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점이 드는 '차이사'역의 쓰임
피도 눈물도 없는 여성 킬러가 등장한다. 앞의 수를 내다보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킬러 길복순. 그런 길복순에게는 아끼는 딸이 있다. 딸은 레즈비언.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학교에 퍼뜨리려는 남학생을 가위로 찔렀다. 딸은 엄마에게 솔직히 털어놓을까 말까 주저하고, 길복순은 딸에게 자신의 직업을 숨기기 급급하다. 그런 모녀가 점점 벽을 허물어가는 이야기.
이 모녀 이야기와 한국에서 잘 나오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여성 킬러의 액션씬만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포스터 속에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전도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편견을 부수는 멋진 영화가 나온 걸까? 하고 환상을 갖게 된다. 그래, 그런 생각을 가지고 들뜬 마음으로 봤건만, 이번에도 내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길복순은 ‘동성애’라는 키워드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엄마가 딸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과 딸이 엄마에게 가지고 있는 비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보이는 엄마와 딸의 모습. 모녀간의 벽을 허물어내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나타나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는 서사’. 스토리의 주요 라인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모습이 좋았다. 일부러,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넣은 점은 이 영화의 장점이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서 장점만 본 것은 아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근친’과 ‘강간 판타지’이다.
이 불편한 지점은 한 배우의 역할에서 다 나온다. 바로 ‘이솜’이라는 배우가 맡은 ‘차이사’ 역이다. ‘차이사’라는 역할은 중간중간 나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첫 등장부터 인상이 찌푸려진다. 소파에 앉은 설경구 다리에 자신의 발을 올리고, 짧은 치마와 스타킹을 입은 ‘차이사’. 설경구 배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차이사’가 설경구 역의 ‘차민규(차대표)’를 보는 눈빛과 만지는 손길이 이상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차이사’ 역이 왜 등장하는지를 생각했다. ‘차이사’가 보이는 잔인함.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수를 쓰는 영민함. 나는 ‘차이사가 차대표를 이기고 권력을 차지하고 싶은 걸까?’라고 추측했다. 그래, 얼추 맞는 그림 같다. 하지만, 그 추측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차대표’가 ‘차이사’의 목을 조르는데, ‘차이사’는 신음소리를 내더니(넷플릭스 자막에도 ‘신음소리’라고 나온다.) 곧이어 키스를 한다. 키스? 키스를 왜 하지? ‘차이사’가 원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저 20살 넘게 차이나 보이는 남자인 것인가? 목을 조르는 것은 자신을 위협하는 행위인데 왜 그 행동을 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인가. 멋진 여성 서사를 기대했던 나에게 한 번의 큰 좌절이 왔다. 억지로 부정해 봐도 어쩔 수 없었다. ‘차이사’ 역은 나이 많은 남자를 사랑하는 어린 여성이었다.
그나마 여기서 끝났더라면 오죽 좋았을까. 우리나라에는 차 씨가 흔치 않은데 ‘차대표’와 ‘차이사’는 성이 같다. 설마 했다. 과거 ‘길복순’이 ‘차대표’를 처음 만나는 씬에서 ‘차민규’는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미성년자 동생이 있다.”라고. 그 외의 대사들을 종합해 본 결과, ‘차이사’는 ‘차대표’의 친동생이라는 설정이었다. ‘차이사’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친오빠를 사랑하는 여성 역할이었던 것이다.
길복순도, 길복순의 딸도, 길복순을 존경하는 인턴도 정말 좋은 역할이었는데, 차이사는 왜 그런 걸까. 배우 이솜이 이런 역할을 맡을 존재였단 말인가.
길복순의 모순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