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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날 Oct 22. 2023

가을-1. [독일] 뮌헨

뮌헨에서 한 달 정도 살 기회가 생겼다. 원래 귀국은 8월 말이었지만, 괴팅겐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프로젝트에 합격했는데 그게 10월 중순에 끝나 귀국을 조금 미뤘다. 1학기 교환학생만 하고 떠나려던 독일이었지만, 조금이나마 여유를 갖고 더 즐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다만 괴팅겐 기숙사 계약이 8월 말까지였기에 나는 살 곳을 추가적으로 구해야 했다.

원래 괴팅겐에서 WG(쉐어하우스)를 구해보려 했지만, 한달 반 가량만 집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그 와중에 내가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10월 중순의 일주일, 그러니까 프로젝트 마지막 일주일을 제외하면 전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어서 괴팅겐에 있어야만 할 이유가 없어졌다. 독일 교환학생/유학생 커뮤니티를 찾아보다, 뮌헨의 한 학생 분이 9월 한 달간 집을 내놓는다고 올리신 글을 보게 되었다.

뮌헨 쪽은 한 번도 안 가보기도 했고, 9월에는 옥토버페스트가 있는 기간이라 그것도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9월 한 달간은 뮌헨에서, 10월 첫 주는 괴팅겐에 있는 친구에게 짐을 맡기고 덴마크와 프랑스 여행으로, 10월 둘째 주는 괴팅겐의 호텔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뮌헨에서 머무르던 곳은 외곽 주거단지였는데, 일찍 일어날 때 보이는 분홍빛 새벽 하늘이 참 예뻤다. 건물 밖을 나오면 작은 공원이 있어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늘 보이곤 했는데, 어떤 날은 현관문을 나서니 누군가 놓아 둔 오리 모양 장난감과 눈이 마주쳤다. 창문을 열어 두고 있으면 자동차 소리보다 새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동네였다. 가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평화로웠다. 이게 평온이라는 감각이구나, 하고 가만히 누워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 정말 행복했다.

9월 한 달간 무엇을 하고 지내야 아쉽지 않을지 많이 고민했다. 10월에는 여행과 프로젝트 마무리로 바쁠 테니,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9월 한 달밖에 없었다. 서울에서의 나는 쉬는 법을 몰랐다. 무언가 스케줄이 채워져 있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했다. 심리상담을 받으면서도 나는 쉴 자격이 없는 사람 같다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느낌이라는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쉬는 법을 몰랐을 뿐, 쉼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게 쉼 없이 달리다가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고꾸라지면 일주일, 더 심하면 몇 주를 방구석에 틀어박혀 울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날들을 자책하며 또다시 일을 여럿 벌리곤 했다. 그 악순환이 반복된 게 서울에서의 내 생활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옥토버페스트를 포함해 뮌헨에서 가 볼 만한 곳을 열심히 찾아보며 계획을 세우던 것을 그만뒀다. 아무것도 안 해 보는 게 나에게는 새로운 걸 해 보는 것이었다.



병원을 갈 때만 뮌헨 시내에 나갔다. 병원만 다녀오고 싶은 날에는 그렇게 했고, 그냥 돌아가기 아쉽다고 느끼는 날에는 즉흥적으로 구글 맵을 보며 근처 갈 만한 곳을 찾아봤다. 그렇게 간 곳이 Englischer Garten이라는 아주 큰 공원이었다. 산책을 나온 강아지와 자유롭게 유영하는 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빈 벤치를 바라보는 게 좋았다.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좋았다. 빈 자리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의 '조용한 온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여유로웠다. 여유로움을 느끼는 데 정당성이 없다고 생각하며 쉼을 밀어내려고 했었는데, 나의 뮌헨은 여유로웠다. 걷고 싶을 때까지만 걷고, 바람을 느끼고 싶을 때까지만 밖에 나왔다가 집에 들어가곤 했다.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적정한 때에 쉼을 찾고 회복하는 방법을. 이제 알 것도 같았다.



베이킹을 뮌헨에서 처음 도전해 봤다. 푸딩, 타르트, 브라우니와 쿠키, 먹다 남은 단백질 쉐이크로 만든 카스테라까지. 평소 디저트를 좋아하던 나는 그것들을 만들어 볼 엄두는 도저히 못 냈는데, 내가 살던 쉐어하우스에 있는 오븐을 어느 날 뚫어져라 보다가 결심했다. 저걸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써먹어 보자.

동네 마트에 가니 베이킹 키트가 굉장히 많았다. 내가 나를 잘 챙겨 먹이고, 맛있는 것을 골라 주는 것은 참 생경하면서도 따뜻한 일이었다. 심리 상담을 온라인으로 할 때 나는 선생님께 베이킹을 시작했고 나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잘 해 주려는 감각이 새로웠다고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다.



요거트에 뮤즐리나 과일을 먹기도 하고, 뮌헨 지역의 흰 소시지를 구워 감자튀김이나 빵과 같이 먹기도 하고, 볼로네제 소스와 다진 고기를 사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어떤 도시를 느끼는 방법이 유명한 곳을 가 보는 방법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저 현지 주민들처럼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해 먹는, 일상을 즐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토스트에 에그샐러드를 얹어 먹은 점심이 느끼하면, 저녁에는 치킨마요덮밥을 해 먹었다. 닭고기를 사 와 썰고, 익히고, 상추를 씻어 자르고, 에그스크램블을 하는 내내 곧 내 입에서 느껴질 맛을 기대하게 되는 게 신기했다. 서울에서 거의 사 먹거나 배달을 시켜 먹을 때는 그런 기대감이 별로 없거나 짧게 느껴졌는데, 직접 음식을 준비하니 준비 과정 내내 즐거움이 느껴졌다. 나 스스로를 챙겨 먹인다는 느낌도 굉장히 좋았다. 그동안 나 스스로를 내가 아껴준다는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잘 없었기 때문이다.



요리를 좀 하다 보니, 어린 시절 김밥을 직접 싸 보고 싶었던 게 생각났다. 나는 어릴 때 소풍을 가게 되면 거의 항상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서 갔는데, 어느 날 아빠에게 마트에 있는 김밥 만들기 키트를 이야기하자 아빠는 "사 먹는 게 더 맛있어", 하고 대답하셨다. 내가 원했던 건 아빠랑 같이 직접 만든 김밥이었지, '맛있는' 김밥이 아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의 나는 내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못하는 습관이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어른들을 귀찮게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혼을 둘러싼 상황에서 아빠, 엄마,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친척들의 당시 반응들은 늘 날이 서 있었고 내 눈에 '어른들'은 항상 바빠 보였으니까. 어쨌든, 나는 김밥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김밥 만들기에 도전했다. 김은 아시안 마트에서 구했지만 김밥을 마는 발은 구하지 못했다. 재료를 고민하다 돈까스 김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식 돈까스를 슈니첼이라고 부르는데, 마트를 둘러보다 보니 비건 슈니첼이 있길래 맛이 궁금해 사 봤다. 내가 좋아하는 페퍼로니맛 크림치즈도 넣었다. 자르는 과정에서 다 터지고 모양이 흐트러지는데도 그저 재밌었다. 도시락 통에 예쁘게 담아 보기도 했다. 소풍이었다.

나의 소풍에는 이제, 직접 만든 김밥이 있었다.

하나의 추억거리가 또 생겼다는 게 무척이나 좋았다. 어린 시절의 내게 지금의 내가 주는 선물 같아서.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아서.

요리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치유의 힘이 있다.


먹고, 자고, 공원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뮌헨에서의 시간을 다 채웠다.

'아무것도 안 하기'를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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