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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나 Aug 20. 2017

2. Christian, Joy, Happiness

한시적 행복, 영원한 기쁨

배정받은 기숙사는 암스테르담 도착 이틀 후에 열렸다. 그 전에 머무르는 곳은 'Shelter City'라는 기독교 호스텔이다. 후기에서는 홍등가와 붙어있다고 했지만 별다른 걱정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홍등가 옆의 기독교 호스텔. 내부에서는 No smoking, no drinking. 직원 대신 전세계에서 모인 기독교인 자원봉사자들이 꾸려나간다. 5시간의 청소 대신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다.

선배가 추천한 곳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호스텔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오던 길에 홍등가와 마주쳤다. Live fucking show라는 표지판에 기겁하고 발걸음을 서둘렀더니 이번에는 반쯤 열린 붉은 커튼 뒤 벌거벗은 여인의 뒷모습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호스텔로 향하는 걸음을 조금 더 서둘렀다. 비행기에서 만난 S는 성매매 합법화에 동의한다고 했지만(인간의 본능을 막을 수 없으니 합법화해서 관리하고 인정해주자는 취지였다), 나는 인권의 밑바닥까지 침해당할 위험이 있는 성매매를 합법화하는 것은 반대다.



호스텔에는 열두시까지 하는 카페가 있었다. 조식 때만 운영되는 줄 알았는데 그 이후에도 따로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립톤의 English Breakfast를 주문해서 앉았다. 잉글릭시 브랙퍼스트는 언제나 옳다. 일기를 타이핑하며 옮기는 작업 중 한국인 남자가 건너편에 앉았다. 한국인인지 헷갈리던 차에 무한도전을 재생했다. 한국분이시냐, 말을 걸었다. 남자는 이어폰을 빼고 반갑게 대답했다. 남자의 이름은 J였다.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던 중, 호스텔 자원봉사자 둘, R과 E가 큰 화이트보드를 들고 다가와서 당신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무엇이냐 물었다. 나는 오늘 다녀온 서점이 생각나서 Pretty bookstores라고 답했다. J는 festival이라고 했다. R은 곧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고 했다. 관심이 있으면 함께하자고 해서, 나는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 호스텔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독교 얘기로 끝나겠죠, 뭐."

기독교 이야기로 종결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종교는 내게 영원히 흥미로운 소재다.




Happiness, 행복감이 실재하는 어떤 것에서 비롯된다면 영원한 기쁨, joy는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결국 신을 믿는 것이 영원한 기쁨을 얻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기쁨이 한시적인 것이고 행복이 영원한 감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R이 읽어준 성경 구절을 듣고 이해했다.


"May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 as you trust in him, so that you may overflow with hope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 로마서 15장 13절



함께 이야기를 나눈 클라라는 R에게 신이 당신에게 주는 도움을 실질적인(practical) 이야기로 예를 들어달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꽤 말도 안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개인에게 주는 기쁨과 구원의 감정은 지극히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다. 유약하고 영원하지 못한 인간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전지전능한, 영원한 신에게 의지하면서 위로를 얻는 것이다. 당신과 함께함으로서 나 또한 무한하다는 느낌, 충만감을 얻는 것이다.

R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신을 믿음으로서 현실적으로 내려다보며 현실에서 전전긍긍했던 것들을 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는 어머니를 잃은 경험을 들려주며,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세계가 파괴되었다고 느꼈을 때 다시 자신을 일으켜준 것은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E의 이야기가 끝나자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스페인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처음 들어보는 대답이었고, 참 좋은 대답이었다. 아픈 이야기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맙다.




종교에 관한 담론을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회학도로서 가지는 사회학적 상상력의 연장, 호기심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 개인적 배경 때문이다.

나는 모태신앙이지만 기독교인이기를 그만두었다. 가장 큰 원인은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를 가기가 귀찮은 가짜 신도였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다니던 교회가 가진 보수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가 가진 보수성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들도 있음을 근래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교회를 가지 않을 뿐, 신의 존재를 믿고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신성한 기운을 존중하며 한 편으로는 존경한다.




기독교인의 세계는 공고하다. R은 기독교인들의 행동이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삶이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싫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심으로서 그들이 얻는 기쁨은 단순히 음주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신의 부재를 의심할 때 무너지지만, 다시 그 믿음을 쌓아올려간다. 신을 부정했던 자신을 참회하며 자기 자신을 더욱 단단히 다진다.

의지할 수 있는 infinite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다. 이야기가 끝난 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이야기를 듣는 동안 즐거웠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함께 이야기를 들은 프랑스 여자는,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신의 말씀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공감을 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조금 슬펐다. 하나의 종교를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서 얻는 유대감과 위안감은 엄청날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단단한 믿음이 부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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