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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Oct 02. 2018

[책리뷰]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

수상하지만 진짜야! BIZARBRES MAIS VRAIS!

 우여곡절 끝에 책을 만났다. (책 값보다 비싼 택배비를 내고 싶지 않다면 무인택배함 문자를 자주자주 확인하자.) BIZARBRES, BIZZARE와 ARBRE를 합친 단어가 이 책의 원제 중 첫 단어다. 프랑스어로는 묘한/이상한, 나무라는 뜻이다. 그래서 한 장을 넘기면 한 마디가 더 나온다. 여기까지가 원제. 

‘mais vrais!’
‘하지만 진짜야!’

수상하지만 진짜인 나무들. 짧은 프랑스어로 시작하는 오늘의 책 리뷰. 베르나데트 푸르키에의 글과 세실 감비니의 그림이 담긴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다.



 책은 총 16가지의 기묘한 나무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이 나무들에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고 나무들을 의인화해서 각자의 특성을 설명한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보다 무척 과학적이고 사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아동용 과학 도서로도 손색이 없다. 물론, 나 같은 어른에게도 좋은 책이다. 대개 어른들에게 이런 곁지식은 여행가서 혹은 TV에서 관련 내용이 나올 때 수줍게 웃으면서 ‘저 나무의 모양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런거야!’라고 자랑하기에 좋다. 때로는 곁지식이 더 재미있는 법이므로.

각 나무는 두 장에 걸쳐 소개된다. 한 쪽은 세실 감비니의 독특한 그림이, 한 쪽에는 베르나데트 푸르키에의 애정 듬뿍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니 책은 얇고 판판하다. 이렇게 얇은 책을 오랜만에 받아보니 기분이 묘하다. 쫙 펴고 무릎 위에 얹어 읽으니 어릴 적 동화를 읽는 기분이다. 어린이 책들의 판형이 하드 커버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철퍼덕 앉아서 책을 펼쳐버리니까 어디서든 책상 위에서 읽는 것처럼 판판한 모양새를 갖춰야 할 테다.

책을 읽으며 생각보다 즐거웠다.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아니 이렇게 간단한, 20분도 안걸려서 다 읽어버리는 글을 보며 이렇게 즐겁다고? 뭐랄까, 낯선 이의 친절함을 마주한 사람의 당황스러움이 점차 그의 넉살에 익숙해지며 즐거워지는 과정 같다. 처음부터 친근하게 ‘밀림에 온 여러분을 환영해요!’라며 시작하는 책에 흠칫 놀라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섞인 나무 지식들을 습득한다. 이 또한 곁지식이지만 곁지식은 곁에 있어서 부담을 주지 않아 즐거우니까.

그림 속 상황에 들어가보기도 한다. 거꾸로나무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였다. 학명은 Adansonia grandidieri, 진짜 이름은 그랑디디에 바오바브나무다. 키가 30미터나 되고 뿌리 같은 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나무. 위에는 박쥐가 매달리고 아래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뜨거운 태양빛을 피한다. 웅크린 자세의 사람들은 나무 기둥 안에서 다람쥐처럼 휴식을 취한다. 웅크린 모양은 오래 지속하면 저릴 지 몰라도, 하루 종일 꼿꼿이 서있던 사람에게 웅크리는 건 무척 편한 모양이기 때문에 더욱 포근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자, 지금까지가 내가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라면 이제부터는 정말 나무를 찾아본 후의 이야기다. 아까 맨 처음에 언급했던 짧은 불어가 기억나는가. ‘mais vrais!’ 하지만 진짜라고 했던 그 말. 그 말은 정말이다.




제일 먼저 찾아본 나무는 무지개나무, 레인보우 유칼립투스다. 나는 정말로 이 나무가 무지개색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좀 얼룩덜룩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진짜 나무는 그림보다도 더 형형색색이다. 누군가 페인트로 영화 아바타의 색감을 끼얹고 간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나이가 들면서 껍질이 벗겨지고 이렇게 형형색색의 색감이 나타난다는 것. 무지개나무에게는 늙어가는 것이 마냥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찾아본 나무는 키가 30미터나 된다는 거꾸로나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잎이 무성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나는 엄청나게 커다란, 감히 인간이 건드릴 수 없을 것만 같은 대자연을 무척 무서워한다. 네덜란드 국립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광활하고 고요한 벌판을 마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무서운 무언가가 나타나 덮칠 것만 같은 느낌. 그 느낌을 이 나무들의 사진을 보면서도 받았다. 정말 무척 커서 감히 나라면 나무 안으로 들어가진 못할 것 같다. 감히.


그 외에도 몇 나무를 찾아봤다. 비나무, 물병나무. 정말 신기한 모양들의 나무가 많았다. 그 속에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은행나무가 들어간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독특한 나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단지 책 속 뿐만 아니라 정말, 현실 세계에서도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라는 이름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수상할만큼 독특한 나무들의 이야기.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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