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은 Aug 11. 2021

에이씨 금지령

오늘의 장르 : 어린이


소소하게 파란만장한 일상을 기록합니다.

장르가 매일 바뀌어요.

오늘의 장르 : 어린이





 요즘 내게 가장 좋은 기운을 나눠주고 있는 존재는 단연 내 사랑스러운 조카다. 참새처럼 짹짹 대는 그 아이의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웃음이 번진다.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세상 가장 귀여운 말씨.


 조카는 조커다. 내 손에 든 모든 카드를 무력화하는 조커처럼, 조카 앞에선 그 어떤 계획도 다 무의미해져버린다. 우쭈쭈쭈,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누군가는 그러겠지. 그러면 애 버릇 나빠진다고. 나 역시 그런 누군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니, 한 사람이다.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 대해. 하지만... 내 첫 조카에 대해서 만큼은 생각이 다르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한들 나쁜 짓은 절대 안 할 거라는 확신. 그 아이에겐 그런 선함이 있다. 성악설을 믿는 내게 성선설을 입증하는 듯한 존재. 그게 바로 내 조카, 지오다.


 욕심 내지 않고 떼쓰지 않는다. 나누고 돌보며 귀히 여겨준다.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베푸는 자애로움. 어쩌면 어린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일지도 모르겠지만 지오의 일상엔 분명 그런 단어들이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린, 그 작은 아이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사람을 이해한다.




 얼마 전, 지오는 우리에게 또 한 번 큰 가르침을 선사했으니... 엄마아빠를 먼저 집에 보낸 뒤, 하삐(할아버지) 집에서 혼자 놀고 있을 때였다. 크레파스로 물고기를 그리고, 블럭으로 물고기를 만들고, 바둑알로도 물고기를 만드는 손주를 위해 하삐는 움직이는 물고기 장난감을 고치고 있었다.


 원래대로면 꼬리가 파닥파닥 해야 하는데 뭐가 문제인지 가만히 멈춰 있는 가짜 물고기. 어떻게든 고쳐 보려 애쓰던 하삐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혼자 가만히 중얼거렸다. "에이씨, 뭐가 이렇게 허술해."

 그랬더니 그 순간! 갑자기 호통을 치는 지오.


 "에이씨 하지 말래찌!"


 아주 깜찍하게 단호한 말투다. 하삐는 물론, 옆에 있던 할미까지 순간 얼음! 두 사람은 눈을 꿈뻑이며 서로를 쳐다 보다가 이윽고 웃음을 터뜨렸다.

"미안미안~ 다시는 에이씨 안 할게!"


 지오의 할미이자 나의 엄마인 백 여사님은 그 일 이후 자신의 말씨를 돌아보게 됐단다. 우리의 일상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씨앗이 세 가지 있다지? 날씨와 말씨, 그리고 마음씨.


 네 살밖에 안 먹은 손주 덕분에 할미하삐의 말이 순해졌고 마음은 밝아졌다. 마침 해가 아주 쨍쨍한, 더없이 화창한 날이었다.




 물론 지오가 늘 맞는 말만 하는 건 아니다. 다 맞으면 그게 어디 꼬맹인가? 인생 2회차지.


 근데 내 귀여운 조카는 실수마저 너무나 사랑스럽다. 오빠에게 전해 듣고 정말이지 빵 터져버린 이야기 하나.


 지오가 한창 놀이 중이던 거실 한 쪽에 TV가 켜 있었다고 한다. 마침 뉴스 시간. 사건사고 소식을 전하던 기자의 말이 들려왔다.


 "A씨는 B씨를 찾아가..."


 찾아가서 뭘 어쨌는지 들어 보려던 그때! 지오가 TV를 향해 따끔하게 소리쳤단다.


"에이씨 하지말래찌!!!!"


 푸하하. 나는 또 속절없이 웃고 만다.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한 번, 남편에게 전해줄 때 또 한 번,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계속 웃음이 나온다.


 만날 때마다 "보고치퍼떠 고모!"라고 말해주는 사랑 많은 내 조카. 너는 내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 고모부 말고는 처음이거든? 그니까 고모가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해 줄게! 무럭무럭 자라렴.

매거진의 이전글 뉴욕이 안전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