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의 대화법

일방통행

by 김여은


"조기가 물겅물겅 팥죽 같다."


오늘 아침 이 한 문장을 열 번 정도 들었다. 그녀는 항상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그리하여, 처음엔 "그러니까. 왜 이러나 모르겠어. 쫄깃쫄깃한 맛이 없네."라며 살갑게 반응하던 며느리가 종국에는 입을 다물게끔 만든다. 가만히 듣고 있던 손녀가 혼잣말로 "그만, 그만!"을 중얼거리게끔 만든다.





할매는 늘 그런 식이다. 쌍방의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모든 대화를 자신의 독백으로 끌고 가버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할매, 나 속이 이상한데 밥을 안 먹는 게 나을까? 그래도 먹어야 될까?"

"어유, 내가 요즘 그렇게 속이 아파. 뭘 먹어도 맛이 없고... 블라블라."


월요일 저녁엔 이런 대화(?)도 나눴다.


"할매, 할매는 살면서 진짜 꼴도 보기 싫을 만큼 싫은 사람 없었어?"

"글쎄... 그런 건 특별히 없었던 거 같은데... 아! 근데 이런 건 있었다."

"뭐?"

"우리 고모가 있었는데."

"아, 할머니 중매해 준 그 고모?"

"아니 그 위에 고모."

"아 할머니 일 많이 시켰다는 고모? 그래서 그 고모 오면 할머니 막 숨었다며."

"어우! 말도 못해. 내 얘기 들어봐?"


이후 할매의 독백은 장장 10분 동안 이어졌다. 물론 이미 서너 번은 들은 얘기다. 내가 왜 그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궁금한 기색이 없다. 할매와의 대화는 언제나 이렇게 끝이 난다. 할매는 상대의 기분, 상황 같은 걸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일방통행을 고집한다. 가끔은 원고를 쓰고 있는데 옆에서 계속 독백을 하기도 한다.




솔직히 짜증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더욱이 힘들면 힘들수록 침묵이 편한 나로서는 가끔은 정말이지 너무나 버겁다. 그 긴긴 독백이 대체로 늘 불행하고 불운했던 과거지사거나 누군가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 그도 아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과 그로 인한 걱정일 경우가 대부분이라 더욱 그렇다.


한데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그렇게 지나칠 정도로 말을 쏟아내는 할매가 측은하고 안쓰럽다. 예전에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아버지는 말이 고프고 아들은 말이 고달프다."


그 한 문장이 오래도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건 아마 울할매 때문일 게다. 온 식구가 출근하고 나면 혼자 우두커니 남아 빈 집을 지키는 울할매. 할매는 심심해서 TV를 보고, 외로워서 아파트 벤치에 나가 앉는다. TV 속 박사님의 강의, 윗집 할머니와의 짧은 수다가 할매에겐 유일한 소통의 창인 셈이다. 그러니 식구들이 돌아오면 그 얘길 전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는 거다. 오전 내내 외로웠으니까. 텅 빈 집에 숨소리가 들리는 게 너무 좋은 거다.


허나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뒹굴고 온 아들 며느리와 손주들은 말이 고달프다. 몇 마디 주고받다 각자의 동굴로 사라져 버린다. 할매는 또 TV 앞에 앉는다.


슬프고 속상하고 미안하고 아프다. 다만, 그 감정이 몸과 마음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는 게 문제다. 난폭하고 사나운 피로 곰에게 잡아먹히는 것. 그게 아주 큰 문제다.


오늘은 퇴근하고 집에 가면 할매랑 한참 얘기 나눠야지, 결심해 보지만... 늘 그렇듯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잘 해야지.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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