는, 운동하고, 씻고, 클래식듣고, 일기 쓸 생각에 신난 발걸음으로 퇴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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