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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비 Oct 12. 2023

삶의 순간 순간이 모여 강으로 흐른다

김환기_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추상화를 사랑한다. 그림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작품은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였다. 2015년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던,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림 앞에서 울다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그 뒤로 그림이 좋았고, 마음에 끌리는 그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기도 했고, 포스터를 사서 집 곳곳에 붙여놓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미술관을 올 때면 작가에 대해 미리 알아보지 않는다. 선입견 없이 그림으로만 오롯이 대면하고 싶어서다. 이번에도 김환기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그의 '점 그림' 을 만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작은 점은 마치 우리 삶의 순간 순간인 것만 같다. 먼지벌레 같은 점, 선명한 점, 큰 점, 작은 점, 진하게 번져버린 점, 간명하게 똑 떨어지는 점. 점은 삶의 순간 모양과 속도, 세기와 질감을 표현한다. 어느 점 하나, 어느 순간 하나 같지 않다. 늘 흐르고 바뀐다. 점 사이로 깊은 어둠도 보인다. 점 사이로 반짝반짝 별도 보인다. 삶의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강이 되어 흘러간다. 도도히 흘러간다. 점점이 흐르는 삶의 물결을 만나며 가슴이 웅장해진다. 뭉클하다.  지금 여기 내가 어떠하든 삶의 순간 순간을 사랑하자, 토닥토닥 마음을 다진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문장이 팔랑팔랑 나비가 되어 마음 속으로 날아온다. 도도히 흘러가는 삶의 강물 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 한 마리, 사랑한다. 


나는 삶을 사랑해. 비록 여기 이러한 삶일지라도. -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지막 저서에 실린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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