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상처에서 치유되기 – Café Bern

by 킴나

교환학생의 묘미는 외국인 친구 사귀기다. 그냥 친구를 사귀면 되지, 굳이 외국인일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면 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교환학생이라면 모름지기 친구들과 계속 파티를 열고 맥주를 들고 쿨하게 방안을 오가며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맥주에 미국산 싸구려 과자를 던지고 벌개진 얼굴로 방을 오가며 다음날 기억할 수 없는 사진들을 마구 찍는 것. 그런 희망사항 같은 것이 있었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스스로를 겪었으면서 그런 상상을 하다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파티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차라리 왕좌의 게임을 정주행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파티에서 외국인 친구 사귀기’의 목표는 실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교환학생을 받는 학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교환학생을 잘 챙겨주는 학교, 그렇지 않은 학교. 안타깝게도 암스테르담 대학교는 후자였다. 유일하게 챙겨주는 것은 꽤 많은 돈을 내고 참가할 수 있었던 ‘인트로덕션 위크’였다. 무작위로 교환학생들을 15명 내외의 한 조로 묶어서 미션도 하고, 밥도 먹고, 클럽도 가는 것이다.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갑갑함을 느꼈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고 인트로덕션 위크에 참여했다.


완전히 모르는, 새로운 무리에서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하나다. 근처에 앉아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눈을 마주치고 ‘안녕!’ 말을 건네는 것이다. 첫 모임 장소에서 뭔가 재미있을 것 같은 친구들 근처에 앉아 슬쩍 말을 걸었다. D와 N은 독일 사람이었다. 첫인상이 귀여웠다. 뽀글머리와 쾌활한 친구. 내가 저 멀리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왔다고 하니 용기가 대단하다고, 독일에서 암스테르담은 경계 하나만 넘은 셈이니 별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나를 치켜세워주는 친구들이라니, 예감이 좋았다.


하지만 기분 좋음은 거기까지였다. 조금씩 말을 하면 할수록 그들은 무례해져갔다. 간단히 자신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는 중이었다. 주제가 다룰 수 있는 악기로 넘어갔다. D는 드럼을 연주할 줄 안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도 물었다.


“너 악기 할 줄 아는 것 있어?”

나는 배우려고 시도한 악기가 꽤 많다. 기타도 코드 몇 개 쯤 짚을 줄 알고, 드럼도 3개월 배웠으며, 피아노는 악보를 보고 칠 정도는 된다. 하지만 이중에 제대로 할 줄 아는 악기는 바이올린밖에 없기 때문에 바이올린이라고 답했다.

“아, 나 바이올린 할 줄 알아. 대학에서 오케스트라 동아리 했거든.”

그러자 D와 N이 한 번 눈길을 교환하더니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무릎까지 두드려가면서.

“왜, 왜? 뭐가 웃긴데?”

“아, (웃음) 정말 미안한데, 너는 정말 전형적인 아시안 클리셰야.”

“어떤 점이? 바이올린이? 뭐가?”

황당했다. 아니, 내 친구들 중에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그저 내가 그 드문 경우 중 하나일 뿐인데?

“아시안 여자애가 바이올린 하는 거. 아시안들은 뭔가 더 엄격한 훈련을 받을 것 같잖아. 바이올린은 다른 악기보다 어렵고. 하하.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 하하하.”


하하, 내 기분은 점점 나빠졌다. 그들 말대로라면 온 세상 교향악단에는 아시안 바이올리니스트만 있어야 한다. 아시안에 대해 말도 안되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다른 악기에 대한 모독이기도 했다. 너희가 오보에가 얼마나 힘든 악기인지 알기나 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에는 성형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사실이냐’, ‘왜 그런 것 같냐’ 등 처음 만난 사이에 무례한 질문을 해댔다. 조심스러운 태도는 전혀 없었다. 삼류 가십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혹은 <세상에 이런 일이> 속 이야기들을 검증하는 시간 같았다. 만약 내가 성형을 했으면 어쩌려고? 한국 사람들이 우산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해서도 비웃었다. 달빛에도 우산 쓸 사람들이라면서. 너넨 산성비 맞는게 자랑이다. 독일에는 한국에 대한 찌라시가 나오는 삼류 프로그램이 있는 모양인데, 그 프로그램이 다 맞았다면서 자기들끼리 깔깔대기 시작했다. 이미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나는 그들만큼 영어가 유려하지 않은 사람이고, 바로 나와서 다른 그룹을 찾을 자신도 없었다. 그러니 그저 애매하고 어색하게 웃고 있을밖에.


모임 장소에서 나와(맞다, 놀랍게도 지금까지의 무례한 대화는 모두 첫 모임장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암스테르담을 누비는 미션이 있었다. 나는 애매하게 그들 사이에 껴서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본 잡화 가게를 지나며 기모노를 보더니 N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 옷, 한국 옷이야?”

“아니. 저건 일본 옷이야.”

“아, 뭐가 달라? 한국, 중국, 일본은 다 붙어있어서 서로 거의 똑같잖아.”

기가 찼다. 영어로 화를 내는 것은 어려우니 그냥 흥분하며 설명했다.

“아니, 우리는 한복이라고 다른 게 있어. 저렇게 딱 붙는 스타일이 아니야.”


무식하고 뻔뻔했다. 한국-중국-일본이 같은 나라라고?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다면 독일-네덜란드-벨기에도 다 같은 나라란 말인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음악이라면 자신 있는 사람이라서, 주로 K-POP이나 Korean Indie Music을 듣는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또 빵 터지는 것이었다. 이제는 정말 너희들의 웃음코드를 모르겠다, 얘들아.


“K-POP? 그게 뭐야?”

“어... 한국-팝. 코리안-팝 음악이지. 그렇게 많이 말 하는데?”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에? 나는 처음 들어봐 하하. 그런 말도 있어?”

여기서 중국 친구가 끼어들었다.

“하하. 그게 K-POP이면 나는 C-POP이야?”

그런가보지. 야, 너네 나라 가요 시장 발달하지 않은 게 내 탓이야?

“어... 싸이 몰라? 우리는 그렇게 말하는데? 그리고 이거 전세계적인 용어로 알고 있는데? 다들 그렇게 말해.”

(싸이 모르냐고 물어보는 질문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크크. 어쨌든 나는 몰라.”

같은 조였던 친구들. 우연히도 이 사진에 나온 친구들과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네..?

아, 정말. (한숨) 참고로 말하자면 K-POP은 실재하는 문화다. 방탄소년단까지 가지 않아도 나는 네덜란드에서,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에서 종종 K-POP을 들었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매니아층도 꽤 많다. 8월에, 종영한지 6개월도 지난 도깨비 OST를 벨소리로 해 둔 스페인 여자를 만나 놀란 적도 있었다. 곤규(Gon-gyoo...?)좋아한다고 했다. K-POP으로 놀림받은 지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지금 빌보드 TOP 200에 방탄소년단 앨범이 1위로 올라가는데, 너희가 K-POP이 뭐냐면서 나를 비웃어?


이들과의 대화에 지쳐갈 때쯤이었다. 나는 우연히 새로운 그룹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들은 내게 무례하게 굴지 않았고,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나는 기꺼이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도 성형수술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다만 전혀 다른 어조였다. ‘이런 질문이 바보같을 수 있고, 너에게 공격적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조금 궁금해서 물어본다.’는 말을 덧붙였다. 말은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하루 종일 한국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영어로 설명한 뒤 완전히 지쳐 집에 들어왔다. 다음 날도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그 날 오후에 미리 잡은 약속이 있었다. 호스텔에서 침대를 실수로 배정해주는 바람에 서로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다음날 아침 자초지종을 알게 되어 화해한 미국인 친구였다. 밥 한 번 먹자는 이야기는 일주일 만에 실현되었다. 오전에만 잠시 프로그램에 갔다가 선약이 있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 곳을 탈출했다.


그 미국인 친구의 이름은 엘레나다. 엘레나는 문자로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딱히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엘레나가 먹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며, 4시 반 쯤 만나자고 말했다. 그리고 엘레나가 데려간 곳이 카페 베른(Café Bern)이다.



출처 : tripadvisor

카페 베른은 Nieuwmarkt 지역에 있는 카페 겸 식당으로 가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스위스 요리를 하는 곳이다. 사실 나는 그 다음 주에 베른을 갈 계획이었지만 어차피 비싸서 스위스 요리를 먹지는 못할 테였으니, 카페 베른에서 퐁듀를 먹는 것에 동의했다. 가게에는 실내와 야외 테이블이 모두 있다. 식사가 아닌 커피, 차, 와인이나 맥주만 마시는 것도 가능하다.

출처 : thatfoodcray.com

주력 메뉴는 전통 치즈 퐁듀(Cheese Fondue)와 스테이크(Entrecote Café Bern)다. 우리는 퐁듀와 스테이크, 하우스와인을 시켰다. 퐁듀는 빵과 함께 잔뜩 녹인 치즈가 한 솥 나온다. 빵은 리필 가능하고 치즈는 꽤 짜다. 하지만 계속 찍어먹게 되는 맛이다. 스테이크는 썰어진 채로 나오는데, 은(혹은 스테인레스) 접시 가장자리에 놓여 있고 가운데는 허브 버터 크림 소스가 넉넉하게 뿌려져있다. 카페 베른은 스테이크가 과하게 익지는 않되 버터크림소스가 식어 굳지 않도록 밑에 작은 램프를 받쳐주는 섬세함까지 보여준다. 스테이크는 고기가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정도는 아니지만 같이 어울려 나오는 허브 버터 크림 소스가 고기의 질도 커버할 만큼 포인트다. 남은 소스는 빵도 찍어 싹싹 긁어 먹게 된다. ‘Chemin Blanc’이라는 하우스 와인도 주문했다. 나는 술을 보기만 해도 취할 정도의 주량을 가져서 많이 마시지는 못했지만 와인은 조금 쓰고 깔끔해서 스테이크와 잘 어울렸다.


와인 한 잔 마셨다.
싹싹 비운 소스와 스테이크

엘레나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우리는 각자 무엇을 전공하는지,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했고 암스테르담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그리고 엘레나는 인트로덕션 위크가 어땠는지 물었다.


“아, 사실 좀 힘들었어.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야 했는데 아시안에 대해 선입견을 가진 사람도 많고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거든. 한국, 중국, 일본이 다 같은 나라 아니냐고 물어보더라고.”

엘레나는 몹시 황당해했다.

“아, 정말 끔찍하다. 말도 안 돼. 너네 쓰는 문자도 다 다르잖아.”

엘레나는 자신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를 문자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퀴즈를 내보았는데, 정말 다 맞혔다. 평소 한자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고, 각 언어가 같은 한문 글자를 다르게 읽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그래, 이것 봐. 너처럼 관심이 많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하더라고. 너무 기분이 나빴어.”

“진짜 그랬겠다. 나는 괌에서 태어났어. 근데 사람들이 거기 달러 쓰냐고, 영어 하냐고 물어봐. 당연하지! 미국령이니까 달러 쓰고 영어도 하지! 게다가 잎으로 만든 치마 입냐고도 물어봐.”

엘레나는 피부색이 짙은 편이었다.

내 피부색이 짙잖아, 그러니까 미국인이라고는 다들 생각도 안 해. 정말 외모로 판단하는 것 지긋지긋하고 몰상식하고 무식한 발언도 지긋지긋해. 그런 사람들은 진짜 모자란거야. 마음에 담아두지 마.”

자신의 이야기까지 털어놓아가며 위로를 해준 엘레나 덕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꽤 억울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는데, 그 호기심은 때로 무식함이 되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잘 알지 못하는 문화에 대해서 물어볼 때에는 기본적인 존중이 필요하다. 국적이나 생김새처럼 내가 선택한 적도 없는 것들로 평가를 당하다니. 황당하고 억울했지만 우리는 각자의 경험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는 즐겁게 먹고 마시다가 아쉽게 헤어졌다. 그리고 네덜란드 전화번호가 아닌 한국/미국 번호도 교환했다. 서로의 나라에 간다면 꼭 연락하기로 했다. 비록 그 이후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지만 정말 미국에 간다면 연락해 볼 생각이다.


“안녕, 엘레나? 나 그 때 암스테르담에서 같이 퐁듀 먹었던 킴나야. 기억 나니?”



사진 출처 : City Seeker

Café Bern

Nieuwmarkt 9, 1011 JR Amsterdam

매일 오후 4시에서 오전 1시까지 영업

(식사는 6시부터 가능 – 2017년 8월 기준)

+31 20 62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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