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나 Dec 02. 2019

일을 열심히 하고 싶지만 잡아먹히고 싶지는 않아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 - 장기하와 얼굴들

일을 열심히 하고 싶지만, 잡아먹히고 싶지는 않아.


이건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은 것만큼 중요하고 심각한 일은 아니다. 죽고 살고 하는 문제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내 지금의 상태가 딱 저렇다. 지금 나에게 가장 큰 목표의식은 저렇다.


일을 열심히 하고 싶지만, 잡아먹히고 싶지는 않다.


지난달 초과 근무는 20시간이었다. 세지 못한 시간들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시간제 계약직이니까 초과 근무가 의미 있지만, 운이 좋다면 앞으로는 그것조차 별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하루에 메일은 50개도 넘게 쏟아지고, 해치우지 못한 일들은 명치 언저리에 남아버린다.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도 일은 명쾌하게 끝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집에 가서 하겠다는 다짐들은 무너지기 일쑤라서 회사에 남아있다 보면 저녁을 먹고 9시 반쯤에야 퇴근한다. 집에 오면 10시 반, 패딩만 벗은 채로 잠깐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면 11시 15분, 그제야 씻으러 들어간다.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다가 슬쩍-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까 돌아보다 보면 1시. 웹툰을 보고 밀린 덕질을 하면 2시.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

장기하의 야속한 목소리만 귓가를 울리는 새벽이 된다.


일이 괴롭다거나 재미가 없다거나, 회사 사람들이 괴롭힌다거나 하는 일은 아니다. 분명히 참 다행인 부분. 하지만 어쩐지, 일하지 않는 나를 찾고 싶을 때가 분명히 있다. 워라밸을 분리하며 항상 퇴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숨 쉬듯 '명일', '협조 요청', '확인해보고 회신' 같은 말들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건, 내가 되고 싶은 나는 그보다 더 풍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 엉망인 글을 쏟아내는 데에 급급하지만 가끔은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 대부분의 글을 2차 창작으로 만들어내지만 언젠가는 1차 창작자로서 멋진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무슨 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글이면 좋겠다. 깔깔 웃으며 점심을 먹고, 누군가의 숨을 간절히 바라는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며 퇴근하는 길에는 버스에서 혼자 울다가, 밤의 버스에서 졸다가 내릴 버스정류장을 놓칠 뻔하는 사람들.


그래서 '너 혼자 그렇게 사는 건,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건 아니야'하고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해준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걸 수많은 작품에서 느꼈으니까.


나는 라디오를 듣던 저녁이나 향초를 켜던 밤,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글을 적어나가던 가끔의 오후를 지키고 싶다. 그래서 반대로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 그래서 더 정신 차리고 잡아 먹히지 말아야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일에 잡아먹히지 않고 나를 이어갈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팟캐스트를 합니다!(콘덕트 - 홍보/사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