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의 언어치료사 생활중(사실 정식 명칭은 언어재활사이다) 또래 수준까지 향상하여 종결한 두번째이자 마지막 사례에 대한 이야기이다.
맞벌이 부모님을 둔 남매 쌍둥이가 내원했다. 발달상 특이사항은 없었고, 시터이모님과 조부모님이 요일을 달리해서 아이를 봐주시다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말이 늦다는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내원한 것이다. 만 36개월을 갓 넘기고 내원했는데 두 아이 모두 특이하게 분리불안도 없었고, 딱히 적응기간 없이 치료 수업에 바로 들어갔다.
두 아이 모두 워낙 말 자체가 없었다. "으악~, 끼익~, 쾅~, 빵빵~" 등의 놀이를 위한 소리는 냈지만 의사소통을 위한 말은 인사와 네 아니오, 뭐예요? 정도였다. 4~5세 아이들에게는 놀이로 접근하곤 하는데 저렇게 의성어들만 주로 표현할 경우, "으악 무서워, 끼익 조심해/위험해, 쾅 부딪쳤다, 빵빵 비켜주세요, 빵빵 저 바빠요" 등으로 의성어와 어울리는 표현들을 붙여서 말해주었다. 따라하면 좋지만 따라하지 않더라도 어디엔가 꾹꾹 눌러담겨 넘칠 때가 오면 적절한 상황에서 바르게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이라는게 놀 때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묻고 대답하기는 정말 중요한 과정이다. 질문을 하고 대답을 못할 때는 대답할 말을 알려주며 점차 말의 빈도를 늘려갔다.
"선생님이랑 다 놀고 어디가?"
"........"
"집에 가, 할머니네 가?"
"집에."
"집에 가? 뭐타고 가?"
"차."
"어떤 차?"
"........"
"택시? 할머니 차? 버스?"
"할머니 차"
"할머니 차 타고 집에 가?"
"네."
초기에는 이렇게 단답형으로만 대답을 이어가다가 나중에는 말을 따라하도록 하기도 했다. "할머니 차 타고 집에 가요."에 이어 "말놀이(언어치료) 다 하고 할머니 차 타고 집에 갈 거에요." 등으로 점차 문장 성분을 늘려 확장해가도록 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의성어/의태어만 사용했을 때 보다는 동사 표현을 이어서 할 때, 단답형보다 문장으로 말했을 때 의사소통이 더 윤택해지고 어른의 말과 비슷해 진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성인 대화자와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내가 배웠던 교과서에 써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내 아이들도 그랬다. 어른과 대화하면서 어른의 정교한 발음을 듣고 자기도 따라하게 되고, 자기가 하려고 했던 말 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말을 되짚어주고 대답을 해주니 자신도 어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다 커서 영어학원 다닐 때 한국인 선생님보다 원어민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면 나도 최소 어학연수는 하고 온 사람인 것 처럼 말투도 제스쳐도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괜히 나도 영어 좀 잘하는 것 처럼 느껴지고 그런 것 처럼 말이다.
부모님이 다 일을 하시다보니 퇴근하면 사실 말 할 기운도 없을 것이고, 그저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게 일일 것이다. 언어적 자극이 너무 부족했던 탓에 말이 늦었던 것 같고, 조금씩 말을 붙이고 말할 기회를 주고 말을 시키니 제법 빠르게 또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특히 여자아이의 경우 말이 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리더십도 생겼다고 한다. 1년 2개월의 언어치료 후언어검사 결과(여아는 또래 상위권, 남아는 또래 중위권)와 어린이집 선생님과 원장님의 의견, 양육을 도와주시는 시터이모님과 조부모님의 의견을 종합해 종결을 결정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지금부터다. 이 쌍둥이남매의 어머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복지관에 바로 대기 신청을 했다. 종합복지관이나 사설 센터가 아니라 장애인 복지관에. 심리적 장벽이 있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상담할 때 어머니의 반응이 조금 예민하시고 질문이 많으셔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 어머니가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지체하지 않고 집 가까운 곳에 빠르게 치료 수업에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접수를 한 분이라는 점에서 나는 큰 점수를 드렸고 다소 부담스러웠던 상담을 견뎠다.
아이의 출생 후 매년 있는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의사의 이상소견이 없었다는 이유로 치료 시기가 조금 늦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음에도 "의사가 아무말 안했다. 당신이 전문가냐?"며 선생님에게 폭언을 하거나 지역인터넷카페에 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대해 악평을 써놓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그 부모님의 입장에서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아이의 특이점이 보였다면 전문가에게는 더 선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아이에 대한 칭찬도 아니고 다소 어려운 이야기를 원장님이 하실 정도면 선생님들 내에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성향까지 파악하고 있었다면 어느 날 어떻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나을지까지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하루이틀 관찰하고 내린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님들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고민했을 것이고 정중하게 전하기 위해 고심했을 것이다.
아이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음 스텝을 옮기기에 큰 심리적 장벽이 있는 것은 현장에 있는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내 아들이 두 돌이 지나도록 "엄마, 아빠, 어어어어."로 모든 의사소통을 했기에 나도 몇 달 간 심난한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한 길은 다음 스텝으로 빨리 옮겨주는 것이다.
쌍둥이의 어머니가 원장님의 말씀을 흘려 들었거나, 어머님 본인이 아이들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중복 장애가 없는 아이들이기에 어느 시점에 자연스럽게 말이 트이고 또래 수준의 언어 발달을 따라 잡았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무엇도 상상만 가능할 뿐 현실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재빠른 노력을 실천했던 어머니가 대단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