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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Nov 06. 2017

6. 마법보다도 더 마법같은

마법의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 해리포터 스튜디오 런던

해리포터의 팬이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언제 처음 해리포터를 만났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3편 즈음부터 영화관에서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해리포터를 전부 영화관에서 보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한 두 편 정도?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난 대체 언제 어떻게 해리포터의 팬이 된걸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TV를 달고 살았던 나는 - 물론 지금까지도 기회만 된다면 TV와 붙어 살지만 - 주로 OCN을 통해 해리포터를 봤다. 방학이 시작할 때마다, 혹은 크리스마스마다 ".....은 해리포터와 함께! 전편 연속 방송"이라는 홍보 문구를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나는 최소 두 편 씩 챙겨봤고 결국 8편의 영화를 최소 5번씩은 봤다. 심지어 재미없는 혼혈왕자도. (가장 좋아하는 편은 3편 아즈카반의 죄수다.)


 해리포터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헤르미온느에 대한 선망이다. 멍청하고 귀여운 론도 좋고, 용감한 해리도 좋지만 역시 헤르미온느. 나는 언제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그들을 좋아했다. 길모어 걸스의 로리 길모어가 그랬고 해리포터에서는 헤르미온느가 그랬다. 예쁘고 똑똑하고 사리분별이 넘치면서 당당한 헤르미온느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엠마 왓슨과 오버랩되어 항상 나만의 순위 리스트에서 선망하는 캐릭터 1순위에 자리했다. 유튜브로 수많은 Hermione Moments, Ron-Hermione moments, Bloopers를 보며 나는 해리포터 영화의 팬이 됐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해리포터 팬이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었다.. 그 수모는 갚는 중이다.)


J.K.롤링의 이름을 딴 것인지 J빌딩과 K빌딩으로 나누어져 있다.


흔한 해리포터 덕후, 런던 스튜디오에 가다


 런던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 중 하나는 해리포터 스튜디오에서의 시간들이다. 런던 중심에서 넉넉잡아 한시간 가량 떨어져있는 해리포터 영화 촬영 스튜디오는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투어 형식으로 티켓이 판매되고 있다. 가이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입장하면 간단히 투어를 소개받은 뒤 혼자 돌아보면 된다. 두 건물을 다 돌아보고 각종 체험을 다 해보는 데에 넉넉잡아 약 4시간이 걸렸다.


 Watford Junction에 도착하면 해리포터 스튜디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 눈에 띄게 표시되어있으므로 구글맵의 안내를 따라 (대개는 Euston 역에서 출발한다) Watford Junction까지 가면 된다. 그곳에서 2층 셔틀버스를 타고 허허벌판과 숲길 사이의 어떤 길을 달리면, Voila, 텅 빈 공터 속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도착한다. 비가 흩뿌리는 우중충한 날씨 속 나는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날씨도 딱이라고 생각했다. 맑은 날 왔다면 이상했을거야.


가장 좋아하는 3편에서의 의상! 마법 대신 말포이 얼굴을 한 대 치는 장면에서 입었던 옷들이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에는 그간 출연진이 입었던 의상, 촬영에 사용되었던 소품, 촬영장,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있다. 해리가 볼드모트와 마지막 대결을 펼칠 때 입었던 자켓은 더러워진 정도에 따라 30벌이 구비되어 있었고, 주요 출연진 뿐만 아니라 보바통 마법학교의 플뢰르 델라쿠르(하늘색 옷을 입은 프랑스 마법학교 출신 마녀로 4편 불의 잔에서 트리위저드 컵에 참가했다.)의 옷, 엑스트라들이 착용했던 모자들까지 전부 전시되어 있었다.  

 

 해리의 옷은 볼드모트와 뒹굴고 날아다니며 점점 더러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같은 자켓이 수십 벌이라니.. 할리우드 최대의 프랜차이즈 영화는 역시 달랐다. 플뢰르의 옷은 영화상 몹시 고급스러운 벨벳 느낌이었는데 실제로는 기성복 같아서 슬펐다.. 사용된 소품들도 그대로 있었는데, 호그와트 벽에 걸렸던 수많은 그림들, 시리우스 블랙의 집에 있었던 족보 태피스트리, 퀴디치 공, 기차까지 완벽히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린 스크린 앞에서 빗자루와 의자의 묘한 조합에 앉아 빗자루 위 CG를 체험해보기도 했고, 신장 120cm가 넘지 않는 아이들 사이에서 꿋꿋이 줄을 서가며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들고 지팡이 싸움 동작을 배우기도 했다. 알콜이 없는 버터맥주는 아쉬웠지만 어린 해리가 살던 cupboard도 보았고 벅빅(위더윙즈)과 인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 마법의 세계는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영화 속에 들어왔다는 생각보다는 '이걸 일일이 다 만들었어?'에 놀랐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호그와트


 두들리네 집과 호그와트 다리를 지나 도착한 곳은 설계 도면이 가득한 곳이었다. 입구 영상에서 엠마 왓슨은 여태까지 본 것들 중 가장 마법같을(magical) 거라고 말했다.

 "그냥 엠마 왓슨이 나타나면 그게 제일 magical 할텐데."


 솔직히 그때까지의 나는 해리포터 스튜디오 투어에서 생각만큼 감명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해리포터는 '짜잔, Welcome to wizarding world! 마법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였다면 해리포터 스튜디오 런던 투어는 '사실 해리포터 세계는 이렇게 하나하나 직접 만든 거란다.'라는, 환상 깨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 옷들은 생각보다 초라했고 마법같았던 물건들은 화면의 필터 없이는 그냥 촬영 소품이었다. 빗자루를 태워준 CG는 조악했고 호그와트 익스프레스는 생각보다 작았으며 대연회장도 좁았다. 전부 생각보다 작고... 초라했다. 아, 영화는 역시 영화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딱 그 건물의 전시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벽에 걸린 수 십, 수 백 장의 설계 도면은 호그와트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고 초기 구상 단계의 캐릭터 컨셉 아트부터 완전히 영화의 스틸 사진 같기도 한 장면 컨셉아트들은 감동적이다 못해 벅차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려가며 작업한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J.K.롤링의 글이 장면이 되고 영상이 되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그 과정 속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로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만들어 낸 영화 장면들이 컨셉 아트와 겹쳐지며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나의, 수많은 관객들의 즐거움을 위해 완벽한 마법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그들이 보냈을 시간과 노력들이 묵직하게 와닿았다. 호그와트부터 그 주위 호수까지 그려낸 인테리어 모형, 그리고 그 부분부분을 확대해서 만든 모형, 이 종이를 구상하고 접었을 사람들. 나는 완성까지 그들이 지새운 밤과 이 모형을 만들어낸 그들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전시장에 있었던 1:24 크기의 호그와트는 이 모든 감동의 정점이었다. 호그와트 건물 밖을 훑는 영화 속 장면들은 당연히 CG로 만들어냈으리라 생각했지만 사실 아티스트들은 두 달의 세월 동안 이 모형을 만들어내고 수백개의 광섬유를 이용해 불을 밝혔다. 모형을 만들고 그 자리에 조립하고 호그와트를 세운 뒤 카메라는 원하는 방향으로 그 밖을 찍고 리터칭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호그와트 모형이 모든 전시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인 것을 전시 기획자도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전시장에서는 내내 벅차오르는 현악 중심의 해리포터 OST가 흘러나왔다. 


 장엄하고 웅장하며 이 마법세계를 마무리하는, 최후의 전시장다웠다. (방문객은 이 감동을 안고 기념품샵으로 바로 이동하게 된다.)



마법보다 더 마법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해리포터는 놀라울 만큼 '실사' 영화였다. 주제가 마법일 뿐, 대개 CG의 힘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정말 모든 것이 직접 만든 것들이었다. 8편 영화를 촬영할 때에는 호그와트를 정말 부쉈으니, '진짜'에 대한 집착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해리포터의 마법 세계는 마법보다 더 놀라운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세계였다.

 

 기분이 묘했다. 마법 주문으로 많은 것이 해결되는 세상을 꿈꾸며 이 스튜디오에 들어왔던 나는,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감동을 받고 투어를 마쳤다. 결국 마음을 움직였던 건 영화 속 마법 세계의 소품들을 보며 느꼈던 전율이 아니라 마법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몰두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며 나는 자주 나의 미래를 생각한다. 거의 내내, 모든 생각의 종착은 나의 미래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 날은 호그와트를 보며 생각했다.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 혼신의 힘을 바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 나의 노력이 누군가에게 뭉클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면.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 글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 읽을 리도 없겠지만 - 나의 마법 세계를 만들어준 모든 사람의 뭉클한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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