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화는 밤새도록 끝이 없지』- 허휘수, 서솔, 상상 출판
내 나이는 거의 30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있다. 어렸을 때는 내가 이 나이 먹으면 무슨 자리라도 한자리 꿰차거나, 집이 있거나, 뭐 하나라도 안정은 되어있는 삶을 살고 있겠지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는 20대 후반 소득이 거의 없는 글쓴이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 아닐까?"
예술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기술과 기본기로만 평가하려 했던 예술병자의 세계를 뒤흔든 말이야. '나만 좋으면 어떡하지?', '나에게만 의미 있으면 어떡하지?' 하며 괴로웠던 내 지난밤들을 위로해 준 사려 깊은 문장이야]-p.18 늘 너와 대화하고 싶은 휘수가 中
내가 예술가가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냥 전공 따라서 일하고 책이나 보면서 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눈떠보니 글 쓰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글 쓰는 사람은 예술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세상에, 나는 그냥저냥 살 줄 알았지.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대한 갈망은 끊임없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방과 후 활동으로만 배웠던 플룻에 빠져서 플룻연주자가 되겠다며 혼자 끈질기게 연습했던 내가 있었고, 사람의 표정과 사물을 관찰하고 담는 게 좋아서 끄적끄적 낙서만 했던 고등학생 시절 내가 있었다. 그러다가 냅다 책에 빠져서 책만 읽다가 어느새 책을 쓰겠다며 끊임없이 끄적이는 지금의 내가 있다.
예술로 다른 이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예술을 매개체로 소통하는 예술가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2시간 영화 안에 현사회의 비판이 담겨있고, 그림 한 장 안에 개인의 인생이 담겨있는 예술이 멋졌다. 중,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내가 음악과 미술에는 큰 재능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가까이 살고 싶었다. 그러다 소설이라는 예술을 알게 되고, 글로는 어떤 것이든 쉽게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글을 쓰고 나면 내 마음속 더럽고 아픈 잔해들이 썰물 빠지듯 스르륵 빠지는 감각이 좋았다. 그래서 글로 내 세계를 표현하고 나를 드러내며 다른 이와 대화하고 싶었다. 그런데 항상 '나'라는 것에 자신이 없는 나는 내가 낸 모든 것을 의심했다. 내가 문예창작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국문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몇 년 사이에 책 좀 빠져서 읽다가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니. 기성작가들의 멋진 문장들 앞에서 내 글은 항상 속 없는 껍데기와 같아 보였다. 그냥 내 푸념만 늘어놓은 게 아닐는지. 정말 나에게만 의미 있고 마는 글은 아닌 건지. 항상 고민했다. 그래서 더욱 휘수님과 같은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내 작품, 내 글에 잣대만 드리우다 처음으로 잣대 없이 내 글의 의미를 바라보았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 정말 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실제로 내 글을 옆에서 끝까지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내 애인은 내 글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뿌듯했다.
[서솔: 지금 와서는 다른 걸 막론하도고 연기로는 태클받지 않는 사람들인데, 신인 시절에는 다 똑같다는 거지. 그래서 사람들이 쓴 댓글 보니까 그 기사에서 힘을 얻어간다 하더라고.]-p.45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中
그래. 뿌듯하긴 했는데 공모전에서는 떨어졌다. 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보니 마음이 굉장히 쓰렸다. 그래 첫술에 배부르겠냐만... '오늘의 젊은 작가'를 보거나 비슷한 나이대에 책을 몇 권씩 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한없이 내 글은 겸손해지고 위축된다. 거기다가 더 위축되고 소박하고 적은 작가 수입을 보고 있으면. 참 할 말이 없어진다. 혹여나 내가 남들에게 별거 아닐 내 글실력을 들이밀며 멋진 작가가 되겠다고 박박 우기는 건 아닐지. 큰 수입 없는 이 노동을 꾸역꾸역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그러다 애인이 내가 읽는 소설의 작가 프로필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사람은 거의 10년 동안 습작하다가 겨우 데뷔하고 그 뒤로 10년이 더 지나서야 상을 받는 소설가가 되었네. 정말 이 정도의 명성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구나."
아, 네뷸러, 퓰리처, 부커 상 이런 거 받으려면 20년쯤은 기다려야 가능하겠구나. 그에 비하면 나는 아직 글 쓴 경력이 2년 남짓인데 아직 멀었군. 마음이 조금 차분해진다. 그리고 내가 기나긴 마라톤의 시작점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오늘도 한 자, 한 자 글을 쓰며 길을 내어 달려가고 있다.
[휘수: 올해 우리나라 문화예술 예산은 전체의 0.2% 정도 이더라고. 이 말을 왜 하냐면 예술은 기본적으로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기는 또 힘들잖아? 예술은 기본적으로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기는 또 힘들잖아? 예술이라는 건 인간의 삶의 질을 위한 거고, 문화예술의 중요성은 누구나 안다고. 그게 있어야 인간이 더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 산다는 걸.
(중략)
하지만 이게 먹고사는 문제와 그렇게 관련이 없다 보니까 경기가 어려워지면 문화예술 예산이 깎인다고.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도 없어져. 경기가 나빠지면 여자 치마가 짧아진다는 소리가 있을 만큼 자극적인 어떤 걸 원하게 되니까. 고상하고 재미없고 깊게 오래 들여다봐야 하는 예술일수록 더 인기가 없어지는 거지.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그런 것 같아.] p.208 예술만 하면서 살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中
나는 어쩌자고 참 돈도 안 되는 시장에 뛰어들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딱 봐도 내 주변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잘 없다. 눈으로 보이는 비인기 종목에 내가 무턱대고 뛰어들었구나. 사람들이 많이 보고 즐길수록 글 쓸 맛이 더 잘 살아날 텐데 그러지 못한 현실을 보고 있으면 참 애달프다.
어떻게든 돈 버는 내 일상 사이사이에 작품활동 시간을 욱여넣어 시간을 짠다. 최근에는 구직급여를 받고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글을 쓴다. 과연 나는 언제 이 글쓰기, 책과 거리를 가까이 두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정말 내 삶에는 안정적 수입과 작품활동이 평행선을 이룰 수밖에 없는 걸까. 만약 돈벌이에 치여 글쓰기를 놓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 장거리 마라톤을 포기하게 되면 어쩌지. 불안감에 사로 잡힌다.
그럴 때 위로가 되는 존재는 나와 비슷한 젊은 여성 예술인들의 생존 소식들일 것이다. 네이버 카페 'Studio 4 bpm'은 나에게 큰 위로와 느슨한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는 장이 되어주었다. 그때부터 이 두 작가분들의 존재가 참으로 힘이 되었다. 이렇게 예술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뭔가 더 스스로 판을 깔고 선보여봐야지 생각하며 열심히 활동하게 된다.
참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읽다 보면 부러워질 때가 있다. 나도 저런 예술로 이어져 함께 새벽 넘어서까지 이야기할 친구가 있었으면 한다(물론 예술뿐만 아니라 삶의 종합적인 이야기를 나와 나눠주는 애인님이 계시긴 하지만). 참으로 부럽기도 하는 한편, 고마운 마음도 든다. 이 예술적 수다의 장에, 책을 매개로 간접적으로나마 나도 껴서 동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다니. 그래, 세상은 그래도 혼자는 아니구나. 오늘도 이 책 표지를 보면서 나는 환한 등대의 빛을 느낀다.
어쩌면 젊어서 아직 불안하고 위태로울 예술인들은 이 책을 보고 다 같이 자신의 빛을 쏘아 응답해 보자. 그렇다면 더 많은 위태로운 사람들이 빛을 켜 서로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먼저 등대의 불을 켜준 두 작가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