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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비 Oct 16. 2023

가을 나무에서 연필 향이 난다

장욱진_나무

장욱진 <나무>


코로나와 악연이 깊다. 후유증이 심해 1년 넘게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 했으니 말이다. 헌데 코로나 덕분에 숲을 찾기 시작했으니 악연에게도 감사할 일인가보다. 구름 가득 낀 날에도, 눈부신 햇살 가득한 맑은 날에도, 비가 쏟아져도, 펄펄 눈이 내려도, 숲으로 간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날, 숲에 간다. 건조한 날이 이어지는 가을, 마른 흙에 발을 딛는다. 푸슬푸슬, 포슬포슬, 흙 위로 나의 발이 춤을 춘다. 초록별 지구가 내어준 숲과 나무, 고마운 흙 사이로 걷는다. 나의 리듬으로 나의 속도로 정성스럽게 걷는다. 삶은 한 걸음, 마른 대지 위로 내딛는 용기 있는 발걸음이다. 가을 나무에서는 연필 냄새가 난다. 나무 연필을 깎을 때 코 끝으로 스치는 연필 향 말이다. 연필에서 나무 냄새가 나는 걸까, 나무에서 연필 냄새가 나는 걸까. 요즘 숲에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연필 향이 피어올라 행복하다. 고마워,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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