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어요, 솔로몬?
편도로 티켓을 끊었다. 묘한 쾌감이었다. 결국은 돌아오겠지만 일찍부터 정해두고 싶지 않았다. 가서 너무 힘들 수도, 혹은 도저히 오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학교가 끝난 뒤에는 유럽 여행을 하다 올 생각이었다. 어느 곳에서 출발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편도.
“동무는 어떤 티켓을 끊겠소. 잘 생각하시오. 왕복 티켓을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으로 이득이오. 지금 섣부르게 행동하면 수수료를..”
“편도.”
킴나는 완강한 의지를 보였다. 항공사 직원은 컴퓨터를 한 번, 나를 한 번 쳐다본다.
“동무. 교환학생도 결국 끝이 있는 여행이오. 어차피 끝날 여행, 미리 마음을 정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 아니오?”
“편도.”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한국을 왜 떠나려는 거요?”
“편도.”
중국샤먼(下門)항공을 이용했다. 엄마는 중국 항공이니 위험하지 않겠냐며 걱정했다. 하지만 편도에 싼 가격은 샤먼항공밖에 없었다.
“엄마, 샤먼항공은 SKYTEAM이니까 대한항공이랑 같은 마일리지 써. 에어프랑스도 SKYTEAM이잖아. 괜찮을 거야. 최근에 시진핑이 밀고 있는 항공사래.”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국가원수까지 동원해가며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보태 엄마를 설득했다. 후에 깨달은 일이지만, 마일리지를 같이 쓰는 항공사라고 해서 짐의 안전 혹은 나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가격이 이렇게 쌀 리가 없다.
그렇게 야간비행기를 탔다. 인천공항에서 출발, 중국 샤먼에서 환승해야 했다. TV프로그램에서는 샤먼이 그렇게 좋다던데. 나도 저기서 안재현이 먹은 게살카레 먹어봐야하는데. 현실은 깜깜한 밤이었고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환승 시간은 총 1시간 반이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이륙이 지연되었다. 그러니 환승시간이 더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환승할 때는 빠르게 움직여서 다른 사람들과 헤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블로그 후기가 생각났다. 나는 타자마자 파란색 샤먼 환승 스티커를 어깨 위에 붙인 뒤 한국인들에게 강한 눈빛을 보냈다. ‘여러분, 저 샤먼 환승해요.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저는 혼자랍니다. 같이 가요.’
혹시나 그들이 나의 눈빛을 눈치 채지 못했을 수 있으니, 나도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결국 끝까지 비었다.) 대신 옆옆자리 남자는 내가 일찌감치 어깨와 쇄골 사이 즈음에 붙여둔 스티커를 알아채고 말을 걸었다.
"암스테르담 가시나봐요."
앗, 네.
"아 저도.. 잘 부탁해요"
하하.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서로의 학업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나는 학사 과정 속에서 암스테르담 반년, 그는 석사 과정 1년을 위해 로테르담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여차하면 그곳에 정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꽤 중압감이 있죠."
심장부근을 문질문질하며 말했다.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간다고 하니 부럽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그리고는 네덜란드에 가는 이유를 물었다. 당시만 해도 네덜란드에 대한 관심은 전무한 상태.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여행 많이 하려고요. 네덜란드는 유럽 중심에 있으니까 여기저기 가기가 편할 것 같아서요.
부럽다며 여기저기 열심히 다니라고 했다.
뜬금없이 비행기 가격을 물어봤다.
"비행기 저는 편도거든요. 얼마에 구하셨어요? 저는 구글플라이트로 88만원에 구했거든요."
자랑스러운 듯 했다. 자랑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아 저도.. 편도고.. 저는 55만..원... 스카이스캐너요.”
남자의 표정은 급격히 굳어졌다. 머리를 감쌌다. 잘못 샀다며 연신 중얼거리다 다시 물었다.
"언제 구하셨어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5월 초 쯤 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아, 아닌가, 4월 쯤이었던가..
"아마 4월이었을 거에요. 제가 5월에 구했는데, 저는 대학원 결과가 그 때 나왔거든요."
나는 2월에 이미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조금 마음을 놓은 얼굴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 했다.
야간비행으로 어두워진 비행기 내에서 안대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이내 라이트를 켜고 한국경제를 읽었다. 로지스틱스 관련 해외 업무를 하다 관련 석사 학위 공부를 하러 간다고 했다. 나스닥 지수를 한 줄 한 줄 그어가며 확인했다. 배가 불렀던 것인지 기내식도 먹지 않았다.
"아이 돈 니드 애니띵"
왠지 모를 결연함도 느껴졌다. 허기보다는 삶의 무게가 위를 누르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알고 보니, 기내식이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미리 듣고 왔기 때문이었다. 남의 삶에 대해 지나친 추측과 걱정을 하다 보면 외려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당연히 음료도 거절하겠지 생각했지만 맥주를 달라고 했다. Snow 뭐라고 써있는, '설화'라는 중국 맥주가 전달됐다. 원래 맥주를 좋아하거나, 긴장이 가시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느낌 때문일지 모르지만 맥주를 마신 뒤 내뱉는 숨도 무거웠다. 6개월 뒤의 삶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나로서는 전혀 모를 감정이리라. 남자의 무거운 마음에 일조했다는 기분에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환승을 지나 머나먼 암스테르담에 착륙하기까지 남자와는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다. 착륙해서 내릴 때 우연히 근처에 있어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회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으레 듣는 ‘사회학에서는 뭐 배워요?’라는 질문에 '종교사회학', '젠더 사회학' 등의 과목으로 예시를 들었다. 그런데 그는 '아.. 젠더 사회학..'하며 말을 흐리는 것이 아닌가. 뭐지, 이 사람도 페미니즘 싫어하나 하는 생각에 예민해졌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의 애인은 미국인 여성으로 한국과 네덜란드에서도 거주하며 젠더 이퀄리티에 대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여차하면 네덜란드에 정착하려고 한다는 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괜히 의심했군.
그는 본인의 여자친구가 네덜란드에 거주해보았으니 내가 호스텔에 찾아가는 길을 찾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했다. 내 짐이 나올 때까지 친절하게 기다려준 남자 덕에 나는 상냥한 그의 애인을 만나 조금의, 많지는 않지만 조금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충분히 고마웠다.
짐을 찾고 출국 게이트를 나서기 직전, 그는 애인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나의 영어 이름을 물어봤다. 그의 이름은 S라고 말했다. 나는 J라고 소개했다. 아무 의미 없는 영어 이름만 나누는 사이라니! 난생 처음 가져보는 관계의 사람이었다.
그는 3시간을 기다렸다는 애인과 진하게 포옹한 뒤 애인에게 나의 숙소 가는 길을 물어봐 주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지하철을 타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이민가방에 캐리어, 배낭까지 메고 있었기 때문에 택시를 탈 계획이었다. 예상치 못한 답변 덕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알겠다고, 내가 잘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럼 저흰 이만 갈게요. 잘 사세요"
처음 해보는 헤어짐의 인사였다.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민박객들에게 고했던 작별 인사같았다. 우리는 더 이상 연락하지는 않겠지만 이 정도 인연이 있었던 사이로서 잘 살기를 바랄게요, 이런 정도의 미지근한 따뜻함.
네, 안녕히 가세요! Thank you. Bye!
S의 풀네임은 솔로몬이었다. 현명함의 상징. 그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로테르담에서 공부하며 길가에 쏟아지는 햇살을 받고 있기를 바란다. 아,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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