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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05. 2023

그래서 내가 불안했던 거야

『불안할 땐 뇌과학』- 캐서린 피트먼, 엘리자베스 칼. 현대지성


당신은 어떨 때 '불안하다'는 감정을 느끼나요? 혹시 '불안'때문에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했던 적은 없나요? 가슴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솟구쳐 오르고, 눈앞이 캄캄해져 앞에 주어진 일을 하지 못한 적은 있나요? 

저에게 '불안'이라는 단어는 참 야속한 단어입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조심성까지는 좋은데 저는 주로 조심하는 걸 넘어서서 미래에 대한 걱정만 잔뜩 하다 우울해지거나 지친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죠. 불안은 제 입을 막기도 했습니다. 제가 무언가 잘못 말하는 게 아닐까, 괜한 말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제 진심을 삼키고 지나치게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불안에 지배당해 일명 '화이트 아웃'이 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저지른 조그마한 실수에도 큰 집착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 사람, 내 실수 때문에 피해 보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무한한 불안으로 증식하여  제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즐겁게 밥을 먹고 있던 자리였는데, 같이 밥 먹던 사람들마저 난처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불안은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여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드는 감정입니다. 뱀이나 거미 같은 걸 볼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불안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를 넘어서 불안이 우리가 꼭 해야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불안해서 잘 해내기 어렵다거나, 작은 실수를 하는 것 마저 두려워서 도전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 등 말입니다. 불안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할 땐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그대로 불안에 잠식당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제가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나의 불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감을 잡게 해주는 책입니다. 바로 '『불안할 땐 뇌과학』- 캐서린 피트먼, 엘리자베스 칼. 현대지성'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캐서린 피드번은 35년 동안 인지행동치력 전략에 기반한 뇌 손상 및 불안장애 치료를 해온 학자입니다. 캐서린 피드먼은 불안의 신경학적 근거를 연구하면서 불안의 원인과 관련된 지식은 축적되었지만, 막상 불안에 직면한 개인이 불안에 대한 지식에 접근하지 못한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안을 겪는 개인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불안에 대한 이해를 높여 불안으로부터 일상을 지킬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칼은 세인트 메리스 대학의 쿠시와-레이튼 도서관장의 장서관리 책임자로, 이 책을 위한 연구 자료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불안장애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 불안으로 고통받는 이에게 유용한 정보를 이 책에 담았습니다.

실제로 이 책 안에는 80여 가지의 불안과 관련된 사례, 불안을 완하 할 수 있는 훈련법, 내 불안에 대해 지각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불안에 대한 뇌 과학적 지식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불안이 어떤 불안인지를 자각할 수 있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편도체 기반 불안장애는 크게 없습니다. 편도체는 우리가 위험 요소를 봤을 때 즉각적으로 도망치거나 대항하거나 얼어붙는 등의 반응을 하도록 만드는데, 위에서 말했듯, 거미를 보고 무서워서 벌벌 떠는 행동이 있습니다. 거미가 나를 해칠 위험이 있다는 걸 알기 전에 무서워 심장이 쿵쿵 뛰는 겁니다. 물론 거미를 보고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크게 우리 일상에 방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폐쇄된 공간을 보고 바로 식은땀을 흘려 엘리베이터를 못 타거나 군중 앞에서 입을 떼기도 전에 너무 긴장하여 발표를 하지 못하는 경우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언가를 해내야 할 때 큰 난관이 될 수 있습니다. 편도체가 폐쇄된 공간, 또는 군중을 인식하는 순간 위험할 것이라는 비상등을 켬으로써 우리는 그 상황 자체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신체가 이미 경비태세를 갖춰버립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심호흡, 명상, 심리 치료사와 함께하는 노출 기법 등을 활용하여 그 상황에 집중하고 진정할 수 있도록 만들고 편도체가 새로운 정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제가 가지고 있는 대뇌피질 기반 불안장애는 어떤 것일까요? 예를 들어 이런 경우입니다. 내가 길을 가다 소방차를 보았는데 그 소방차를 보고 내가 가스불을 껐는지 생각하다 가스불은 안 껐다는 부정적 상황 예측을 하고 '우리 집에 불이 났을 거야'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지요. 저는 특히 우반구 기반 불안이 많은 편인데, 주로 남의 말투, 어조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어떤 일에 대한 최악의 상황을 잘 떠올리곤 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그 사람의 말투가 조금 세다 싶으면 '저 사람이 화가 났나?'라는 생각을 쉽게 하고, 무슨 일을 할 때도 '잘 안되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겠군'이러면서 최악의 경우를 잘 상상합니다. 또한 완벽주의 성향도 강하고, 죄책감, 수치심으로 인한 불안도 강한 편이라 타인과 있을 때 유난히 많은 눈치를 보고 걱정하며 불안해하다가 점점 사람을 만나기 버거워하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건 당연합니다.

이런 불안을 가지고 있을 때, 이 책은 '인지 분리', '대안적 생각하기'을 권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지 융합' 사고가 아닌, 그저 머릿속에 흐르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인지 분리', '나는 못할 거야'에서 '나는 충분히 할 만큼 할 수 있어'라고 생각을 바꾸는 '대안적 생각하기'. 책은 이 두 가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의식적으로 실천하다 보면 대뇌피질에서 나오는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비슷한 기법으로는 '마음 챙기기'가 있는데, 마음 챙기기야 말로 불안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법이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불안은 눈에 보이지 않고 원인도 모를 실체로 한 개인을 잔인하게 괴롭힙니다. 하지만, 이 불안이 어떤 메커니즘 때문에 발생했고, 이럴 때는 어떤 방법이 좋고, 어떤 것을 평소에 실천해야 하는지 알면 개인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현상에 가까워집니다. 그러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지요. 이 책은 저를 힘들게 만드는 불안이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저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제가 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안이 실체 없는 괴물로 다가와 나를 옭아매고 힘들게 만든다면, 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의 실체에 다가서고 자신의 삶을 좀 더 힘 있게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불안할 땐 뇌과학』서평단 이벤트에 선정되어 쓴 글입니다.

좋은 책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현대지성'에게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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