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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Apr 26. 2020

미련의 크기만큼 쓰는 사람

2020년 4월 26일

기록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그런 것치고는 너무 흔적을 많이 남기는 사람이었다.


참 흔적을 많이 남겼다. 나중에 인터넷 장의사가 내 기록을 처리해야하는 날이 온다면 참 곤란해할 것이다. 추가비용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돈이 많이 드는 사람이네 나는. 추억의 버디버디부터 시작해서 있는 sns란 sns는 다 했고, 동시다발적으로 생각과 감정을 인터넷에 대고 소리치고 읊조리고 주절거렸다. 어떠한 클릭으로든 반응이 오면 행복했고 반응이 오지 않아도 꾸준히 외치기도 했다.


나는 삶에 미련이 많은가. 오늘 우연히 마주친 이수정 시인의 '가방'이라는 시에서는 미련만큼 출력한 종이를 가방에 담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것처럼 나도 말하고 싶었지만 순간 말하지 못했던 것들, 생각하고 싶었지만 스쳐지나가기만 한 것들을 적어내는 걸까.


아니면 그냥 흔적을 남기고 싶을 수도 있다. 나라는 사람이 있었고 살다 갔고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그런 걸 남기는 게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돌아보면 재미있을 때가 많았다. 나의 유희에 130명이나 되는 구독자들이 함께해주고 있어서 영광이기도 하고 곤란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구독하는 작가들의 수에 비해 내가 클릭해보는 브런치의 비율은 극소하며 심지어 알고리즘을 통해 보게되는 것들은 영 다르다는 걸 생각하면 곤란함이 쏙 덜어지기도 한다. 곤란한 채로는 글을 이어갈 수 없다)


햇살이 좋았고 뒤통수가 뜨거웠다. 아주 크게 웃었고 코를 여러 번 찡긋거렸다. 선배는 햇살에 피부를 지졌고 동료는 햇빛을 피해 담벼락 밑 의자에 눕듯 앉았다. 보라색 머리는 멀리서 보면 박완규 같았고 난생 처음 밴드 보컬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뭘 숨기지를 못하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가 웃겼다. 어쩜 이렇게 나불나불 불나방이지..


공원 옆의 높이 솟은 빌딩을 보고서야 나는 나불나불을 멈출 수 있었다. 아득하고 멀었다. 나는 저런 집에 살 날이 영영 오지 않겠지, 도대체 그런 날들은 어떻게해서 올 수 있는 걸까, 누구에게 그런 날들이 가느라 나에게는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코로나가 전세계를 휩쓴 세상에서도 꾸준히 월급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나, 결혼 25주년을 맞아 아내에게 결혼 후 처음으로 반지를 사주는 누군가, 언젠가 벌 400억을 꿈꾸며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조용히 여덟 평 나의 우주로 돌아온다. 4월의 끝자락에도 뜨겁게 일해주고 있는 침대 위 전기장판에게 감사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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