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과 강간 판타지가 만들어내는 파국
그럼 여기서 내가 문제의식을 느낀 부분을 짚고 넘어가 보자. 바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랑 스토리와, 근친과 강간 판타지이다. 전자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참으로 많이 본 스토리다. 도깨비 아저씨를 보고 ‘사랑한다’고 하는 여고생. 나이 많은 아저씨를 ‘나의 아저씨’라고 부르는 불우하고 우울한 여성. 미디어는 끝없이 ‘여성은 나이 많고, 성숙해 보이는 남성을 사랑한다’는 인식을 주입한다. 사랑에는 나이, 국경이 없다고 했던가. 진정한 사랑이라면 나도 건드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이 많은 남성이 어린 여성과 사귀면서 자행하는 행동들을 보면 참으로 건드리고 따지고 싶다.
사람들은 어린 여성이 나이 많은 남성과 사귀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남성의 재력 때문에 사귀었다고, 여자도 저 남자가 좋아서 그랬을 거라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연애 관계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남성은 자신의 뜻대로 여성을 움직이고자 가스라이팅을 한다. 남성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데이트 비용을 반반 나눠야 한다든지, 여성이라면 이런 것은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의 편견을 여성에게 교묘하게 주입한다(망상이라 생각하는가. 이는 필자의 경험과 무수히 많은 지인들의 이야기, 그 외 사회 다방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보고 쓰는 것임을 명심하라). 거기다 ‘나이가 어린 여성’은 남성들의 대표적인 트로피 중 하나이다. 그런 어린애를 어떻게 만났냐는 부러움 섞인 말을 하며 소위, ‘능력 있는 남성’이라 칭한다. 그에 비해 여성은 나이가 들면 매력이 없고. 쓸모없다고 여겨진다. ‘여성은 25살부터 꺾인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표현을 보면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즉, 어린 여성과 나이 많은 남성이 사귀고 결혼까지 하는 현상은 단순히 개인적인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편견과 유도가 섞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어서 가스라이팅과 같은 정신적 지배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관계이다.
다음으로 근친. 이는 대표적으로 일본의 마이너 한 만화, 애니 작품에서 나오는 클리셰다. ‘오빠’를 보며 얼굴을 붉히는 어린 여자아이가 그려진 만화는 옛날 만화방에도 존재했고, 지금의 인터넷에서 열심히 팔리고 있다. 도대체 이런 ‘근친’이 왜 생긴 것일까, 깊게 고민을 해보았다. 그러다 나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었다.
오빠라는 사람들을 가진 여성들과 대화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오빠에게 당한 성추행 경험’이 나온다. 나도 가지고 있고, 내 애인도 가지고 있으며, 인터넷에 있는 여러 여성도 가지고 있는 경험. 거기다 남성들은 자신의 여동생의 팬티 냄새를 맡아보았다, 여동생의 가슴을 만져보았다는 경험담을 아무렇지 않게 인터넷에 퍼트리고 다닌다. 그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남성은 자신의 친동생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고 성추행을 감행한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성범죄들이 ‘남매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판타지적인 근친으로 변질된 것이다. 즉, 여동생이나 누나가 먼저 남자 형제가 좋아서 매달리고 성적인 쾌락을 느끼는 ‘길복순’ 속 근친은 현실에서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남성들의 판타지를 ‘여성이 좋아서 한 것’이라고 합리화한 것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강간 판타지는 여성이 강간당하는 포지션에서 성적인 쾌락을 느낀다는 말이 안 되는 설을 만들어, 데이트 폭력과 강간을 만들고 있다.
왜 사람들은 여성이 친오빠를 좋아하고, 맞는 것을 즐기며, 나이 많은 남성을 좋아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인가. 왜 자꾸 미디어는 여성을 이런 기이한 존재로 그려낼까.
길복순의 모순 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