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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24. 2022

늑대들의 재기 발랄 유익한
여름휴가

경상도 비혼 단체 'WITH-Wolf Night Camp'후기

처음 포항에 왔던 날을 기억한다. 포항의 거리를 보고 있는 내 눈에는 그야말로 코르셋(외모에 대한 강박으로 여성이 지나친 꾸밈을 하고 있는 상태)이 가득 차 있는 세상이 보였다. 

나는 나의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외모 강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은 지 거의 5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치마, 짧은 반바지 대신 통이 넓은 바지를 찾아 입고 머리를 짧게 깎으면서, 나를 조여오던 보이지 않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야말로 '자유'였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살이 조금이라도 더 찔까 봐, 더 예뻐 보이지 않을까 봐 지나친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이런 자유를 얻고 그동안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조여 오는 고통이 하나도 없는 자유는 나에게 기쁨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부족했다. 나는 일반 사회에 나가면 '튀는 여자'가 되어있었다. 왜 이렇게 머리가 짧은지 수십 번 질문을 받아야 했고, 왜 꾸미지 않는지 몇 번이고 대답해야 했다. 지쳤다. 내 주위에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만 있었지, 공감해주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외로웠다. 내 '탈코르셋 자유'는 외로움으로 꽁꽁 싸매어져 있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애인을 만났다. 애인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바로 'WITH'라는 경상도 여성 비혼 단체이다. 경상도에 거주하고 있는 비혼 여성들이 서로의 삶에 느슨한 연대를 해주는 단체이다. 여기서 '느슨한 연대'는 서로의 삶에 깊게 관여하지 않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서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유한다던가,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분이 가게를 하고 계신다면 그곳에 다 같이 놀러 가 응원을 해주거나, 부당한 일로 고소를 당한다고 하면 다들 알고 있는 법적 지식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곳은 그야말로 '자매애'가 넘치는 현장인 것이다. 이런 멋진 곳에서 단체 여름휴가를 즐기러 간다고 한다. 정말 빠질 수 없는 제안이었다.


부산의 한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짐을 풀고 다 같이 레크리에이션을 하는 방으로 갔다. 그곳은 그야말로 외모 강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람들. 즉, '탈코르셋'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머리가 왜 짧냐고, 왜 남자처럼 하냐고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머리가 너무 멋져요!', '머리가 너무 시원해 보여요!'등의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반려자를 애인이라고 소개해도 어느 누구도 충격을 받지 않았다. 그 대신, '너무 잘 어울려요!'라는 힘 되는 말을 많이 받았다. 이곳에서 나는 진정한 '나'자신이 받아 들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멋진 사람들이 모인 만큼, 재기 발랄하고 가끔 미치기도 한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되었다. 다들 노래가 나오면 우리 팀, 상대팀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장기자랑도 평범하지 않았다. 남자에게 당한 부당함을 통쾌하게 복수한 멋진 이야기를 들려준 스탠딩 코미디, 온 방안을 지배할 정도의 흘러넘치는 끼를 발산한 댄스, 노래까지. 정말 장기까지 멋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나와 애인도 장기자랑에 참가했다. 그곳에서는 뭔가 나도 그 즐거움에 홀려 애인과 같이 트윙클을 열창했었다. 막상 노래를 시작하니 가사는 눈에 안보이지, 목소리는 맛 갔지, 난리였지만 괜찮았다. 뭔가 그곳에서는 내가 실수하면서 내 흥을 보여도 다 같이 즐겨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만의 흥과 편안함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저녁도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먹었다. 저녁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것이, 놀러 온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스태프분들께서 저녁 준비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때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때였고, 족히 50명이 넘는 인원이 있었는데,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3시간 동안 스태프분들이 고기를 구우셨다. 이건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도 부족한 일이다. 이 글로나마 스태프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한다. 여러분들께서 준비해주신 저녁에는 애정이 정말 한가득 묻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마지막으로 WITH의 대표분의 강의가 이어졌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할 수 있었던 아주 좋은 강연이었다. 여름캠프로서 즐거움만 있을 줄 알았는데, 유익한 강연도 있어 인상 깊었다.


지금도 나는 비혼 커뮤니티 WITH에 있다. 그리고 여름캠프에서 만난 사람들과 번호를 주고받고,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이제 예전처럼 혼자가 아니다. 자유를 느낌과 동시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내 자유는 온전한 자유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을 같은 가치관으로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 있다. 정말 행복했고 잊지 못할 재기 발랄 유익한 여름캠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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