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속에서도 빛나는 삶의 의지
<책 내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책과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합니다. 김연수 작가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과 연결할 첫 곡은 김해원의 '파도와 나의 변화'입니다. 함께 들어주세요.
사진이 탄생한 후 사람들은 순간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기록은 완전하지 못하다. 카메라는 순간의 장면을 포착할 뿐 사진은 그 때의 공기, 소리, 맥락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진은 모르는 사실을 알아가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카밀라는 지은의 사진을 발견하며 모든 여정을 결심한다. 동백나무 아래 지은의 사진은 양어머니 앤을 잃고 부유하던 카밀라를 붙잡았다. '카밀라'라는 이름이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 아니라는 것, 지은 뒤에 서있던 동백나무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은 카밀라의 시작에 의미를 부여했고, 카밀라는 이로 인해 위로받는다. 카밀라는 동백나무 아래 사진을 찍었던 자신의 친엄마, 정지은을 찾기 위해 지은의 고향 진남으로 간다. 하지만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 여정은 소설의 끝까지 완벽한 답을 내주지 않는다. 외려 깊은 상처와 의문들을 차례차례 내어놓을 뿐이다.
카밀라, 한국 이름 희재가 찾아간 진남은 안개 낀 밤바다 같은 곳이다. <무진기행>에서 김승옥이 서술한 무진이 뿌연 안개에 가려진 도시였다면 진남은 어두운 바다 물안개 자욱한 곳이다. 진남은 통영의 옛 지명인데,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곳이다보니 작가는 도시에 대해 자세한 묘사를 하지 않기 위해 부러 통영을 조사하지는 않았다. '진남'이라는 친숙한 지명과 허구적 도시가 합쳐져 희재의 이야기는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은 사실성을 얻는다. 친절한 듯하지만 냉정하고 보수적인 소설 속 진남 사람들의 특성이 그들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희재로 하여금 미국에서 진남까지 올 수 있도록, 그리고 지은과 자신의 진실을 찾기 위해 뛸 수 있도록 한 힘은 삶에 대한 의지다. 한 차례 바다에 뛰어들어 생을 포기하려했던 이에 대해 말하면서 삶의 의지를 논하는 것은 모순적이어서 더욱 강력하다. 희재는 모두가 덮으려던 혹은 누구도 알지 못했던 진실에 다가간다. 고통과 무력감을 느끼지만 모든 상황속에서도 자신을 지켰던 지은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처음 희재에게 주어진 답안은 근친과 성폭행이었다. 절망적인 답 앞에서 희재는 주저앉지 않았다. 확실히 확인할 때까지. 더 이상의 의심과 의문,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없어질 때까지 나아가고 그는 결국 이희재에게 닿는다. 소설 내내 희재를 움직이는 것은 지은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과 연민, 그리고 스스로의 삶에 대한 궁금증과 의지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어야만 했다.
소설 1부는 카밀라의 시점을, 2부는 지은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위의 문장은 2부 '지은'에 나오는 문장이다. 지은은 파도에 뛰어들어 잔인했던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이는 세상에 희재라는 새로운 생명을 낳은 이후다. 지은은 희재를 생각하는 것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듯 자신의 일이었다 말한다. 거꾸로 생각해본다. 지은을 생각하는 것 또한 희재의 일이었다. 진남 사람들에게 지은의 이야기는 들추어 좋을 것 없는 지난 날의 과오 같은 것이었다. 동정과 연민에서 오는 아픔이었다. 동시에 스스로의 이야기는 아니어서 다행인, 저런 일은 반복되지 않아야한다는 기준 따위였을 것이다. 가장 좋은 약은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건은 잊혀지고 기억은 왜곡되고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재는 파도가 잔잔해진 바다에 돌을 던지는 소녀였다. 파장이 커지고 커져 결국 바다 밑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돌을 던지는.
지은에게 희재는 심연을 넘을 수 있는 이유이자 방법이었다. 인간 개인의 고독 사이 심연을 넘을 수 있는 것은 희재 덕분이었다. 어떤 심연을 넘는다는 것이었는지 확실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이희재와 정지은 사이의 것이었으리라 믿는다. 정희재는 이희재와 정지은 사이의 아이였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왜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텐데. 이희재, 최성식의 DNA는 어렵지 않게 얻을 터였다. 하지만 희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한 아빠보다는 지은의 진짜 이야기였다. 설령 DNA가 최성식의 아이라 말해도 정희재에게 주어진 이름 '희재'는 이희재를 아빠로 여기기 충분하다.
처음 소설을 읽고 떠올린 곡은 김해원의 '바다와 나의 변화'다. 일전에 이 곡을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 속에서 답답하지만 소리지르지 않고 타박타박, 걸음을 옮기는 사람'의 느낌이라 설명했었다. 희재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직관적으로도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바다와 나의 변화'와 잘 어울린다.) 잔잔히 흘러가는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 위에 차분한 김해원의 목소리가 더해지고, 간단한 비트와 베이스가 어우러지는 것이 전부다. 바다의 울림소리 같은 코러스와 함께 큰 고저 없이 진행되지만 무려 4분 52초의 곡이다. 하나의 태도를 견지하고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 희재와 닮았다. '내가 태어나던 날 엄마는 사라지고 나는 너와 단둘이서 떠내려갔지'라는 가사까지.
바다와 나의 변화에 대해
녹아내렸던 내 친구들에 대해
내가 태어나던 날 엄마는 사라지고 나는 너와 단둘이서
떠내려갔지
마지막으로 자우림의 '샤이닝'을 선곡한 것은 희재가 가진 의지와 그의 삶에 대한 나의 바람 때문이다. 희재는 미국에서도 진남에서도 완벽히 소속되지 못하고 방황했다. 하지만 희재는 자신이 있을 곳에 대해 고민하고 글을 쓰며 삶을 이어갔다. 아마도 이 소설이 끝난 다음의 이야기에서도 희재는 방황할 것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 / 정답이 없는 질문들 /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노래했던 자우림처럼. 하지만 희재가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와 정지은의 이야기를 쓰고, 삶의 의미를 찾아 계속 나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진남에서 마주한 수많은 장애물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을 만큼, 희재는 집요하고 끈질긴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우림이 자신을 받아들여줄 어딘가를 찾으며 '샤이닝'을 만들고 불렀던 것처럼, 희재도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생을 이어나갔으면 한다. 그렇게 생의 의미를 찾아가며 언젠가는 별이 내리는 하늘이 아름다워 웃을 수 있기를.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바란다.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중략)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