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베짱이
Ep1. 회사가 망했어요
독립출판 행사인 제주 북페어에 참여한 지난 4월,
휴가를 냈던 만큼 회사로 복귀해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진 그날, 나는 바로 이사님 방으로 소환되어야 했다.
"니모야, 회사를 그만하려고 해. 너한테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아직 직원들에게는 말을 안 했어."
이전 계획대로라면 회사는 4월 말쯤에 강남으로 이사를 가려고 했었고,
작업하던 프로젝트는 6월이 완료였다.
"일단 6월 프로젝트 종료될 때까지, 재택으로 2달간 근무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건 괜찮겠니?"
그저 씩씩하게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끝이 있는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실업상태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인지가 없었다. 집에서 작업을 하며 팀원 중에 우리 집과 가까운 팀원을 만나 점심 식사자리도 가끔 만들었다.
재택의 외로움(?)이 조금 채워지는 순간이었고, 그 친구를 만나서 자주 우리는 밥을 함께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회사로 출근했을 때 함께 밥을 먹는 멤버는 아니었는데, 우리는 오히려 재택 하면서 더 많은 사적인 이야기와 생각들을 교류했다. 나와 많이 다를 거라고 여겼던 이 팀원에게서 나와 결이 같은 부분이 보이자 빨려 들 듯 그 친구와 얽혀버리고 싶었다.(ㅋㅋ)
단순히 "다시 회사 생활하는 것은 보류", "재밌는 게 하고 싶다."는 뜻이 통하며 이것저것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지인들을 인터뷰해 콘텐츠로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것이었다..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인사가 아닌 그냥 이웃의 이야기를 들려주자는 취지였고 즐겁게 기획서까지 작성하고 복닥복닥 일을 추진했지만 흐지부지가 되어버렸다!
(가장 잘 할수 있는것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자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튀었다가도 오고 그랬던거 같다.)
우리는 경제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일치했고, 해결을 위해 크몽같은 플랫폼에서 일을 받아서 같이하자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퇴사 처리가 된 7월 중순쯤이었다.
크몽에 올리기 위해 회사에서 작업했던 프로젝트의 포트폴리오 사용에 대한 허락을 받기 위해 이사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그저 경제적 문제를 조금 해결하기 위한 일이었는데 '사업'이라는 이야기가 이사님 입에서 나왔다. 그 부담스러움은 일단 회피하기로 했다. (애써 그 단어를 볼드모트의 이름처럼 입에 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최근에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ㅎㅎ)
"니모는 사업해도 돼. 충분히 할 수 있어."
전 회사 쪽으로 오는 의뢰 건 중에 우리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주겠다고 이사님이 말씀하셨다. 보통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면 클라이언트를 구할 수 없는 어려움이 굉장히 크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이 다행이랄까. 전 회사의 클라이언트들을 우리의 고객으로 만들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희망적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에너지가 나에게 더 이상 없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예전만큼 무언가를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내년 초까지 스스로가 감당 가능할지 나를 시험해보기로 맘먹었다.
좋은 동료와 좋은 환경을 구했고, 내가 못 믿겠는 나를 믿어주는 주변의 말을 조금은 믿고 따라보기로 했다.
그렇게 일하는베짱이가 결성되었다.
https://www.instagram.com/workinggrasshop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