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 -『뭍에 사는 고래』리뷰
이 책을 다 읽은 후 옆에 있던 애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던데, 사실은 피는 물보다 더러운 것 같아."
제 애인은 이 책의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입니다.
(당사자에게 허락 받고 적은 내용입니다.)
폭력적인 아빠에게 맞아 코에 멍이 들었고, 우울한 엄마는 뱀과 같은 혀에서 나온 말로 온몸이 옥죄듯 괴롭혔다고 했습니다.
제 애인이 제일 행복했을 때는 대학교 때와 지금이라고 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독립하던 때니까요.
저에게 집은 살을 에는 겨울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마의 웃는 얼굴은 그 어느 기억에도 없습니다.
항상 무표정으로 저를 대했습니다. 엄마의 눈에서는 철과 같은 무채색이 보였고, 무슨 일을 해도 나무라는 엄마의 입에는 항상 차디 찬 입김과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남에게는 친절하고, 따뜻했으며, 나에게는 모질고 거칠었습니다.
엄마에게 저는 '바보 같고 미숙한 돈 먹는 기계'였습니다.
그럼에도 가정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근근이 연락을 하고 엄마에게 '애증'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우리가 무엇보다 진하지만 그만큼 진득거리고 탁한 피로 이어진 사이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쓴 작가도 우리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요? 이 책을 읽은 저와 애인은 적어도 해수작가의 글에서 저희의 과거를 보았습니다. 분명 세상이, 가족이 잘 못 되었음에도, '내가 이 세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아가미가 있는 물고기 었어야 했는데, 고래로 태어나 코와 숨구멍으로 겨우 버텨 사네.' '처음부터 완벽한 상태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나는 미숙하게 태어나 이렇게 되었다.'라는 생각을 한 저는 이 책을 통해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을 만난 느낌을 느꼈습니다. 마치 비슷한 사람 둘이 아무도 없는 작은 무인도 같은 곳에서 따로 살고 있다가, 작가님은 책으로, 저는 이 몇 줄의 글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생존을 확인하는 신호를 보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신호는 마치 작지만, 나를 따뜻하게 녹이는 친절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과거가 얼룩덜룩하고 진하고 더러운 피로 물든 사람들이 아직 세상에 많습니다. 과거에 누구는 남자 형제에게 발로 차였거나, 질긴 가부장제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한 여성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피로 이어진 인연 때문에 온몸이 옥죄었던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꺼내 읽어보세요. 해수 작가의 글로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위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도 이 책을 통해 가부장제와 가정 폭력으로 얼룩덜룩한 과거를 가지고도 어떻게든 숨을 쉬고 살고 있다는 생존 소식을 여러분께 전달드립니다.
우리, 이렇게 겨우 하루를 버텨내고 있어도, 우리 주변에 나를 녹이는 타인의 친절과 지인의 부드러운 마음에 기대어 살아나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