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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날 Oct 22. 2023

여름-4. [스위스] 루체른, 뮤렌, 융프라우



스위스의 일상은 나의 것과 매우 달랐다.

스위스에서의 여행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비일상을 일상처럼 느낄 수 있는 며칠이었다.



자연을 즐기는 방법을 몰랐다. 자연의 변화에 관심이 없이 사는 것의 단점은 내게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초록빛 특유의 생동감이 주는 에너지를 못 느껴봤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계절에 따른 변화에 관심을 두지 않다 보니 일상이 항상 단조로운 느낌이었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그 단점들이 배가 되었다. 잿빛 감정만이 나를 가득 채운 듯해 생명력 있는 색채들이 굉장히 이질적이고 자극적으로 느껴졌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껴볼 겨를 없이 나를 '할 일'로만 채우다 보니 기분을 전환하거나 피로를 덜어낼 만한 일상의 휴식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스위스의 자연은 내게 '비일상'이었다. 나는 이 여행에서 그 '비일상'을 일상처럼 즐겨보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리기 산에 올랐을 때, 나는 탁 트인 풍경에 대한 시원함도, 초록빛 자연을 보는 행복감도 느끼지 못했다. 이질감만 들었다. 같이 간 친구를 비롯해 주변 관광객들은 모두 풍경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주위를 둘러보며 탄성을 내뱉는데, 나는 무언가의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울이 심해지는 시기가 곧 찾아올 것도 같다고 직감했다. 



그럼에도 나는 열심히 '감각'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 중 하나는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감각하기 위해서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찍는 것', 즉 순간을 포착하는 일은 빛의 방향, 배경의 색감, 중심 대상의 구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만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법이기에 '면밀한 관찰'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사진 찍기를 포함해서 모든 영역에 있어, 나는 스스로 재능이랄 게 없다고 여겼다. 최선이란 단어는 내 시간을 쪼개어 몰아세우는 것이었고, 거의 항상 '과투입'을 일삼던 나였다. 그런 내게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에 칭찬을 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사진 동아리를 한 적도, 사진에 관해 뭔가 배운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스위스 여행 사진을 올릴 때마다 인스타그램 DM을 채우는 칭찬에 의아해하던 나는 궁금해졌다, 그간 내 노력의 방향과 '사진 잘 찍는 법'이 우연히 일치한 구석이 있나 본데 그게 뭐지, 하고.

사진과는 전혀 다른 태를 띄는 것들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양태만 다를 뿐 중심을 이루는 무언가가 꽤 흡사하다. 햇빛의 방향 및 색의 온도(황혼의 해와 노을의 해는 우리에게 다른 빛을 선물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온도'라는 의미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배경과 중심 대상의 조화(구도, 질감이나 색채 등을 신경쓰면서 클로즈업할지 전경을 모두 담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장면에 담긴 맥락적 의미와 순간적 감흥이 내게 깊은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 이 세 가지가 충족된 사진이 내게 있어 'A컷'의 정의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삶에서 흥미를 느껴왔던 '사회과학'의 특징을 담고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다양한 양태를 관찰하고 그것의 꿰뚫는 구조적 폐해를 헤집어 '옳음'을 위해 탐구(이것에는 '무엇이 옳음인지에 대한 논쟁도 당연히 포함될 테다)하는 것. 내가 정의하는 사회과학의 의미이자, 내가 그것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저 이 공부가 재밌었다. 무료한 삶을 사는 내게 거의 유일하게 '재미'를 느끼는 것이었다. 물론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재미인 것은, 레포트를 쓰면서 우는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게 재미란, 유희적 의미보다는 살아갈 이유가 있음을 실감한다는 것에 가깝다.



어찌되었건 사진 이야기를 하다가 사회과학으로 넘어온 이유는, '애정 어린 시선을 늘상 유지하며 주위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그 둘의 닮음을 논하기 위함이다. 누군가 내 사진을 볼 때, 중심 대상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를 살피고 구석진 곳의 '나머지 것들'에도 눈길을 주길 희망한다. 떠다니는 구름과 듬직한 산 밑의 외딴 집에 주목하여 푸른 초원을 지키는 파수꾼과 같은 그 집에 관심을 기울여도 좋고, 갖가지 장식으로 꾸민 통나무집의 주인이 그 집을 꾸미는 과정을 상상해 보아도 좋다.

세상의 질감과 색채를 포착하는 '사진 찍기'라는 행위는, 사회과학과 매우 닮아 있다. 오늘의 모습을 수집한 뒤, 그 너머의 것을 발견하고 관찰하고 분석하여, 더 나은 무언가를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일이 그것이니까.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것'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나는 내가 일상을 느끼던 방식대로 비일상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을 조금은 더 '감각'할 줄 알게 되었다.



융프라우에서 찍었던 사진을 두 개 덧붙이자면, 정상에 쌓인 눈으로 만든 눈사람을 찍은 사진과 기념품으로 산 강아지 인형에게도 먹던 컵라면을 한 입 주려는 사진이다. 멋드러진 사진은 아니나, 그저 귀여운 것들을 찍은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추억거리가 된다. 감각할 만한 추억이다. 귀엽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아주 큰 애정을 내포하고 있으며, 사랑만큼 감각하기 좋은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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