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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Nov 28. 2017

7. 차별에 맞서 살아가기

20대 초반의 동양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

함께 네덜란드에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들과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딱 한 번 만이라도 백인 남자로 살아보고 싶어. 권력의 중심에 있어보고 싶어."

"내가 백인 남자였어도 그랬을 것 같아? 절대 안 그래.'


일종의 피해의식처럼 자리잡아버린 인종차별, 성차별에 대한 예민함은 일상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암스테르담에 살면서 나는 방문한 어느 유럽 국가보다도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고 느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내가 예민한 건가?' 생각을 하게 된다. 때때로는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묻지도 않고 중국인이라고 확신하며 말을 거는 사람들, 의미없는 캣콜링, 자꾸 쳐다보는 시선. 그렇지만 대개는 살만하다.


오늘은 학교에 가다가 차도에서 Ni Hao, 소리가 들렸다. 참 비겁하다. 내려서 직접 말하지도 못하고 지나가면서 외친다. 어차피 내가 달려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만약 화를 내더라도 자신은 차를 타고 가버리면 그만이니까. 나도 똑같이 그 점을 이용해서 오늘은 엿을 날렸다.


여태까지는 쳐다보지 않거나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에게는 그 정도의 대응이 충분치 않거나 필요치 않다. 우리를 길가의 원숭이 취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몰상식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랍인이 지나간다고 '앗살라말라이쿰', 혹은 프랑스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지나간다고 '봉주르'말하지 않는다. 아시안이 지나갈 때만 그렇게 말을 거는 것이다.




유아인의 트위터가 지난 주말부터 난리였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 시간 기준으로 금요일 밤부터. 유아인의 말투에 대한 유머글은 '애호박으로 맞아봤음?(코찡긋)'이라는 유아인의 답멘션으로 폭력성 논란이 일었고, 유아인은 이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하고 더 나아가 무례하고 필요치 않은 발언들로 트위터리안을 저격했다. 이제는 트위터 상의 페미니즘을 폭도라고 매도해버리며 '정상'의 여성인권을 위해 자신이 '도와' 싸우겠다고 말한다.


이 사건을 보면서 나는 작년의 과 성폭력 사건을 떠올렸다. 사실 처음부터 떠올랐던 것은 아니고 지금 내가 겪는 감정이 뭘까 생각하다보니 연상됐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느낀 배신감.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억울함. 답답함. 일상이 매몰되고 한숨이 나온다. 성차별을 바라보며 자랐지만 급진적인, 사실 그렇게 급진적이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는 금지한다. 자신이 불편하기 때문에. 정상이 아니고,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며 나아갈 수 있는데 굳이 불편함과 불쾌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유아인은 이미 빛아인, 킹아인이 되었다. 그는 앞으로 어떠한 캐스팅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고 또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다시 유아인을 좋은 배우로 인식할지 모른다. 이미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고 말하면서 유아인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는 심지어 페미니스트 선언도 했다. 이제 사람들은 유아인이 허락한 페미니즘만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휴머니즘과 이퀄리즘이 페미니즘이라고 말할 것이다. 더욱 당당히 페미니즘을 '메갈짓'으로 몰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성에 갇힌다. 임금 차별처럼 눈에 보이는 차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미묘한 것들이 더 어렵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 시선들, 결국 나의 일상. 그 일상을 깨부수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은 다시 영향력있는 누군가의 말로 '불쾌한 예민함' 정도로 요약된다. 성벽을 깨부수던 사람들은 폭도로 싸잡히고 정신을 차려야 할 사람들로 낙인찍힌다.


오늘 나는 나름 떳떳하게, 처음으로 손가락으로 엿을 날리며 인종차별에 저항했다고 생각했다. 나름 통쾌하다고 느꼈다. 이 정도의 담대함을 갖추었군-하며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주저앉는다.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앉듯 우울해진다. 우울감을 이겨내고 다시 싸워야하지만 나는 그만큼 강하지 않다. 따뜻한 오렌지 차와 달달한 계피향의 더치 애플 파이로 힘을 내려 했지만 속이 더부룩할 뿐이다. 다시 강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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