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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을 May 29. 2022

나에게 선물하는 꽃

받기만 기다리지 말고 나에게 선물하기


꽃은 인생의 사치품

집 앞에 꽃시장이 있는데도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을 방문하지 않았다. 꽃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금세 시들어 버릴 것을 뭐하러 사는지, 시간낭비 그리고 돈 낭비라고 생각했다. 아이들 졸업식에도 추파춥스 다발이나, 페레로로쉐 다발로 실용적인 선물을 택했다. 방송에서도 연예인들이 집에 꽃으로 장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하는 거겠지 하며 사치품으로 여겼다. 그러다 좋은 기회에 상을 받는 자리에 가서 꽃다발을 받아왔다. 결혼하고 처음 집에 들이는 꽃이었다. 거실 한편을 가득 채운 꽃향기와 그 꽃을 왔다 갔다 하면 쳐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시들고 꽃을 버렸는데 거실에 차지하고 있던 꽃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오며 가며 눈길을 주며 나도 모르게 꽃의 아름다움에 힐링을 했었나 보다.




나에게 처음 꽃을 선물한 날

결혼 전 남편에게 받은 장미 꽃다발... 수줍게 대문 앞에 서 있던 풋풋한 그의 모습, 이제 그 기억을 잊었겠지만 그 이후로 꽃 선물을 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돈 주고 사기보다 받기만을 기다리는 꽃 선물... 그냥 내가 나에게 선물하면 어떨까? 그렇게 꽃이 없는 빈자리에 허전함을 알아버린 나는 꽃시장으로 향했다. 꽃 무식자는 무엇을 사야 할지 몰라 꽃시장을 한 바퀴 어색하게 돌다가 그냥 프리지어 한 다발과 꽃병을 사 가지고 왔다. 포장한 그대로 무심하게 꽃병에 툭 꽂아 넣었다. 그림 그리려고 꽃병 가까이 앉아 있으니 프리지어 꽃향기가 가득 나에게 다가왔다. 꽃을 사는 것은 내 인생의 사치품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꽃을 사게 되다니.. 내 마음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살아낸다고 삭막하기 그지없던 내 마음에도 꽃이 피었나 보다.




꽃을 사는데도 용기가 필요해

두 번째 꽃을 사러가는 날. 얼른 예쁜 아이를 집에 데려오고 싶어 가는 발걸음도 신이 났다. 이번에도 다발로 사긴 싫은데... 꽃시장을 빙빙 돌다 지나가는 분이 여러 가지 꽃으로 꽃다발을 예쁘게 만들어 가시길래 용기 내어 그분을 쪼르르 쫓아가서 물어봤다. “그 꽃 어디서 사셨어요? 그만큼 얼마예요” 그분께서는 아주 친절하게 자신이 구매한 꽃가게까지 나를 데려다주시고 굳이 다발로 안 사고 낱송이로 사고 안개꽃이나 나머지로 금액만큼 해달라고 하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해주셨다. 모르는 사람이 물어서 당황하셨을 텐데.. 너무 감사했다. 그분이 그 가게 단골이라며 사장님께 만원어치만 달라고하니 척척 꽃다발을 만들어 주셨다. 용기 내서 물어보지 않았다면 이런 꽃 조합이 가능했을까 싶다. 아마 같은 꽃으로 다발로 사 왔겠지? 꽃을 사는데도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니.. 그 덕분에 이름도 모르는 예쁜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꽃을 선물한다는 것

나에게 선물하는 꽃으로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계속 올렸더니 모임에서 어떤 분이 꽃을 선물해 주셨다. "노을님, 꽃 좋아하시죠?" 다른 사람에게서 꽃 선물을 받다니...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다음에 누군가에게 꽃 선물을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임이 있기 전날 꽃시장을 들르거나 약속 장소 근처에 꽃집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어릴 적 친구 생일이라고 하면 들뜬마음으로 문방구에서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던 그 마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은 그 마음이 오랜만이라 괜히 울컥했다.

 
꽃을 선물한다는 것은 꽃을 선물하는 그 사람의 마음까지 꽃에 담겨 있는 것 같다. 꽃을 정성으로 만들어주시는 분의 손길에 그 마음이 꽃에 담기는 것이다. 꽃을 사러가는 그 길에 즐거움을 알게 되고 그 꽃을 보며 내 마음에 꽃이 필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하는 요즘이다.


내가 선물 받은 꽃 내가 선물한 꽃


 
이번 아이들의 졸업식에는 모두 생화를 선물했다. 아들, 딸이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꽃 이름은 모르겠다고 해서 색상을 말해 달라고 했다. 아이들의 인생에서도 좋아하는 꽃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좋아하는 그 꽃에 마음 가득 담아 선물을 하거나 주는 따뜻한 사람 되기를 바래본다.





꽃으로 책을 장식하다

예쁜 꽃도 시들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꽃을 꽃병에 꽂고 하루 이틀 정도 두면 활짝 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때 사진을 찍어둔다. 그리고 블로그에 책 리뷰를 남길 때 책만 찍는 것이 아니라 꽃과 함께 찍어 둔다. 그 시절 그때 가장 아름다운 꽃과 내가 그 책을 읽고 느꼈던 감정들을 기록한다. 그렇게 스쳐가는 기억이라면 이렇게라도 기억하고 싶었다. 우리도 꽃처럼 한철 아름답게 피었다 지는 인생이라면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 마음에 가득한 부정적인 마음을 꽃과 책과 함께 긍정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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