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에 관한 사랑스러운 이야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을 무척이나 강조한 이 시구는 사랑하는 이의 명명으로 그가 어렴풋한 몸짓에서 ‘꽃’이라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냥 ‘꽃’이 된다니. 무슨 꽃이 된단 말인가? 빨간 장미? 흰 라넌큘러스? 자주색 앵두소국? 노란색 폼폼? ‘이름 불러주기’, 즉 누군가를 알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 시는 거꾸로 꽃은 그냥 ‘꽃’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범해버렸다.
물론 이건 시의 주제에서 다소 벗어난 투정이다. 그러나 꽃이라는 단어 속에는 무수히 많은 봉우리들과 꽃잎이 있는 건 사실이다. 최근에 엄마는 관심있던 꽃꽂이 클래스에 나가기 시작했다. 첫 날 꽂아온 식물의 종류만 8가지였다. 어저귀, 맨드라미, 향등골 등등 이름은 생소하지만 하나같이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동물이 가진 다양한 이름처럼 식물에게도 못지 않게 다양한 이름이 있는데 우리는 겉모습이 비슷하단 이유로 ‘나무’, ‘꽃’, ‘이파리’ 등으로만 부르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아마 이 책의 작가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책에 나오는 나무의 이름들은 작가 베르나데트 푸르키에가 지어 준 별명이다. 유령나무, 빵나무, 목졸라나무, 다이너마이트나무, 거꾸로나무, 금화나무…….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상상 속의 나무 같지만, 모두 지구에 살고 있는 나무다. 작가는 흥미로운 나무들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명명으로 구성했다.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는 개성이 뚜렷한 열여섯 가지 나무의 편지를 읽으며 자연스레 새로운 지식을 익히게 되는 과학 그림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거인나무, 폭발하는 다이너마이트나무, 무지개 빛깔을 띤 무지개나무, 위에서 아래로 자라는 목졸라나무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나무가 사람이나 다른 동식물, 자연환경과 교류하는 방식 또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빨간머리 앤에서 앤은 큰 벚나무에게 ‘눈의 여왕’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만들어내는 풍경 때문이다. 처음 초록지붕집에 왔을 때 앤은 무척 자주 눈의 여왕에게 정중하고 밝게 인사한다. 앤은 나무에게 이름을 붙이면서 그 나무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정을 붙인 것이다. 베르나데트 푸르키에 작가가 붙여준 이름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통해 나무들에 정을 붙이고 호기심을 갖다 보면, 기대한 것보다 나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빵나무와 유령나무라면 절로 궁금하지 않은가.
책에는 나무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다가, 동물 이야기도 나오고, 음식과 요리, 역사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 세상의 어떤 나무도 홀로 살아가지 않고, 자연 속에서 다른 동식물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들려준다. 이를테면 동물들은 나무 열매를 먹고 씨앗을 먼 곳으로 퍼뜨리기도 하고 암술에 꽃가루를 묻혀 수분을 도와주기도 한다. 나무 몸통에 구멍을 내 수액을 받아 마시기도 한다. 소뿔나무는 아카시아개미에게 보금자리와 먹이를 제공하고 아카시아개미는 소뿔나무를 해치러 다가오는 동물들을 물리친다. 이렇게 나무와 개미가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이 필요했다면 과학서적을 샀을 것이다. 그림책을 사는 가장 우선의 이유는 그림이다. 아무리 담긴 메시지가 좋아도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허술하면 정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는 중심을 잃지 않아 사랑스러운 책이다.
그림작가 세실 감비니는 나무가 보내는 한 장의 편지 옆에 각각의 나무가 가진 특성을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그 옆을 맴도는 아이들과 비인간동물들을 그렸다. 입체적이지 않지만 따뜻한 톤의 나무들, 투박해서 더 좋은 그림들을 가만히 보는 것은 나에겐 컬러링북을 보는 것보다 힐링이 된다. (내가 그리면 저렇게 못그리니까…)
이 책의 도서 분류가 [유아, 어린이]라는 점에서 흠칫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과 다른 것을 얻는다. 그림책은 내용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책에 비해 활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활자에 대한 부담이 적어 천천히 음미하며 볼 수 있다. 한 구석 한 구석 작가가 채워넣은 색과 모양들을 보며 이런 곳은 이렇게, 저런 곳은 저렇게 표현했군 감상하며 읽을 수 있다.
슬라임이 유아 퇴행적 취미라고 보는 분들에게는 이 또한 유아퇴행적 취미일수 있겠지만, 알게 뭔가. 나는 편안한 그림책이 좋고, 내가 책을 사서 읽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출판사, 인쇄소, 서점, 작가님은 좋아하시겠지!
개인적으로는 성인이 된 뒤 4번째로 읽는 그림책이다. 나무들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따뜻한 그림으로 나를 치유해주기를. 빵이 주렁주렁 달리는 나무라면 작은 화분을 구해 볕이 잘 들지 않는 자취방 창문에서라도 키워보고 싶다. 혹은 매일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무지개가 걸리는 무지개나무라도! 작가가 전하는 따뜻하고 신기한 나무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저자 소개
글쓴이_ 베르나데트 푸르키에 (Bernadette Pourquié)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그림책과 희곡을 쓰고, 문학 작품을 영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하며, 시 콘서트를 여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는 작가다. 2014년에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해마다 선정하는 ‘정원에서 읽기 좋은 책’ 상을 받았다. 《일화》 《온 사방에 수고양이》 《나의 유령》 《그림자》 등 환상적이고 시적인 그림책을 썼다. 프랑스 남부 지방의 무화과나무 곁에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그린이_ 세실 감비니 (Cécile Gambini)
스트라스부르 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프랑스의 대표적인 어린이 책 출판사들과 일했다. 한편으로는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손으로 작은 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독특한 책이 무려 250여 권이나 된다. 《틴》 《불가능한 선물》 《내 뒤에 누가 있나요?》 《두 조약돌》 등 여러 어린이 책을 쓰거나 그렸다. 수상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나무들을 가까이하며 지낸다.
옮긴이_ 권예리
어려서부터 글자로 적힌 모든 것을 좋아했고, 외국어가 열어 주는 낯선 세계에 빠져들었다. 《나만의 바다》 《세상의 모든 속도》 《물에서 생명이 태어났어요》 《심야 이동도서관》 《과학의 놀라운 신비 75가지》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추천의 글
북리스트(미국도서관협회): 껌나무, 거꾸로나무, 무지개나무는 동화에 나오는 가짜 나무일 것 같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나무들을 다룬 이 책에 생생하게 묘사된 나무 중 일부일 뿐이다. (…) 열여섯 가지 특별한 나무에 관한 간명한 서술과 아름다운 그림은 깊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브레인피킹스: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에서 글쓴이 베르나데트 푸르키에와 그린이 세실 감비니는 지구에 공룡이 살던 시대를 목격한 나무, 브라질의 신비로운 걷는나무(붉은 맹그로브), 필리핀의 무지개나무(레인보우 유칼립투스) 등 색다르고 독특한 나무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 식물의 생태를 설명하면서 동화적인 요소도 포함한 멋진 그림 옆에는 한 페이지 분량의 자서전이 적혀 있다. 나무들은 1인칭 시점으로 신기한 과학적 사실, 역사, 풍습을 짤막한 이야기로 구성해서 각 나무가 사는 곳의 자연환경과 문화를 설명한다.
커커스리뷰: 프랑스에서 온 이 독특한 책은 그림이 무척 매력적이다. (…) 두 페이지에 걸쳐 신기하고 별난 나무 한 종류를 묘사한다. 테두리를 알록달록하게 꾸몄고, 왼쪽에 나무에 관한 사실들, 오른쪽에 아기자기하고 몽상적인 그림이 나온다.
이 프리뷰는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