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불을 지필 수밖에 없었는가

5년 간 교제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방화치사 사건

by 유진

“그 불이 꺼졌으면 제가 죽었습니다.”


5년 동안 교제폭력을 당한 끝에 방화를 시도한 A 씨가 수사관에게 한 말이다.

전북 군산에서 일어난 방화치사 사건의 2심 재판이 뒤늦게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위 사건 1심 판결문에 의하면 작년 5월 경, B 씨는 A 씨의 얼굴을 수차례 가격하며 폭력을 저질렸다. 폭행 후 B 씨가 잠든 사이에 A 씨는 방화를 시도하였고 B 씨는 사망하게 되었다.

1심 재판부(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 정성민, 김은지, 이명은)는 A 씨가 지난 5년간 B 씨에게 당한 지속적인 폭행을 근거로 살인의 고의가 있음을 인정하여 형량을 가중 판결했다.

수사 당시 A 씨가 “불이 꺼지면 제가 죽습니다.”, “피해자가 살아 나오면 내가 더 위험해진다.”라고 언급한 내용을 인정 여부의 근거로 든 것이다.


결국 A 씨는 1심에서 징역 12년의 선고를 받고 현재까지 2심 재판 진행 중에 있다.


5년간 이어진 교제폭력의 전말.

‘연대자 D의 ’ X(구 트위터)을 통해 위 사건을 접한 시민 모임 ‘비호(비혼호남여성모임)’는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재판 방청을 시작했다. 비호는 피고인이 된 A 씨의 변호인과 접촉을 시도하였고, A 씨의 변호인을 통해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고인 변호인 및 가족 등 관계자 대상의 취재 결과, A 씨는 지난 5년 동안 B 씨에게 일방적인 교제폭력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교제폭력 당시 폭행 정도는 매우 심각했다. B 씨는 A 씨가 어디에도 나갈 수 없도록 얼굴 위주로 폭행했으며, B 씨 자신의 분이 풀릴 때까지 폭행을 지속했다. 2021년 A 씨는 B 씨의 폭행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었는데,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폭행이었다.


교제 폭력이 지속되던 2022년 9월, B 씨는 A 씨의 목을 조르고 얼굴 부위를 집중적으로 가격하는 폭력을 또 저질렀고, 상해 등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적이 있다. 당시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 강동원)는 “피고인(B 씨)은 동종 폭행 전력이 있고,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폭력행위를 저지른 죄질이 불량하다”라고 판단하면서도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고, 법정에서 잘못을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형량을 결정했다. 그러나 반성했다던 B 씨는 출소 후 다시 A 씨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결국 A 씨는 거동이 불편한 자신의 부친에게도 위해가 갈까 두려워, B 씨의 요구대로 그의 집을 찾아갔으며, 당일 A 씨의 휴대전화를 감추어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한 B 씨에게 또다시 얼굴 부위를 집중적으로 폭행당했다.


5년 동안 B 씨로부터 교제폭력을 당하면서도 A 씨가 그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웠던 이유는 A 씨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이 컸기 때문이다. 시민 모임 비호의 A 씨 사건과 관련한 탄원서 내용에 따르면, A 씨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 환경 속에서 지냈으며, 단 둘이 지내던 부친의 방임으로 알코올 의존증으로 고통받았고, B 씨와의 교제 후에는 중증 우울증 등 정신적으로 더 취약해진 데다, 기초생활 수급자로 생활할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친밀한 관계 내 폭력과 학대여성증후군

위 사건에 대해 시민들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비호는 “끊임없는 교제폭력 피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 일련의 제반 상황을 다각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1심에서 징역 12년이 나온 점에서 의문을 제기할 필요성이 있다. 위와 같은 사례는 해외에서도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는 ‘학대여성증후군’와 매우 유사하다”라고 전했다. ‘학대여성증후군’이란, 오랫동안 친밀한 파트너에게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증상을 의미하는데, 외상 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중증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의 증상을 보인다. 미국의 경우 피학대 여성의 살해에 관해 ‘학대여성증후군’을 고려한 판례가 존재한다. 「가정폭력피해자의 정당방위에 관한 미국과의 비교법적 검토」 자료집에 따르면, 뉴저지 대법원은 7년간 친밀한 관계 내에서 폭력에 시달린 피학대 여성이 가해자를 살해한 건에 대해 가해자의 폭행 뒤 일정 시간이 지나 반격했음에도 이를 정당방위로 인정해 주었다. 「배우자 살인으로 수감 중인 가정폭력피해 여성의 면책사유와 관련된 심리특성에 관한 연구」는 “우리나라 사법체계 내에서 친밀한 관계 속 지속적인 학대가 주는 고통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으며, 친밀한 관계 내 폭력에 대한 보다 면밀하고 다각적인 시선과 판결이 필요하다고 명시한 바 있다.


시민으로부터 다시 시작된 사건에 대한 관심과 재조명

한편, 이 사건의 재판을 방청하고 있는 시민 모임 비호는 탄원서 공개와 함께 연대 탄원을 요청하는 중이다. 비호는 X(구 트위터)를 통해 사건 방청 연대를 하고 있으며, 교제폭력 피해자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지난 5일 비호의 연대요청으로 전주여성의 전화, 경남 여성회, 여성의당 또한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재판 방청에 참여했으며 광주여성의전화 또한 적극 연대 의사를 밝혔다.

KakaoTalk_20250212_122035994_01.jpg
KakaoTalk_20250213_235143045.jpg

시민으로부터 관심의 불이 지펴진 사건이 기관, 정치권까지 확대된 것이다. 특히 여성의당은 X(구 트위터)를 통해 지난 5일 사건 공판 방청에 참석했다는 소식을 밝혔으며, “피고인의 행동이 반복된 교제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방어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점이 반드시 양형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KakaoTalk_20250212_122035994.jpg

호남권 사건에 대해 ‘경남 여성회’ 또한 지역적 한계를 두지 않고 연대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사회적 이슈로 커지고 있는 ‘교제폭력’ 관련된 위 사건이 앞으로 어떤 판결을 맞이하며 마무리될 것인지 여러 지역 시민들과 기관, 정치계에서의 관심은 지속될 전망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민주 없는 민주 동덕’, 비민주적 학교 행정 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