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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Oct 23. 2020

최초 종결사례

이런 종결은 처음

 그동안 언어치료사로 일하면서 종결을 맞는 보통의 경우는 언어치료를 받는 아이의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치료 프로그램으로 옮기기 위해(다른 언어치료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나이가 만 13세를 넘어가는 경우 운동 등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경우 등이다.  나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장애아동들이 많다 보니 아동의 언어수준이 또래 수준에 도달하여 종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부정확한 발음을 주호소로 내원하는 경우에는 동반 장애만 없다면 몇 개월 안에 종결이 가능하지만 '언어발달지연 혹은 지체'의 경우엔 종결의 날을 예상하기 힘들다. 그 아동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 지, 그게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재(가명)는 만 36개월이 갓 지난 4살의 남자아이였고, 또래보다 조금 작아 보였다. 사례관리팀에서 보내주신 서류를 보니 이른 둥이로 태어나 병원에 오래 있었고, 퇴원 후에도 재활을 위해 오래 다녔고 어머니도 고생을 많이 하셨다. 서류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비해 치료실 안으로 들어선 우재는 눈웃음이 동화책 속 햇님같았고, 그 나이대의 남아들에 비해 목소리의 톤도 높아 더 귀여웠다.


 돌 무렵까지 병원에 있었던 탓에 말도 늦트였고, 걸음이나 대소근육의 활동도 조금 느린편이었다. 언어치료 뿐 아니라 우리 복지관에 있는 다른 치료 프로그램도 이용했었는데, 어머님의 열심만큼이나 우재도 열심이었다. 4살이었던 우재는 어린이집이나 문화센터 등에 다니지 않으니 그런 곳에 가는 기분으로 복지관에 왔었던 것 같다. 엄마와 분리하여 치료실에 들어 오고 적응을 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말하는 것도 사실 운동이기 때문에 입 주변의 근육, 턱, 혀의 움직임 등이 중요하다. 그래서 불기, 씹기, 입술 털기(입술 사이로 바람을 불어 푸우~ 하는 것)등은 말하기를 위한 중요한 행동이다. 우재는 주수를 다 채우고 태어난 아이들보다 분유나 이유식을 먹은 기간이 길고, 씹기를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음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4살인 우재에게는 정확한 발음보다 말수를 늘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같이 놀며 환호성을 지르거나 의성어 의태어를 통해 말소리를 듣는 재미, 말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잘했을 때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최고 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주고, 약속을 위해 새끼손가락을 걸거나 손가락으로 브이나 오케이 사인을 하는 제스처도 치료실과 일상 생활에서 의사소통의 한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치료실 상황에 적응하고 조금씩 발전을 하는 동안 우재는 5살이 되었고, 5살이 되자 우재에게 형이 있어서 그런지 치료실에서의 놀이가 집에서도 확장될 수 있었고 단어를 익히고 역할놀이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에 제법 속도가 붙었다.


 여느 때와 같이 우재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 자동차들로 놀이를 시작했다. 그날은 구급차로 시작했다.

 "삐용삐용 아파요! 삐용삐용 비켜요! 빵빵!"

보통 우재는 내가 했던 말을 따라 하거나 '아파? 아야아야? 빵빵~ 우웅~~'하며 내가 했던 말들을 따라하거나 조금 변형시키거나 하는데, 그날은


 "응급상황 발생, 응급상황 발생, 삐용삐용, 응급환자 탐승, 응급환자 탑승, 위이잉~"

하며 진짜 구급차가 지나갈 때 나오는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어머, 우재야, 그 말 누구한테 배웠어?"

 "형이."

 "형이 뭐라고 말했어?"

 "응급상황 발생, 응급상황 발생~"

5살 짜리 남자 아이가 이런 말을 하는게 너무 신기해서

 "응급상황이 뭐야?"

 "구급차 타고 병원가야지."

 "왜?"

 "아파. 병원가, 응급수술. 다 왔어. 빨리빨리!"

 "환자는 어디있나요?"

 "(급하게 인형을 가져와서) 여기요!"


하더니 병원 놀이로 놀이가 전환되었다. 우재는 인형을 차분히 살피더니

 "주사 맞으세요.", "약은 하루에 두 번 먹으세요.", "또 오세요." 등의 말을 상황에 맞게 했다.


 응급상황과 환자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었고, 병원에서 하는 말들을 정확하진 않아도 적절하게 표현했다. 상담시에 어머님은 병원에 자주 다녀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많이 해 온 자동차 놀이나 병원 놀이에 비해서는 상당히 발전된 상태를 보였다.


 우재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는데, 발전을 보이는 모습이 완만한 상승선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점프를 한다는 것이었다(나의 경우에 한해서이다). 이런 놀라운 반응이 있기 까지는 꾹꾹 눌러담는 세월이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점프를 하면 그 발전된 수준이 일정기간 지속하는 모습을 보인다.

 

 5살 말 즈음, 그림카드를 보여줬더니 "가위로 종이 오려.", "냉장고 문 닫아.", "치약, 이빨 안 닦을거야.", "햄버거 사주세요.", "우리 엄마 커피 좋아해, 선생님 커피 좋아? 맨날 마셔?" 등 연관되는 동사를 말하거나 문장을 만들어 말할 수 있었다. 말수가 많아지고 말의 길이도 길어지면서 발음도 점차 명료해져갔다.


 6살이 되어, 한글은 몰랐지만 그림책을 보면 조사를 가끔 틀리긴 했어도 문장으로 그림을 설명할 수 있었고(노력했고), 대화도 제법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었다. 6살 중반부터는 어린이집도 다니기 시작했는데,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말이 느려서 어머님의 걱정이 컸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등원 첫 날 부터 엄청 잘 지냈다고 한다. 같은 반에 여자 아이들이 많아 동생 챙기듯 챙겨주기도 했고, 사실 남자 아이들은 말보다는 몸으로 노는 편이라 집에서 형에게 단련된 민첩한 신체활동이 어린이집에서도 통했나보다.


 내원 당시엔 뭉게지는 발음과 적은 말수, 아직 무뎠던 대소근육 운동때문에 다른 동반 장애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소견이 있었지만 복지관에 다니는 2년 동안 다른 장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언어수준은 처음엔 또래보다 2년 가까이 늦은 것은 결과지를 가지고 왔지만 8개월 정도의 간격으로 했던 언어 검사에서는 조금씩 또래와의 차이를 좁혀가더니 6살 말엔 하위권이긴 했지만 또래 수준으로 진입했고, 7세 중반에는 7세 수준에서도 상위권의 결과를 보였다. 너무 기뻤다. 하지만 이 결과는 바로 어머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못했다. 우재를 만나 온 시간이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우재에 대한 배경지식으로 너그럽게 검사했나 싶어서.  


 우재 어머니께서는 우재아버님이 귀농을 원하신다며 시골로 이사갈 예정인데, 시골엔 이런 복지관도 별로 없을텐데 걱정이라고 하시며 종결 예정 날짜를 3개월 전 쯤 미리 알려주셨다. 어머니로 부터 듣는 집이나 어린이집에서의 생활도 그렇고, 내가 느끼기에도 또래 아이들에 비해 뒤쳐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워보이는데 다 해내는 모습과 함께 '이런 건 식은 죽 먹기죠', '함부로 버리면 안돼, 티끌모아 태산이에요' 등 속담을 섞어 말하기도 했다.


 느낌으로나 검사상으로나 이미 또래 수준으로 진입한 터라 너무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이 사실이다. 조금 올라섰을 때 더 밀어주면 좋을텐데 싶었다.


 종결을 한 달 남겨두고 다른 검사도구로 검사를 진행했다. 조금은 보수적인 자세로, 정확하게 검사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새로운 검사에서도 종전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우재에게 감각통합치료수업을 진행했던 선생님께 검사결과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보았더니 감통에서의 수준도 종결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하셨다. 여러 방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룬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님께 우재의 검사 결과를 말씀드렸고, 어머님도 너무 기뻐하셨다. 주변에서도 우재가 별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고 했지만 자신으로선 긴가민가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 좀 마음이 놓이신다고.

 

 예정했던 날짜보다 더 빨리 종결할까 했는데 우재가 복지관에 계속 오고 싶어해서 주2회 하던 것을 1회로 줄여서 치료실에 왔고, 어머님의 부탁에 따라 한글 공부를 시도했는데 한글은 말이 느는 속도만큼은 늘지 않아서 조금 안타까웠던 기억이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이 부모의 책임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적 장벽이 높은 복지관까지 진입을 했다면 부모님이 의뢰한 감각통합이나 언어, 인지치료 선생님에게도 책임이 부여된 것이다. 하나만 열심히 해서 종결 수준까지 오른 것은 아니었고 다른 프로그램 선생님들도 우재의 성향과 속도에 맞춰 수업을 준비했고, 그것에 우재가 잘 따라와주었다(사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나의 경우 12년간 단 두 번 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다 그렇듯 위기와 정체기가 있었지만, 그 시기를 얼마나 빨리 끊고 도약하느냐가 중요한것 같다. 여러가지 변수와 개인차가 있지만 때로는 인내심으로 때로는 밀어부치기로 정답이 없는 시간과 상황 속에 지금도 '오늘' 그리고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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