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연의 소중함
같은 직업을 12년째 유지하게 해 준 원동력
나는 올해로 12년 차 언어치료사가 되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직업을 유지해 온 것에는 한 아이와의 첫 인연이 큰 힘이 되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막 취업하여 언어치료사로 첫 발을 내디뎠던 해에 만났던 그 아이는 6살의 남자아이였고 특정 증후군으로 인해 시력이 거의 없었고 지적장애도 있었다. 어머님의 희망은 아이가 울음이나 괴성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엄마"라고 불러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시각장애가 있는 아이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서 처음엔 막막했지만 소리나는 장난감이나 책을 가지고 함께 놀면서 아이의 촉각을 자극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거나 동물 소리를 흉내 내며 여러 가지 소리와 진동을 듣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쩌다 아이가 소리를 내서 울 때면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붙었다 떨어지게 하며 "엄마~"라는 소리가 날 수 있도록 유도해주었다. "엄마~"소리가 나려면 아이가 내는 소리와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는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해서 쉽진 않았지만 몇 차례 성공을 하여 성공할 때마다 "상현아(가명), 니가 지금 엄마 부른 거야."라고 반복적으로 알려 주었다.
몇 달이 지나자 울지 않고 내는 아~ 소리에도 양 입술만 닿을 수 있게 도와주면 "엄마~"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입 주변을 내가 만져줘야 "엄마~"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좀 익숙해지는 것 같아 상현이에게 "니 손으로 입술 붙여봐"라고 했더니 손을 입 가까이로 가져가긴 했지만 오히려 손을 대지 않고 스스로 입술을 붙였다 떼며 "엄마~"소리를 낼 수 있었다. 감격의 날이었다.
그 날 상담할 때 어머니께 상현이 혼자 "엄마~"소리를 냈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울듯이 기뻐하셨는데 그 상담시간엔 "엄마~"소리를 내지 않아 좀 아쉬웠다. 신입이라 열정이 앞서다 보니 빨리 성과를 보여드리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때는 아니었지만 상현이가 집에서 "엄마~" 하는 소리를 냈다고 하셨고, 그 이후로는 "야, 안녕, 따따, 네"등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언어적 의사소통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고 그러다보니 적어도 가족간에는 제법 의사소통이 원활해 졌다고 하셨다.
더욱 감사한 일은, 내가 상현이네 가족과 친적들에게 '설리번 선생님'이라고 불리운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선생님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설리번 선생님이라고 해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가끔 명절마다 친척들이 상현이 보시고 다들 놀라세요."
지금도 이 말씀을 해주시던 상현이어머니의 목소리와 표정을 기억한다. 언어치료사로서 명예롭기도 했고, 이 일을 지속하는데에 큰 격려가 되었다.
상현이와 3~4년을 함께 했지만 나의 결혼과 이사때문에 직장을 옮기게 되어 상현이와도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에 연락처라도 남아 있으면 소식이라도 알 수 있었을까. 휴대폰을 바꾸고, 번호도 바꾸고 하면서 소식은 전혀 모르고 있다. 지금은 10대 후반의 청소년이 되어 있을텐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고마워 상현아.
감사합니다 상현이어머님.
덕분에 지금까지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궁금합니다. 보고싶어요